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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살림의 여왕 ‘한과의 여왕’ 되다
늦깎이 주부 사업가 심영숙 교동한과 대표
평생 집안일만 하다 사업 도전

12년만에 연매출 100억대 업체로

초콜릿 한과등 끝없이 도전

세계 과자시장 ‘한과 바람’ 일으킬것




“요즘은 여성들도 평생교육원이니, 문화센터니 많이 배우러 다니잖아요. 배우는 데 그치지 말고 생산적인 일로 끌어냈으면 좋겠어요. 일 하고 보니 좋은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에요”

가내수공업으로 간간이 맥을 잇는 전통 과자 정도로 인식되는 한과로 연 매출 100억원을 올리는 늦깎이 주부 사업가 심영숙(58) 씨는 만나자마자 ‘일하는 주부’ 예찬론을 폈다. 일 재미에 빠지면 마사지 안 받아도 늙어갈 시간이 없을 정도로 젊음도 유지할 수 있고, 아이들도 열심히 사는 엄마 모습 보고 배우는 게 많단다. 결혼과 출산을 거친 대부분의 여성들에게는 사업이 아닌, 취업만 해도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심 씨는 집안일 뚝딱뚝딱 하던 실력이면 누구라도 나와서 일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심 씨는 결혼 후 시부모 모시고 쌍둥이 자녀를 키우며 ‘내조의 여왕’으로 지내다 12년 전 사업에 뛰어들었다. 무역업을 하는 남편 뒷바라지를 하느라 평소 바이어들 맞는 일에 신경을 썼던 심 씨는 어렸을 때 고향(강원 평창)에서 자주 먹던 추억에 착안해 직접 한과를 만들어 바이어들에게 선물하곤 했다. 

찹쌀, 깨 등 천연 원료를 이용해 빛깔 곱게 빚어낸 한과에 바이어들은 감탄했고, 주위의 뜨거운 반응에 갈수록 재미를 붙인 심 씨는 한지공예 등 전통 문화를 틈틈이 배우며 취미생활을 해왔다. 그렇게 20여년을 살아오던 어느 날 남편이 “그동안 살림하느라 애썼으니 앞으로 하고 싶은 것을 해보라”고 권유했다. 그 말에 심 씨는 선뜻 한과를 제 2의 인생 파트너로 선택했고, 12년 만에 서울 강남 한복판과 유명 백화점 매장마다 점포를 낸 ‘한과계 대표업체’로 성장했다.

솥뚜껑 운전만 하다 사업은 처음 시작했지만 남편 덕분에 큰 어려움은 느끼지 못했다. 자리를 잡기까지 시부모님도 적극 후원해주셨다. 시부모님을 든든한 지원군으로 끌어들이게 된 배경에는 평소 맛있는 음식으로 시부모님의 마음을 사로잡아왔던 것이 주효했다. 심 씨는 “시아버지께는 맛있는 안주로 술상 차려드리고 술친구처럼 지냈다”며 털털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회사 운영에서도 주부 특유의 ‘가족 경영’을 강조했다. 

직원의 95%가 여성이다 보니 교동한과에서는 회사 일과 집안일이 충돌하면 무조건 집안일을 우선으로 친다. 어린 자녀를 둔 직원들은 아이가 아프다거나 유치원, 학교에 일이 있다면 두말없이 아이를 돌보는 게 먼저다. 심 씨는 “집안이 편안해야 나와서 일도 잘할 수 있다”며 파격적인 ‘집안일 우선주의’의 배경을 설명했다. 덕분에 직원들은 평균 근속연수가 10년에 달한다. 교동한과가 첫발을 내디딜 때부터 함께한 직원들도 부지기수다.


심 씨가 사업 아이템으로 한과를 택한 데는 한과가 품격에 비해 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는 안타까움도 한몫했다. 한과는 김치, 된장 못지않은 발효식품인 데다 달콤한 맛이나 색을 내는 재료까지 전부 자연에서 차용한 친환경식품이다. 포장부터 맛까지 한국 고유의 멋과 아름다움이 담겨 있지만 일반 소비자들이 한과에 눈길을 주는 때는 명절이 고작이다. “지금은 많이 좋아졌지만 처음 사업을 할 때만 해도 한과 제조업체가 영세했어요. 애초에 돈 되는 사업이라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고, 이익만 따진다면 못했겠죠. 자부심 갖고 계승돼어야 하는 전통 문화라는 점 때문에 고집했어요”.

