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금의 주주권 강화에 대해 한발 물러서 있던 정치권까지 조건부 찬성 의견을 밝히면서, 기업들의 발걸음이 분주해지고 있다. 정부의 연기금의 주주권 강화의 셈법이 사실상 국내 주요 그룹들 견제에 무게를 두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연기금 주주권 강화를 처음 제안한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은 “대기업-중소기업의 동반성장이나 대기업의 문어발식 확장 등의 문제에 대해서도 정부의 직접개입보다는 공적 연기금이 보유한 주주권 행사를 통해 접근하는 것이 보다 시장친화적인 방법”이라고 말한 바 있다.
대기업 입장에서는 강력히 반대하기는 부담스럽지만 향후 껄끄러울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부정적일 수 밖에 없다. 실제로 헤럴드경제가 대한상의와 함께 최근 1000개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연기금 주주권 강화에 대해 반대 입장을 보인 기업이 65.5%에 달했다.
대기업들은 부정적인 입장이 더 컸다. 대기업의 경우 27.5%만이 찬성 입장을 보였고, 72.5%는 반대한다고 밝혀 반대 입장이 더 강했다.
전경련은 “정치논리에 의한 관치 목적의 지배구조개선이나 지나친 경영권 간섭은 경영안정화를 훼손해 기업가치 저하로 연결될 수 있으므로 지양해야 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19일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리는 전경련 회장단 회의에서는 연기금 주주권 강화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표시할 가능성도 크다.
대기업, 특히 정부가 염두에 두고 있는 KT 등 과거 공기업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현재 국민연금의 지배구조상 정부가 이사 선임 등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당정은 18일 연금기금운용위원회 산하에 민간 금융투자 전문가들로 구성된 독립된 의결권 소위원회를 대안으로 제시해 둔 상태다. 그렇지만 기업들은 이 대안에 대해서도 불신의 눈을 돌리지 않고 있어 향후 추진과정에서 논란이 예상된다.
처음에는 전문가 집단에 의한 운용, 민간 대기업에 대한 간섭 배제라는 큰 원칙에 충실하는 모습을 보이겠지만, 일단 발을 들여놓으면 어떤 식으로든 간섭과 관치가 이뤄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따라서 연기금 의결권 행사 이전에 국민연금의 지배구조 개선과 의결권 행사를 위한 가이드라인 구체화 등이 필요하다고 관계자들은 말한다.
<이상화 기자 @sanghwa9989> sh9989@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