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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죽음이 일상이 된 북녘…기록 남기는게 작가책임”
영화 ‘두만강’ 개봉 앞둔 장률 감독
“탈북자의 굶주림이 가장 심했던 2000년대 초반에 구상했죠. 투자도 어렵고 제작이 지연되니까 저도 저 나름대로 영화를 그만둘 명분을 찾았어요. 몇 년 후엔 달라지겠지. 그런데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아요. 희망이고 뭐고 한 사람 한 사람의 고통과 심정 속으로 들어가봤냐, 영화는 그것을 기록하는 매체입니다.”

영화 ‘두만강’은 오는 17일 개봉하는 재중동포 감독 장률의 6번째 신작이다. 두만강 지역의 중국-북한 접경지대인 투먼(圖們)시 한 마을을 배경으로 먹을 것을 찾아 중국 공안(경찰)의 눈을 피해 두만강을 건넌 북한 소년과 조선족 소년이 축구를 통해 맺은 우정을 그렸지만 결국은 가슴 아픈 비극으로 끝난다. 여기서 굶주림에 지친 북한 아이들은 강을 건너 여기저기를 헤매다 그냥 쓰러지기도 한다. 죽음이 일상인 곳. 죽음보다 충격적인 것은 죽음을 슬퍼할 수조차 없는 현실이다.

“슬픔도 여유가 있어야 생기는 것이지요. 고난 속에 있는 사람들은 슬픔도 느낄 수 없습니다. 불편하더라도 보고 견디고 맞서야 합니다.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세상 아닙니까.”

영화 개봉과 한국영상자료원에서 마련한 전작 특별상영전을 위해 중국에서 내한한 장률(47) 감독을 최근 서울 필운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두만강 얼음 위에서 북한 아이들과 조선족 아이들이 모여 놀던 풍경은 내게 아주 익숙했다”며 “내가 그 지역 출신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구상하게 됐다”고 말했다.

사실 장률 감독은 한국영화계 주류에선 여전히 낯선 이름이고 이방인이며 타자다. 일찌감치 중국으로 건너간 조부의 대를 이은 재중동포 3세지만 중국, 북한, 한국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경계인’이다. 조부는 일본인에게 맞아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그는 옌볜(延邊)대학 중문학 교수로 재직하다 그만두고 지난 2000년 단편 ‘11살’로 영화에 데뷔했다. 


이 영화가 베니스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되면서 영화제 순례를 시작해 그의 장편 6편은 칸, 베를린, 로카르노, 밴쿠버, 로마 등 유수의 영화제에 초청받았다. 그의 뿌리가 그런 것처럼 그의 영화 또한 경계인들의 비극적인 삶을 다룬다. 그는 “뿌리나 이름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며 “분단도 이름을 강요해서 생긴 일 아니겠느냐. 나를 중국인이나 재중동포, 조선족, 조선사람 뭐라고 불러도 내 본질이야 변하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썩 유쾌한 사람이지만 영화는 비극으로 일관한다. 죽음이 전염병처럼 감염된 일상과 늘 뭔가를 해야 하고 찾아야 하는 가난한 인물들을 보여주면서 과연 삶을 지탱하도록 하는 것은 무엇인지 집요하게 물어본다. 그는 “희망을 삶에서 찾아야지 영화에서 찾으려고 하느냐”고 반문한다.

‘두만강’은 마치 관객의 가슴을 둔기로 내리치듯 감정의 큰 너울을 만들어내는 작품이다. 장률 감독의 작품 중 가장 대중적이고 강렬한 드라마의 영화로 꼽힌다. 그의 작품은 여전히 비극적인 세계관을 보여주지만, 깊은 절망의 응시야말로 희망의 근거라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증명한다. 

이형석 기자/suk@heraldcorp.com
사진=김명섭 기자/ msiro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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