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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적과의 동침 (34)

글 채희문/그림 유현숙


구멍가게도 아닌데 임원에게 야!, 너! 하며 종 다루듯 하는 유민 회장에게 반기를 든 것일까? 혹은 어차피 쪽박 찰 것이라 여긴 회사이니 미리 쪽박 찰 각오하고 내지른 것일까? 자칫하면 1원도 건지지 못하고 거덜이 날 수 있다는 말에 유민 회장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소리 질렀다.

“거덜이 나? 너, 당장 사임서 써라. 사직하라고!”

유민 회장은 신경이 극도로 예민해져 있었으므로 앞 뒤 상황을 분간할 수 없었다. 그가 사직 운운 하자 창업식에 참석한 임원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회장님, 그런 말씀이 아닙니다. 조 이사는 국제적으로 펼쳐야 할 마케팅이 그만큼 중요한 사업이라는 겁니다.”

“그래? 자네 마케팅 담당이야?”

“아닙니다. 저는 자산관리를 맡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네가 뭘 안다고 나서? 자네도 사임서 쓰라고.”

일이 이 지경으로 돌아가자 ‘런런런 SPC’의 창업식은 그대로 쫑을 낼 수밖에 없었다. 까짓 의례적인 창업식이야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지… 유민 회장은 머리끝까지 뻗쳐오는 신경질을 가까스로 참아내며 회장실로 되돌아 와야만 했다.

“물 좀 줘요.”

신입 여비서에게 인터폰을 통해 물 한 잔을 주문한 뒤에 의자에 앉아 책상 위로 두 다리를 뻗은 유민 회장은 불현듯 현성애가 그리워 졌다. 오늘처럼 비참한 꼴을 당했을 때 현성애는 바람처럼 다가와 꿀물 한 잔을 받쳐주곤 했었지. 그 달콤한 꿀물을 들이켜면 오장육보가 사르르 녹아드는 기분이었다.

“물 좀 빨리 가져오고, 스포츠마케팅 팀에 연락해서 현성애 차장 좀 오시라고 해요. 올 때 에 SPC 역할분담 개념표 가져오라고 하세요.”

유민 회장은 외로웠던 것이다. 돈 많은 재벌회사 회장이 뭐가 부족해서 외롭다는 소리를 하냐고? 모르시는 말씀. 외로움이란 물과 같아서 아무 곳으로나 흐르고, 갑남을녀 저마다의 가슴 속으로 스며들게 마련인 법. 저 멀리, 고구려 시절의 유리왕도 날아가는 한 쌍의 꾀꼬리를 보며 외로워하지 않았던가. 모름지기 외로움이란 청상과부 되어 수절하며 월야침침 야삼경에 허벅지를 바늘로 찔러대던 독수공방 아녀자의 전유물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역할분담 개념표가 필요하세요?”

현성애가 유리문을 열고 들어서자 향기가 은은히 퍼져 나오고 냉랭하던 회장실은 꽃이 만발하는 봄 동산처럼 화사한 기운을 뿜어대기 시작했다. 세상에나, 이렇게 아름다운 여자를 내 어찌 아래층으로 내려 보냈을까…

“런런런 SPC의 구조를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싶어서 불렀어요. 사업을 총괄하고 운영관리를 맡은 주체가 누구로 되어 있지? 사업관리자가 누구냔 말예요.”

“ABC컴이라고 되어 있네요. ABC컴의 주인이 누구예요?”

“나도 모르겠어. 그래서 열 받는 게지. 누가 주인인지도 모르는 회사에 3000억 원을 투자해야 하니 오죽 답답하겠어?”

“정말 그러네요. 우리 회사는 오로지 투자만 맡게 되어 있어요. 물론 수익배분을 하게 되어 있지만 배분은 사업을 성공시킨 이후에나 받을 수 있는 거잖아요? 사업에 실패하면 3000억 원을 다 날리게 된다는 뜻인가요? 한 푼도 못 건지고요?”

“그러게 말이오. 현 양이 내 맘을 알아주니 위안이 되는 군.”

따지고 보면 똑같이 거덜 날 수 있다는 대답인데 조 이사에게는 사표를 받고 현성애에게는 위안을 받다니. 생물시험 답안지에 ‘항문’이라고 쓰면 동그라미, ‘똥꼬’라고 쓰면 가위표를 치는 선생님의 심정과 무엇이 다를까. 깊은 한숨을 내쉬며 의자 뒤로 몸을 길게 뻗는 유민 회장의 옆으로 어느새 현성애가 바짝 다가서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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