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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억겁의 緣 품은 달항아리…무수한 선 긋고 또…그렇게 삶을 아로새긴다
빌게이츠재단 회화3점 구입

‘Karma’ 뉴 캠퍼스에 전시

5년전 홀린듯 빠져들어

작업실에서 미친듯 몰두

무심한듯 덤덤한 여백

마음 비우니 제대로 나와




보름달처럼 뽀얗고 넉넉한 조선백자 달항아리를 그리는 화가 최영욱(47)에겐 요즘 ‘빌 게이츠가 선택한 작가’라는 닉네임이 따라다닌다. 세계 최대 규모의 문화 및 자선재단인 빌&멜린다게이츠재단이 최영욱의 대작 회화 3점을 구입했기 때문이다. 게이츠재단의 아트컬렉션 담당 큐레이터는 지난해 12월 미국 플로리다 주 마이애미에서 열린 ‘스코프 마이애미 아트페어’에 출품된 최영욱의 달항아리 회화 연작을 보고 매료돼 대작을 주문, 올 2월 말 작품을 구입(총 4만6000달러)했다.

게이츠재단은 최영욱의 작품 ‘Karma’를 미국 워싱턴 주 시애틀의 게이츠재단의 ‘뉴 캠퍼스’에 내걸 예정이다. 재단이 야심적으로 조성 중인 뉴 캠퍼스에는 뉴욕에 체류하며 활약 중인 김수자의 대형 비디오 설치작업 또한 상영될 예정이어서 이래저래 한국 아티스트의 역량이 글로벌 무대에서도 평가받고 있다. 이번에 게이츠재단이 구입한 최영욱의 ‘Karma(緣)’는 무심한 듯 너그러운 달항아리를 화폭 전면에 꽉 차게 그린 작품. 홍익대 미대와 대학원 출신의 최영욱은 데뷔 초 자연과 도시풍경을 주로 그렸으나 5년 전 어느날 국립중앙박물관 전시실 한 편에 외롭게 놓여 있는 달항아리에 홀린 듯 빨려든 후 ‘달항아리 회화’로 방향을 틀었다.

“두문불출 작업실에 틀어박혀 달항아리를 미친 듯 그렸어요. 수화 김환기 선생을 비롯해 고영훈 강익중 등 많은 선배가 이미 달항아리를 그렸으니 어떻게 하면 더 멋지게 표현할까 하고 매달렸죠. 그런데 결국 달항아리의 본질인 ‘무심한 듯 덤덤한 여백’을 찾고 나서야 물꼬가 터졌어요. 마음을 비우고 절제할수록 더 잘 표현되더라고요.”

마이애미에서 열린 아트페어에 출품된 작품이 빌게이츠재단에 의해 컬렉션으로 채택된 최영욱(47) 작가. 따뜻하고 넉넉한 달항아리의 미감을 화폭에 담았더니 세계가 사랑하더라고 전했다. 
                                                        [ 사진=박해묵 기자/ mook@heraldcorp.com]

그의 작품은 달항아리의 ‘이미지’를 그린 작품이다. 단순히 달항아리를 사실적으로 묘사하기보다, 달항아리에 깃든 추억과 삶을 그리는 것이 특징이다. 이를 위해 최영욱은 캔버스에 젯소(물감을 잘 입히기 위한 바탕재료)를 바른 후 물감을 여러 겹 올려 달항아리 형상을 만든다. 그리곤 연필로 무수히 선을 긋거나, 동양화 물감으로 응어리를 만들며 달항아리 속에 갖가지 ‘추억(삶)’을 새겨넣는다. 그가 백자에 새겨넣은 선에는 우리 고향이 있고, 우리 마을이 있으며, 이제는 손에 잡히지 않는 옛 이야기가 담겨 있다.

“나의 그림은 기억의 이미지화예요. 기억은 이미지를 형성하고 이미지를 통해 기억이 표출되는 거죠. 내가 표현한 이미지는 내 삶의 기억이자 이야기입니다.”

그의 달항아리 속 가는 선은 마치 빙열(도자기 표면의 유약 균열)을 그대로 표현한 듯하다. 이는 달항아리를 그리는 여타 작가의 작업과 확연히 구별되는 부분이다. 

빌게이츠재단이 구입해 화제가 된 최영욱 작 ‘Karma’. 캔버스에 혼합매체.

“도자기를 구우면 생기는 표면의 균열이 마치 인간의 삶처럼 느껴졌어요. 그 선은 내 인생의 길이자, 우리 동네 골목길이죠.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인 우리네 삶처럼 선은 이어지고, 끊어지길 반복합니다. 제 그림 속 우연적인 선을 보며 감상자가 삶의 애환, 질곡 등을 가만히 돌아보는 시간이 됐으면 해요.”

즉, 나를 찾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깨닫게 되고, 그 과정에서 서로를 사랑하고 이해하는 마음이 생겼으면 한다는 것. 자신의 그림이 그 소통을 위한 매개체가 되길 원한다는 바람이다.

그는 도를 닦듯 선을 하나하나 그려가기 때문에 작품 제작에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 최영욱은 또 달항아리의 매력은 비어있는 듯 차있는 볼륨감과 약간 기운 듯한 비정형의 우연적 형태에 있다고 보고 이를 담아내는 데 힘을 쏟고 있다. 그의 달항아리 작품은 미국 필라델피아 미술관에도 2점이 소장됐다. 앞으로 해외에서 더 많은 전시를 해보고 싶다는 그는 “달항아리 그림은 한국인만 좋아할 줄 알았는데 세계인 누구나 좋아하더라. 역시 아름다움은 국경과 언어를 초월해 마음에서 마음으로 오고감을 절감한다. 더 좋은 그림으로 우리의 멋과 역사를 알리겠다”고 다짐했다. 

이영란 선임기자/ 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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