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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적과의 동침(4)
글 채희문/그림 유현숙

김지선으로부터 포르셰 키를 넘겨받자 유호성의 가슴은 벅차도록 뛰기 시작했다. 커피숍 주차장에 웅크리고 있는 포르셰 968 카브리올레는 단순한 쇠붙이가 아니라 곧 창공을 향해 한껏 날아오르기 위해 숨을 가다듬고 있는 붉은 독수리였다. 기존 포르셰 911의 RR 방식에서 벗어나 엔진을 프런트에 탑재하고, 드라이브 FR 방식을 채택한 3000㏄ 240마력의 2인승 머신!

“정말 가슴이 벅차다.”

유호성은 붉은 독수리의 문을 조심스레 열고 흰색 가죽으로 덮인 운전석에 올라앉았다. 마음 같아서는 고정너트를 풀어 천막처럼 덮여 있는 루프를 연 채 달려보고 싶었지만 날씨가 추웠으므로 오픈에어링 주행은 참아야 했다.

“배기음을 들으면 사자 같기도 하고, 모양새를 보면 독수리 같기도 하고….”

“달릴 때는 먹이를 쫓는 사자, 코너링할 때는 하늘을 선회하는 독수리 같을 거야.”

“아, 정말 멋진 차로군.”

유호성은 드디어 시동 키를 돌렸다. D레인지를 확인하고 액셀러레이터에 발을 가져다 대는 순간, 등허리 부분이 울컥 앞으로 당겨지는 느낌과 함께 블랙사바스의 드럼 연주와도 같은 낭랑한 배기음이 터져 나왔다.

“달려! 오빠.”

하늘은 파랗게, 구름은 하얗게, 실바람도 불어와…. 불현듯 신중현의 노래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액셀을 밟을수록 붉은 독수리는 푸른 하늘, 하얀 구름 속으로 이륙하며 날아오르는 기분이었다. 아, 날씨가 아무리 추운들 어떠하랴. 유호성은 고정너트를 풀어서 머리 위에 드리워져 있던 검은 루프를 걷어내었다. 그러자 코끝이 쨍하도록 찬바람이 밀려들어왔고, 김지선의 갈색 머리카락이 이사도라 덩컨이 두르고 다니던 기나긴 스카프처럼 펄럭이며 뒤로 흩날리기 시작했다.

“이 맛이야. 젊다는 것은….”

“그래요, 우린 젊어!”

포르셰 968 카브리올레를 몰고 가는 중에 신호등이 눈에 들어올 리 만무했다. 독수리가 창공을 박차고 날아오르는데 붉은 신호등을 켜는 미친놈이 어디에 있을까.

“무조건 고야!”

“어머나, 오빠 멋져!”

붉은 신호등이건, 점멸하는 노란색 경고 신호등이건 유호성은 알 바 아니었다. 먹이를 쫓는 사자, 창공을 선회하는 독수리에 올라앉았으니 오로지 달리고, 날개를 펴고, 속도를 높이는 데에만 열중했다. 신호위반? 그런 것은 소위 평민에게나 해당하는 규칙이었다. 재벌 아들로서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레이싱 모델을 옆자리에 태우고 달리는데 무슨 잔소리가 그리들 많을까.

“오빠, 우리 레이싱팀을 만들게 되면 이 차를 몰자.”

“좋지. 내 심정도 같아. 그런데….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어. 우린 앞으로 거성자동차에서 생산하는 국산차를 몰아야만 한대.”

“누가? 누가 그런 한심한 소리를 해? 골치 아프게 무슨 문제가 있다는 거야?”

“우리 아버지 유민 씨. 정부 고위 관료와 무슨 계약 관계에 얽혀 있나봐.”

“아, 정말 구리다. 구려! 거성자동차를 몰고 어떻게 랠리에 출전하겠다는 거야? 우리가 뭐 이현세 화백의 외인구단인 줄 알아?”

“어쩌면 외인구단의 주인공이 될 지도 몰라, 우린.”

열 받았나? 유호성은 신호위반을 계속하며 점점 더 속도를 높여가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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