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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폐지·현수막 재활용…의도보다 멋진 상품 만들죠”
녹색기업 이끄는 20대 여성CEO…‘제이드’홍선영 대표·‘터치포굿’박미현 대표
제이드 홍선영 대표:

멸종위기동물 주제 폐지로 문구류 제작

초기엔 구명조끼 입은 북극곰 그리다가

아름다운 자연 그대로의 모습 담아

“연필 하나도 가치 있어야 의미” 한정생산


터치포굿 박미현 대표:

현수막 재활용해 에코백 제작

세상에 단 하나뿐인 가방 큰 매력

“소비도 환경 살리기 기여” 알리고파

“현수막 사라져 문닫는 게 목표죠”




올 겨울 지구촌 곳곳이 꽁꽁 얼어붙었다. 중국 일부 지방은 영하 48도까지 기온이 떨어졌고 영국은 100년 만의 혹한을 맞았다. 지구 남쪽은 최악의 물난리로 수십 명이 목숨을 잃었다. 빙하가 사라지고 있는 지구 반대편에선 삶의 터전을 잃어가는 북극곰이 울고 있다. 어쩌면 이건 시작인지도 모른다. 지구온난화로 한파와 홍수는 점점 더 강도 높게, 더 자주 일어날 거란 어두운 전망이 나오고 있다. 최근의 이상기후는 일종의 경고음처럼 들린다.

지구가 아프다지만 내 일처럼 여기기는 쉽지 않다. 여기에 손 내민 젊은이들이 있다. 덩치 큰 후원처를 등에 업은 것도, 세상에 너그러워질 만한 연륜 있는 나이도 아니다. 아직 20대인 그녀들은 상품과 광고에 등장하는 동물에게도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고 싶었고, 마구잡이로 버려지는 현수막을 줄이고 싶었다. 그렇게 각각 멸종위기 동물을 주인공으로 제품을 만들고(‘제이드’), 현수막을 재활용해 에코백을 만들게 됐다(‘터치포굿’).

소위 ‘좋은 일’을 한다고 해서 내 상품을 너그럽게 봐주십사 하는 어리광은 없다. 사람들이 행복해질 수 있는 제품, 삶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제품을 만들겠다는 욕심 하나로 똘똘 뭉친 그녀들이다.

‘터치포굿’은 버려지는 현수막으로 에코백을 만든다. 현수막이 줄어들고 없어져서 즐겁게 문을 닫는 게 이 회사의 목표다.

▲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는 기업 꿈꿔요”-‘제이드’ 홍선영(26) 대표

대학교 1학년 때 북극곰 인형을 선물 받았다. 그게 제이드의 시작이 될 줄은 몰랐다. 북극곰 인형에 애착이 생기다 보니 살아 있는 북극곰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당시 컴퓨터 학원에서 내준 디자인 실습 과제를 하는데 자신도 모르게 북극곰만 그려댔다. 주위 사람들의 권유로 북극곰 디자인을 스티커로 만들어 봤는데, 우연찮게 부산국제어린이영화제에서 판매할 기회가 생겼다. 부스에 들른 사람들 10명 중 8명은 스티커를 사갈 정도로 반응이 좋았다. 그런데 문득 “내가 생존 위기에 처한 북극곰을 이용해 돈을 벌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죄책감이 들었다. 사람에겐 마땅히 초상권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는데, 동물들은 말을 못하고 돈의 가치를 모른다는 이유로 그 권리를 박탈당한다. 내가 모델료를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제이드’는 멸종 위기의 동물들을 주인공으로 문구류를 비롯해 여러 제품을 만든다. 처음에는 폐신문지로 만든 연필, 재생지를 쓴 노트를 만드는 데 집중했다. 하지만 제이드를 운영하면서 ‘친환경 제품’에 대한 생각도 달라졌다. 카드 한 장이라도 제대로 쓰이지 않고 또 쉽게 버려진다면 친환경 제품이라 할 수 없다. 반대로 100% 친환경 재질이 아니라고 해도 사람들이 이 노트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쓰고, 다 쓴 뒤에도 쉽게 버리지 않고 간직한다면 그것이 진정 친환경적인 제품이 아닐까. 그런 생각 때문에 요즈음엔 물건을 쉽게 만들지 못한다. 연필 한 자루라도 꼭 필요한 사람에게, 주고 사는 이에게 가치 있는 제품으로 남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에서 제이드의 제품은 모두 한정 생산한다.