한과를 돈벌이 수단이 아닌 관심의 대상으로 본 심 씨의 접근법은 소비자들과도 ‘통했다’. 청정 원재료만 고집해 맛을 최고급으로 끌어올렸고, 평상시에도 케이크나 빵 대신 찾을 수 있도록 소포장 제품을 개발해 소비자와의 거리를 줄이는 데 주력했다. 소비자들이 눈길을 주고, 손길이 가도록 판을 벌려놓으니 고객은 자연히 따라왔다. 교동한과는 한과시장에서 70%의 점유율을 차지하는 중견업체로 거듭났고 아시아나항공의 기내식으로도 진출했다. 지난해 서울에서 개최한 G20 정상회의에서도 외국 귀빈들의 눈길을 끄는 고급 디저트로 거듭났다.

심 씨는 최근 한과의 세계화를 화두로 여러 궁리와 도전을 거듭하고 있다. 회사 이름도 전통과 현대화를 아우르는 의미로 교동CM(classic & modern)으로 바꿨다. “전통만 고집해서는 앞으로 나갈 수 없습니다. 현대화(modern)가 함께 가야 전통이 클 수 있죠.” 외국인 소비자들의 마음을 잡기 위해 가루 날림 없이 한 입에 넣을 수 있는 고시볼 등의 제품도 개발하고, 밸런타인데이를 겨냥해 초콜릿을 이용한 한과도 만들었다. “커피에 유과를 곁들여보면 최상의 조합임을 알 수 있을 것”이라며 고정관념을 깰 것을 주문하는 심 씨의 열의는 세계 과자시장에 곧 한류 바람이 불 것을 예고하는 듯했다.

<도현정 기자@boounglove>
kate01@heraldcorp.com




한과 보관법

방부제 없는 천연과자

구입후 50일 내 먹어야


사철 구분 없는 과자이긴 해도 한과의 ‘제철’은 명절이다. 제사, 식후 간식 등 쓰임새가 많아 명절만 되면 선물용으로 인기를 끄는 한과 덕분에 한과 공장들은 지난달부터 몸살을 앓을 정도로 특수를 누리고 있다. 강원, 경기 등에 위치한 한과 공장들은 설 연휴 전까지 한 달째 주말에도 근무하며 주문 물량을 맞추느라 애를 먹었다는 후문이다.

손님이 모이거나 제사를 지내야 하는 날이 되면 자연스레 찾게 되는 한과는 차 문화가 발달하면서 탄생하게 됐다. 차의 쌉싸래한 맛과 어울리려니 자연히 꿀이나 조청을 사용해 달콤한 맛을 내게 됐다. 한과는 약과, 유과, 강정 등 기름에 튀기고 꿀을 묻히거나 꿀에 졸여 만든 것들이 대부분이다. 때문에 기름기와 당분이 많아 칼로리도 높다. 

먹을 것이 풍족하지 못했던 시절에는 기름기 감도는 달콤함이 어린아이들을 설레게 하는 맛이었으나 서구식 식생활이 자리잡은 요즘에는 다이어트를 방해하는 명절 음식으로 꼽히기도 한다. 유과나 약과는 1인분(30g) 기준으로 100㎉가 훌쩍 넘어설 정도다. 그러나 최근 한과 업체들마다 기름기와 당분을 줄인 저칼로리 한과로 인기 회복을 노리고 있다. 

오히려 방부제 없는 천연과자라는 점을 소비자들에게 내세우며 웰빙 식품시장을 노리고 있다. 대기업이 프랜차이즈 형식으로 판매망을 넓혀가고 있고, 전통 방식으로 영세한 규모로 한과를 만들던 농촌 마을은 농협의 도움을 받거나 인터넷 판매 등으로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한과는 찹쌀을 씻고 말려 발효시킨 후 사용한다. 모양을 빚고 튀긴 후에도 꿀이나 조청을 바르고 모양이 완전히 잡힐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까다로운 과자다. 만드는 데는 인내심이 필요한 데 비해 방부제가 없다 보니 보관 기한은 짧다. 업체 관계자들은 “한과를 구입할 때 생산년월일이 가까운 것을 고르고, 50일 이내에 먹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도현정 기자@boounglove>
kate01@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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