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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탕가기·포옹하기…

일상에서 길어올린 행복

어머니에 대한 애틋함 글로

도쿄대 강상중 교수 사모곡

카터 회고담 등 가슴 뭉클


“물에 녹아 사라질 것 같은 글자들을 간신히 원래 모습으로 되살려 놓듯이, 아련한 기억의 단편들을 끌어모아 어머니의 모습을 그려낼 수 있다면....그러다 보면 거기서 나의 반생 역시 투영되어 보일 것이다. 어머니를 통해 나 역시 내 자신을 다시 만나게 되는 것이기도 하다”

한국 국적자로는 최초로 도쿄대 교수가 된 강상중 교수. ‘고민하는 힘’이란 책으로 한국 독자들과도 친숙한 그가 쓴 자전적 에세이 ‘어머니’(사계절)는 어머니에서 이어진 나의 정체성의 실타래를 풀어가는 과정이다. 식민지 꽃다운 처녀가 고향을 등지고 타국에서 억척스런 삶을 살아내야 했던 처절한 시간들을 저자는 어머니 대신 증언하며 어머니의 모습을 담담하게 그려나간다.

‘우순남’이라는 이름 대신 ‘하루코’라는 일본 이름으로 삶의 대부분을 살았던 어머니는 열여섯살 나이에 약혼자인 아버지를 찾아 도쿄로 간다. 도쿄 대공습과 장남의 죽음, 친정엄마의 죽음, 종전후 더 비참했던 조선인들의 삶, 암시장 행상, 폐품 상점을 열고 내 집을 갖게 되기까지 한숨을 토해낼 때마다 엄마가 부른 노래는 고향의 ‘차 따기’노래였다.

“슬플 때나 기쁠때나 어머니 입에서 흘러나오는 한숨 같은 그 노래. 그건 또 어머니가 부르는 기도의 노래였는지도 모른다”고 저자는 회고한다.

강 교수가 회상하는 엄마의 두 모습은 모순적이다. 그악스럽고, 격렬한 흥분과 분노를 터트리는 히스테릭하고 광란적인 감정의 기복이 심한 모습과 다정다감하고 살갑고 낙천적인 어머니다.그는 어느게 진짜 엄마 모습인지 따지기보다 둘을 다 수용한다. 물론 따뜻한 모습은 어머니의 고향,어린시절과 동일시된다.

무당을 데려와 굿판을 벌였던 어머니는 어린시절 부끄러운 모습으로 기억되지만 이제 그에겐 새롭게 이해된다. “어머니와 무당들의 세계. 그것은 재일교포들 사이에서 굴종을 강요당한 여자들에게만 허용된 토속적인 성역이었다. 세계안에서 어머니와 무당들은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과 영혼의 교류를 도모하고 자신들의 마음의 고통을 다스리려 했던 것이다. 거기에는 벗어날 수 없는 암울한 현실에 대한 체념과 비애가 있었다.”

어머니의 삶을 재구성한 것이지만 차별과 수모속에서 삶을 영위해온 재일한국인 1세대들의 얘기로 읽어도 무방하다.

강 교수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일본 못지않게 급격한 변모를 이룩한 한국 사회가 많은 것을 얻기 위해 많은 것을 잃었음을 깨달았으면 좋겠다. 그 잃은 것들 중 어머니의 기도의 세계가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고 말한다.

신현림 시인은 ‘엄마 살아계실 때 함께 할 것들’(흐름출판)은 더 늦기전에 후회하지 말라며 들려주는 엄마 사랑법이다. “엄마 살아계실 때 잘해라, 이 말이 왜 그때는 가슴 절절히 와 닿지 않았을까? 이 사실이 서글퍼질 때마다 나는 나직이 이제는 소용없는 고백을 하곤 한다. 난 한 번도 좋은 딸인 적 없다”며 시인은 지금 해야 할 것들을 하나하나 들려준다. 시인이 들려주는 서른가지 ‘엄마 사랑법’은 사소해서 그냥 지나치곤 하는 것들이란 점에서 무심함에 한대 얻어맞은 느낌이다. 화장품 등 생활용품 바꿔주기, 살림돕기, 생일상 차려드리기. 용돈드리기, 포옹하기, 단 둘이 여행하기, 목욕탕가기, 매일매일 통화하기 등 일상의 결을 이루고 있는 자잘한 것들속에서 시인은 엄마와의 추억을 더듬으며 그 때는 몰랐던 엄마의 다양한 면모를 길어올린다.

“성장하기까지 자식들에게 매일 하루의 시작과 끝을 함께해준 엄마였다. 그런 엄마의 은혜를 갚는 방법도 엄마 곁을 지켜 드리는 일이더라. 손을 잡고 엄마의 이야기를 하나라도 더 들어주는 것. 엄마를 떠나보내고 나니 효도가 그리 어려운 일이아니었음을 깨닫게 된다. 내 자신이 바보 같아 웃음이 난다.”

대통령에서 물러난 뒤에도 왕성한 활동으로 세계인의 주목을 받고 있는 지미 카터 전 미 대통령의 사모곡은 좀 특별하다. 카터가 1976년 대통령 당선 후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나를 키운 어머니 릴리언부터 만나보라”고 했을 정도로 보통엄마는 아니다. 세상의 잣대와 시선을 과감히 내던지고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기꺼이 맨발로 인도마을을 걸어 다녔던 엄마, 수많은 흑인과 인도노동자들의 이웃이 돼 버린 엄마, 자신의 먹거리를 내준 평생 남부 흑인과 빈민의 삶을 살피는 간호사로서의 삶을 더 사랑한 릴리언의 열정적 삶, 희생과 봉사의 이야기가 지미 카터의 기억으로 되살아난다.

어머니를 보라고 했던 지미 카터의 말은 지금 그에게 다시 해당된다. “없으면 안된다고 생각했던 사람들과 물질로부터 이토록 멀리 떨어진 낯선 땅에서 인생은 남들과 더불어 살며 그들의 사랑을 가장 귀중한 선물로 받아들이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내 자식들에게 단 하나 바라는 게 있다면 각자가 용기있게 도전해 개인에게 의미가 있는 자기 삶의 목표를 이루고 최대한 베풀며 사는 것이다”는 릴리언의 말은 울림이 크다.

이윤미 기자/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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