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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사능 비 지나간 자리 의심과 분열만 남았다

전국민이 이토록 비를 두려워 했던 적이 또 있을까.

지난 주말부터 우려했던 ‘방사능 비’가 내린 지난 7일 시민들은 행여 방사능 물질이 자신에게 들러붙어 두고두고 문제를 일으킬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렸고, “괜찮다”는 말만 반복하는 정부의 안일한 태도에 하루 종일 분노했다. 

일각에서는 방사능 물질의 한국 확산에 대한 외국 시뮬레이션 결과를 두고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공포와 의혹만 남았을 뿐, 어디에도 과학적 근거와 사실에 대한 관심은 없었다. 새로운 과학적 사실이 발표돼도 거대한 의혹의 소용돌이에 휩쓸려가고 남는 것은 또 다른 의혹 뿐이었다.

예고된 비를 앞둔 지난 6일 일본이 IAEA에 보고한 방사능 물질 예상 확산 모형에 한국으로의 직접 확산 가능성이 언급되자 국민들의 불안감은 다시 들썩였다. 

경기도 등 일부 지역의 학교는 자체 휴교를 감행했고, 집집마다 우비와 마스크, 장화 등으로 방사능에 대한 무장을 서두르느라 관련 제품이 곳곳에서 품귀 현상을 빚기도 했다. “기상청은 편서풍 타령만 하고 정부는 안전하다는 말만 할 뿐 국민 건강 생각하지 않는다”며 분통을 터뜨리는 주부가 있는가 하면, “미량이라고 해도 방사능 비 맞다보면 심각한 질병이 발생한다”는 자극적인 글을 올리는 네티즌도 나왔다. 특히 남자친구나 남편이 군 복무중인 여성들은 비를 맞으며 훈련할 군인들 생각에 발을 동동 구르기도 했다.

이날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이 제주 지역에 내린 비에서 측정한 방사능 물질의 양은 방사성 요오드131이 ℓ당 2.77베크렐(㏃), 방사성 세슘137이 ℓ당 0.988베크렐(㏃), 방사성 세슘134가 ℓ당 1.01베크렐(㏃)이었다. 이는 일반인 방사선량 한도의 20분의 1에서 110분의 1에 그치는 수준으로 X선을 1회 쬐는 것의 45% 정도에 지나지 않는 양이다.

방사능 비의 위험성이 우려만큼 크지 않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선동하는 듯이 방사능에 대해 근거없는 이야기 좀 하지 말자”며 불안 확산을 자제하자는 의견도 나왔다. 

일각에서는 일본이 방사능 물질 확산 예상 모델에 한국을 직접 끌어들인 저의가 의심스럽다는 분석도 나왔다. 정모씨 등 일부 네티즌들은 “현재 일본산 농수산물 뿐만 아니라 일본 제품들이 방사능 오염에 대한 의심을 받아 국제 시장에서 외면받고 있다는데, 한국까지 방사능 오염 위험에 노출됐다고 발표해 한국 제품들의 경쟁력을 끌어내리려는 것 아니냐”며 일본측 발표에 대한 의심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시민들 사이에 퍼진 불신은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간 불안의 근본 원인이 됐던 독일기상청의 시뮬레이션 결과가 방사능 물질이 일본에서 남동쪽 방향으로 확산될 것으로 수정됐고, 일본기상청도 방사능 물질이 북동풍을 타고 캄차카 반도로 확산될 거라는 새로운 예상 결과를 내놨다. 그러나 이같은 소식을 접한 시민들은 “우리 나라 기상청 말을 못믿고 다른 나라 기상청 말에 기대야 하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라며 기상청에 대한 원색적인 비판도 서슴지 않았다.

불신의 근본은 명확하지 않은 정부의 설명이 ‘말 바꾸기’라는 의심을 자아냈고, 뒷북 대책으로까지 이어졌다는 지적도 있다. 기상청은 애초 편서풍의 영향을 들며 한국으로의 방사능 물질 이동이 없을 것처럼 강조했다가 지난 4일에는 “일본에서 캄차카 반도와 북극을 거쳐 북반구 전역으로 확산된 방사능 물질이 국내로 일부 들어온 것”이라며 방사능 물질의 국내 유입을 시인했다. 

정부는 일찌감치 예고된 비에 대해 아무런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있다가 6일 오후가 되어서야 노천 정수장에 빗물 방지용 덮개를 씌우라는 방침을 내려보냈을 뿐이었다. 모든 가능성에 대한 정부의 충실한 설명과 발빠른 대응이 없다면 불신이 사그라드는 데에는 많은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도현정 기자@boounglove>
kate01@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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