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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HO>“더 쎄게 붙겠다” 다시 세계지도 앞에 선 승부사 박병엽
“제발 경쟁 좀 안하고 살았으면 좋겠다. 몸이 너무 피곤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의사도 “사무실을 떠나지 않으면 안된다. 어렵겠지만 한달에 한두번이라도 밖에서 운동을 하라”고 신신당부한다.

그래도 기어코 회사로 나온다. 그것도 새벽같이. ‘조용한 시골에서 행복하게 사는 것이 인생의 목표’가 맞긴 한걸까. 회사 얘기를 꺼내자 그의 눈빛이 달라진다. 도대체 박병엽(49) 부회장에게 팬택은 무엇일까.

기업은 망해도 CEO(최고경영자)는 살아남는 게 일반적이다. 리먼브러더스, 메릴린치의 마지막 CEO가 그랬다. 국내에서도 파산 기업의 오너가 해외에 재산을 은닉했다는 소식이 낯설지 않다. 비자금 조성, 경영권 승계 등을 위해 횡령과 배임을 저질렀던 오너나 CEO가 어디 한둘 인가.

그러나 박 부회장은 지난 2006년 팬택이 유동성 위기에 빠지자, 당시 시가로 4000억원에 달하던 보유지분을 모두 내놨다. 8000억원에 달하는 회사 부채에 보증까지 섰다.

“그때는 정말 죽을려고 한강으로 갔었다. 근데 쪽팔려서 못죽겠더라. 더 미친듯이 일했다.” 이에 서슬퍼런 채권단의 마음이 움직였고, 결국 그는 회사를 되살려 냈다. 전성기 때 ‘연매출 약 3조원’, ‘글로벌 7대 휴대폰 업체’ 까지는 못하지만, 지난 2007년 3분기 기업구조개선작업(워크아웃) 시작 이후 올해 1분기까지 15분기 연속 영업흑자를 기록했다.

작년 전체로는 1107만대의 단말기를 팔았고, 2조775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국내 스마트폰 시장만 놓고 보면 LG전자도 제쳤다.

대뜸 ‘백의종군을 후회해 본 적 없느냐’는 질문을 던지자 “원죄가 있었다”는 말이 돌아왔다. “당시 경영을 잘 못한 것에 대한 징벌적 차원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왜 그때 경영을 좀 더 잘하지 못했을까. 그 부분은 늘 후회했다.”

올해는 박 부회장에게 더없이 중요한 해다. 창립 20주년이자 지난 2006년 시작된 워크아웃을 졸업하는 해이기 때문이다. 한 고비를 넘겼으나 팬택의 양대 사업 축인 안드로이드 스마트폰과 4세대(4G) LTE(롱텀에볼루션) 스마트폰 시장에서 확실한 경쟁 우위를 점해야 한다. 6월에는 5인치 태블릿폰 ‘베가 No.5’, 하반기에는 태블릿PC도 내놓는다.

박 부회장은 “얼마 전 출시한 ‘베가 레이서’로 승부할 것이다. 잘 팔아서 돈을 좀 벌어야 한다. 그리고 그 다음엔 한번 더 쎄게 붙어 볼 생각이다”고 말했다. ‘쎄게’가 무슨 뜻이냐고 되묻자 그는 “해외시장 공략을 적극적으로 하겠다는 뜻”이라고 부연했다. 박 부회장이 최근 자신의 사무실에 있는 큼지막한 세계지도를 들여다 보는 일이 잦아진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지금은 국내와 미국, 일본 시장에 주력하고 있지만 팬택은 불과 몇년 전만해도 3개국은 물론 유럽, 남미, 동남아, CIS 국가까지 공략했던 막강한 수출기업이었다. 재도전에 나서는 유럽의 경우에도 “열심히 하면 1~2년 안에 결론이 나오지 않겠느냐”고 자신했다.

무리한 일정 탓에 탈이나 주말동안 병원 신세를 지긴 했지만, 박 부회장은 지난주 프랑스와 스페인을 2박 3일 일정으로 훑으며 그 지역 사업자들을 대부분 만나고 왔다. 가장 중요한 미국 시장은 4세대(G) LTE(롱텀에볼루션) 스마트폰 쪽으로 공을 들이고 있다. 당장 7월에는 버라이즌을 통해 LTE 스마트폰이 출시된다.

그는 “LTE 때문에 머리가 깨지는 것 같다.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고 이대로 가면 끌려 갈 수 밖에 없다”며 “(팬택이)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부회장에게는 사업 보다 민감한, 워크아웃 졸업 이후 팬택을 되찾는 건에 대해 물었다. 예상대로 그는 “회사를 찾는 것은 아직은 먼 이야기 아니냐”며 말을 아꼈다. 그러나 박 부회장은 평소 팬택을 잘 알고 지속적인 투자를 통해 회사를 키울 수 있는 사람이 적임자라고 보고 있다.

박 부회장의 임기는 오는 2014년 3월 25일까지이다. 그러나 지분은 0.003%(4만9391주, 1분기 보고서 기준) 수준에 불과하다. 물론 대주주로 복귀할 수 있는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주주총회에서 전체 주식의 10%인 1억6400만주의 스톡옵션을 부여 받았다. 신주 발행과 내년 3월부터 향후 7년간 주당 600원이 행사 조건이다.

이자비용을 포함해 약 800억원이 있으면 해당 지분을 확보할 수 있다. 앞서 지난 2009년에는 채권단으로 부터 회사가 정상화된 뒤 채권단 보유 주식을 우선적으로 되살 수 있는 ‘우선매수청구권’을 부여받기도 했다.

IT 업계에서, 그것도 2~3개월 만에 최신 제품이 쏟아지는 스마트폰 시장에서 중견기업이 경쟁하기란 쉽지 않다. 한때 ‘걸리버’로 이름을 날렸던 현대전자 분사기업 현대큐리텔(팬택앤큐리텔→팬택), 슬림폰이 유명했던 브이케이(VK)는 인수되거나 자취를 감췄다. 재벌그룹인 삼성전자, LG전자만 살아 남았다.

애플 아이폰 돌풍에 삼성전자도 지난해 초 고전했고, LG전자는 아직 휴대폰(MC)사업부의 흑자전환을 일궈내지 못했다. ‘스카이’ 브랜드를 판 뒤 다시 ‘W’로 돌아온 SK 역시 이름 값을 못하고 있다.

애플 최고경영자(CEO) 스티브잡스를 향해 “휴대폰은 내가 더 잘안다. 난 수십년을 이것만 만들어온 사람이다. 한판 붙어보자”고 도발하고, 국내에 진출한 외국계 휴대폰 업체 사장도 몸을 사리는 SK텔레콤에게 “(삼성전자)갤럭시 판매에만 열을 올렸다”고 직격탄을 날릴 수 있는 CEO가 누가 있을까.
 


박 부회장은 지난 1991년 6명으로 시작해 매출 수조원짜리 기업이 된, 중간에 패자부활전까지 겪은 대한민국 벤처의 몇 안되는 기업 팬택을 더 잘 키워야 한다. 안타깝게도 대신할 사람이 없는 만큼 IT업계와 더 나아가 재계를 위해서도 쓴소리를 더 해야 한다. 팬택인(人)들이 수개월 밤을 지새면서도 버텨내는 말 ‘한눈 팔면 죽는다’는 박 부회장에게도 결코 예외일 수 없다.

<김대연 기자 @uheung>

sonamu@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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