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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적과의 동침 (11)
글 채희문/그림 유현숙


모두가 레스토랑의 창가에 일렬로 늘어서서 폭주 자동차 쇼를 내려다보는 중에 느닷없이 유민 회장의 핸드폰이 울렸다. 그는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로 뻣뻣한 지겟작대기를 움켜쥐고 있었으므로 전화 받기에도 매우 불편한 상황이었다.

“뭐라고? 저 자동차를 모는 미친놈이 우리 호성이라고? 확실해?”

“확실합니다, 회장님. 제가 어찌 아드님을 몰라보겠습니까?”

전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목소리에는 다급한 심정이 배어 있었다. 유민 회장은 손등으로 눈을 비빈 뒤에 다시 한 번 유심히 창문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광장이 제법 넓긴 하지만 가장자리로는 수많은 차량이 신호대기 중이었고 광장을 가로지르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 편이었다. 그 사람들 틈을 누비며 빨간색 자동차 한 대가 질주하고, 급정거를 하고, 급회전을 하고 있었다. 그때마다 타이어 밑으로 푸른 연기가 치솟곤 했는데 아무리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아도 그 주인공은 확실히 아들 녀석임에 분명했다.

“지금 막 드리프트를 시도했습니다, 회장님. 와우! 실력이 대단하네요. 007 제임스본드 뺨치는 실력입니다. 손에 땀이 납니다, 회장님.”

뻣뻣한 지겟작대기를 누르기 위해 한 손을 바지주머니에 넣고 허리를 구부린 채 전화를 받는 유민 회장은 그러나 신이 날 수밖에 없었다. 적시에 나타나 자동차 경기의 진수를 보여주는 아들이 어쩌면 그리도 멋지게 여겨지던지… 더구나 전화기에서는 현장 생중계가 이어지고 있으니 금상첨화였다.

“코너링에서 리어가 약간 돌고 있습니다, 회장님. 광장은 표면이 울퉁불퉁한 돌길이기 때문에 그래블에서 유용한 청키트래드 타이어를 사용해야 하는데… 저런! 그대로 드리프트를 감행하는군요. 접지가 부드럽지 못해서 불안합니다.”

“뭐야? 드리프트? 저렇게 사까닥질 하는 걸 드리프트라고 하나?”

“그렇습니다, 회장님. 저렇게 장애물이 많은 상태에서 드리프트를 감행하는 자체가 짱! 짱입니다, 회장님. 우와, 멋져요, 대단합니다.”

“그래, 짱이구나. 그런데 자넨 대체 누구야?”

“네, 생산관리부 오길동 과장입니다.”

“자동차 경주에 관심 있어?”

“그럼요, 자동차 경주야말로 제 일생일대의 꿈입니다, 회장님.”

“그런 녀석이 어째서 생산관리를 하고 있어? 자네 당장 랠리 팀에 가담 하도록. 내일부터 스포츠마케팅 팀으로 출근해.”

“네? 정말입니까?”

유민 회장은 어느새 흥분한 상태였다. 원래 자동차 경주란 것이 차를 모는 쪽이나 구경하는 쪽이나 다 같이 흥분시키는 묘한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신희영은 즉석에서 이런 식으로 인사발령이 나는 꼴을 묵묵히 바라보고만 있을 사람이 아니었다.

“우리 회사 스포츠마케팅 팀에는 골프선수만 들어올 수 있다고요.”

천둥이 울린 뒤에 이어지는 정적! 신희영이 고함을 지르자 레스토랑은 일순 고요해졌다. 그러나 이런 상황을 알 까닭이 없는 오길동 과장은 더욱 신이 나서 중계방송을 하고 있었다. 바늘 떨어지는 소리마저 생생히 들릴 만큼 고요한 실내에 전화기에서 울리는 목소리만 또렷하게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이 얼마나 환장할 노릇인지…

“힘차게 달리다가 사이드브레이크를 당기면서 핸들을 팍 틀면 차가 거꾸로 돌게 됩니다, 회장님. 그런데 그게 용기가 없으면 감행하기 어려워요. 깡이 있어야 하는 겁니다. 물론 차도 좋아야 하고요. 저 차는 뭘까요? 너무 빨라서 가늠하기 어렵지만… 란치아 스트라토스? 스바루 임프레자? 피아트 아바르트스? 아! 이제 알겠습니다. 포르셰 카레라 아닌가요? 그런데 이제 보니 옆자리에 멋진 아가씨도 타고 있습니다, 회장님. 긴 머리카락이 날리는 정도로 보아 단거리를 시속 160킬로 정도로 질주하는 모양입니다. 그렇게 달리다가 또 다시 드리프트! 아! 멋집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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