제이드를 운영하면서 사람과 자연의 관계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됐다. 북극곰 스티커를 만들 때만 해도 녹아가는 빙하 위에 북극곰이 구명조끼 입고 있는, 조금은 자극적인 것들을 그렸다. 이제는 있는 그대로 자연의 모습을 제품에 담으려 한다. 개인 블로그에도 북극곰이 위험에 처해있다는 얘기를 주로 썼는데, 이제는 북극곰이 어떤 동물인지 있는 그대로 알리고 싶어졌다. 북극곰을, 참돌고래를, 그리고 자연 그 자체를 진심으로 아름답게 느끼고 사랑하게 된 것 같다. 자연이 위험에 처해 있기 때문에 무언가를 해야 하는 게 아니라, 이렇게 아름다운 것이기에 지켜가야 하는 이유가 절실하다.

제이드의 지향점도 ‘제이드 소사이어티(Jade Society)’로 바꿨다. 사회적 기업이건 일반 기업이건 사람들한테 물건을 파는 건 똑같다. 물건은 사람들에게 생각보다 큰 영향을 미친다. 그렇기 때문에 서비스를 하건 제품을 만들건 신중해야 한다. 광고를 보면 대부분의 기업들이 더 빠르고 편리한 것만을 내세운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1000만화소 카메라로 사진을 찍을 필요는 없지 않나. 어떻게 하면 사진을 찍는 사람과 찍히는 사람이 더 즐겁게, 더 행복해질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게 주된 일이다. 기업은 더 빠르고 더 편리한 것을 추구하기 전에, 사람들을 더 행복하게 하기 위해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제이드를 그런 기업으로 만드는 게 꿈이다.


▲ “없어지는 게 목표인 회사랍니다”-‘터치포굿’ 박미현(27) 대표

나는 어렸을 때부터 불만이 많은 꼬마였다. 불만이 있으면 그걸 해결하기 위한 실천도 있어야 한다는 조언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누구나 현수막이 한 번 쓰고 버리는 낭비에 쓰레기라는 건 알고 있지만 마땅한 대안이 없어 습관적으로 쓴다. ‘터치포굿’은 버려지는 현수막으로 에코백을 만든다. 친환경적 실천이라고 하면 매우 불편하고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한다는 선입견이 있는데, 이런 오해는 사람들을 등돌리게 한다. 대단한 결심을 하지 않더라도 ‘소비’라는 일상적인 행위가 환경을 살리는 일에 기여할 수 있음을 ‘터치포굿’을 통해 알리고 싶었다. 현수막이 줄어들고 없어져서 즐겁게 문을 닫는 게 우리 회사의 목표다. 


터치포굿의 ‘Good’에는 ‘좋은 가치’이기도 하지만 ‘재화’라는 뜻도 있다. 사회적 가치를 담고 있으면서 제대로 된 상품을 만들어 내겠다는 뜻이다. 재활용 에코백이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매력은 세상에 단 하나뿐인 가방이라는 점이다. 가볍고 빨리 마르는 현수막은 여행용 가방으로, 100% 방수가 되는 광고판은 아이패드 파우치 등으로 활용된다. 5%의 수익은 환경 재해로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쓰인다. 2009년부터 2011년까지 환경성 피부질환(아토피) 아동을 위한 물품과 캠프 지원 등에 수익 일부를 써왔다.
“때때로 내가 제대로 가고 있는 건가”라는 의문이 들 때도 있었다. ‘터치포굿’이 문을 열었을 당시엔 취업이 안 돼 창업을 한 게 아니냐, 이 이력으로 대기업에 취직하려는 게 아니냐는 오해를 사기도 했다. 가끔 친구들을 만나면 친구들의 통장 잔고나 일을 가르쳐주는 선배들이 부러울 때도 있다. 하지만 그 친구들은 반대로 내 일을 부러워한다. 친구들이 경제적인 안정을 가졌다면 난 주체적으로 내 삶을 꾸려서 얻은 마음의 안정이 있다.

나는 운이 좋은 편이다. 대학생 때는 내가 어떤 일을 할 때 가장 능력을 잘 발휘할 수 있고 행복할 수 있는지 알아내는 데 많은 시간을 소비했다. 지금 20대의 젊은 나이라면 내 삶을 평가할 나만의 기준을 세우는 데 그 시간을 썼으면 좋겠다. 타인의 기준이 아닌 나의 기준으로 평가해 스스로 부족함을 깨닫거나 자신을 자랑스러워할 줄 알아야 한다. 개인적으로 ‘좌절하지 말라’는 말이 싫다. 실컷 좌절하고 실패해도 된다. 그 작은 실패와 좌절이 내 삶 자체의 실패와 좌절이 되지 않도록 연습하면 되는 일이다.

이혜미 기자/ham@heraldcorp.com, 
사진=이상섭 기자/babt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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