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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경희 선임기자의 컬처 프리즘>25년 먼 길을 돌고서야 알았다…‘나는 가수’라는 것을
짧고도 강렬했던 ‘나가수’ 한달 임 재 범
외로웠던 성장기

순탄치 못했던 음악활동

방송 적응못하고 수년간 잠적

한때 ‘노란잠수함’ 별명도…

무릎꿇고 읖조리던 “…여러분”

그의 삶과 음악 말해주는듯

지난 22일 ‘나는 가수다’에 마지막 순서로 무대에 오른 임재범이 끝 소절을 다 부르기 전 무릎을 꿇었다. 

“내가 외로울 때면, 누가 위로해주지… 바로 여러분!” ‘여러분’이라고 부르는 순간 그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방청객들은 손수건을 꺼내기 시작했고, 반주가 채 끝나기 전에 자리에서 일어나 기립박수를 보냈다. 무대 뒤에서 모니터를 지켜보던 다른 가수들과 매니저들도 눈시울을 붉혔다.

‘여러분’은 지난날 임재범의 고된 삶과 음악을 대변하는, 이날 무대에 딱 어울리는 노래였다. ‘나는 가수다’에서의 엔딩곡이 돼버렸지만 임재범에게는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노래였다.

그는 16일 녹화를 마치고 곧바로 입원해 급성맹장염 수술을 받았다. 약 한 달간 노래는 금지됐다. 방송 다음날인 23일 그는 MBC 일산스튜디오를 찾았다. 카메라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다시 무대에 설 것을 약속했지만 사실상 고별인사였다. 단 4주였지만 깊은 여운과 감동이라는 전설을 남기고 ‘나는 가수다’에서 물러났다.

임재범은 올해 데뷔 25주년을 맞았다. 평탄치 않은 성장기가 있었지만, 20대에 ‘한국의 데이비드 커버데일’이란 칭송을 듣는, 국내외에서 주목받는 가수였다.

천재 기타리스트라 불리던 신대철이 이끄는 헤비메탈 밴드 ‘시나위’ 데뷔 앨범에서 부른 ‘크게 라디오를 켜고’는 1986년 발표 당시 록마니아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임택근 전 MBC 아나운서의 아들로 더 유명세를 탔다.

이후에도 무대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 드라마 같은 그의 가족사가 튀어나와 발목을 잡곤 했다. 때론 대인기피 증세를 보이기도 했다. 

지난 16일 급성맹장염 수술을 받은 임재범이 도전을 계속하기엔 무리가 따른다는 판단에서 MBC ‘일밤’ 스태프와 협의해 ‘나는 가수다’ 하차를 결정했다.

세계 무대에 나갈 기회도 있었다. ‘아시아나’에서 활동할 때 일본의 전설적인 록밴드 ‘라우드니스’로부터 월드투어 제안을 받은 적이 있다. 내한공연을 위해 서울을 찾은 라우드니스는 동양인에게 흔치 않은 임재범의 목소리가 미국 무대에서 통할 수 있다며 미국 공연에 동행하자고 했다. 팀이 갑자기 해체되는 바람에 기회를 놓친 후 그는 아쉬웠는지, 밴드를 결성해 영국으로 건너가 한동안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했다.

90년대는 서태지, 김종서 등 시나위를 비롯해 록밴드 출신들이 가요계를 지배한 시절이었다.

임재범은 91년 ‘이밤이 지나면’을 발표하며 대형가수 재목으로 가장 먼저 주목을 받았다.

‘마이클 볼튼’과 비교되며 유명세를 타면서 다시 그의 가족과 배경이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견디지 못한 그는 좋아하는 노래를 포기하고 잠적했다.

갑자기 두문불출하는 경우가 많아 ‘노란 잠수함’이란 명예롭지 못한 별명까지 붙었다. 결혼해 가정을 꾸리기 전까지 그는 방황했다. 의지할 곳을 찾다가도, 이내 갈 길을 잃어버리곤 했다. 노래를 포기한 적은 없지만, 무대로 돌아오는 데에는 시간이 걸렸다.

놀랍게도 ‘나는 가수다’에 오랜만에 나타난 그에게서 예전의 그늘은 찾아볼 수 없었다. 부인이 암투병 중이라는 사실을 털어놓고, 딸에게 반드시 1등을 해 자랑스런 아빠가 되고 싶다는 소박한 희망을 얘기했다. 더 이상 그의 노래를 방해하는 것은 없는 듯했다.

‘2011 임재범 콘서트-다시 깨어난 거인’이 다음달 25일과 26일 서울 잠실체조경기장에서 막을 올린다. 관객 앞에 무릎을 꿇고 자신이 가수임을 스스로 확인한 그가 지난 25년간 못다 한 노래가 다시 이어질 무대다.

이경희 선임기자/ic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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