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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파멸의 시작 (39)

글 채희문/그림 유현숙


‘적과의 동침’이란 말이 있다는 것은 사업상 이득이 생기기만 하면 원수지간이라도 힘을 합할 수 있는 경우가 많음을 시사한다. 하지만 이미 정신적으로 이혼을 한 아내와 함께 사업을 꾸려가기란 결코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소설가라든지 철학자들… 별거 아니로구먼. 적과의 동침? 살아남은 자의 슬픔? 그런 제목들, 처음엔 너무 멋있다고 여겼지. 그런데 나중에 보니까 별 거 아냐. 원수 같은 마누라와 함께 사업하고, 바람피우다 걸렸지만 살아남고… 하다보면 누구나 느끼게 되는 감정일 뿐이라고.”

유민 회장은 홀로 회장실에 틀어박혀 앉아 시가를 피우며 중얼거렸다. 그에게 시가는 담배가 아니라 상징물이었다. 엄청난 계약을 성사시켰을 때라든지, 목표했던 매출을 초과달성했을 때, 혹은 양귀비처럼 어여쁜 아가씨에게 사랑을 고백 받았을 때 등등 결코 흔치 않은 일을 이루었을 때 제멋에 겨워 신에게 피워 올리는 향이나 다름없었다.

촉촉이 젖은 낙엽이 서서히 타들어가는 향기, 그 향기를 온전히 입에 머금기 위해서는 화력이 좋은 성냥을 이용하여 불꽃이 시가에 직접 닿지 않도록 불을 붙여야만 한다. 담배처럼 입에 물고 불을 붙이는 것도 역시 촌스러운 짓이다. 그러니 성냥불 위에 시가 끝을 대고 살살 돌리면서 불을 붙여야만 할 것이다. 그 행위로부터 향기를 매개로 한 신과의 대화를 시도하게 되는 것이다.


“소설가나 철학자들 보다 오히려 떡볶이장수가 더 낫지. 떡볶이 집에 가면 순대라든지 김밥, 어묵 따위도 함께 팔고 있잖아. 따지고 보면 그거야말로 적과의 동침이란 말이야. 떡볶이 사장은 이미 적과의 동침을 오래 전부터 실행하고 있는 장본인들이라고.”

유민 회장은 코로나 사이즈 급 시가에 불을 붙이며 연신 혼자서 중얼거리고 있었다. 사실 그는 뜬금없는 짓을 하는 중이었다. 신나는 일이 생긴 이후에나 피워왔던 시가에 불을 붙이고는 있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지금 회장실 유리창 너머로는 신설 부서의 칸막이 공사가 신나게 진행되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부서가 새로 생기는 것일까? 물론 신희영이 제안한 스포츠마케팅 TF팀이었다.

“회장님, 제련회사에 홍보실만 있으면 됐지 스포츠마케팅 팀이 소용 있을까요? 무슨 복안이라도 가지고 계십니까?”

방금 전략회의를 마치고 온 부사장이 유민 회장의 호출을 받고 회장실로 들어왔다. 그는 회장실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머리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이 양반아, 떡볶이 집에서 순대를 파는 것과 같은 이치야.”

“그럼 스포츠마케팅을 통해 시너지 효과를 높이자는 말씀인가요?”

“그런 셈이지. 떡볶이 사먹으러 온 놈이 순대도 사먹고, 순대를 먹다보니 어묵도 한 그릇 더 먹는 것이지.”

“그러면 스포츠 팀을 창단하실 의도를 가지고 계신 겁니까?”

“뭐, 팀이라고까지 할 건 없고… 골프선수 한 두명 데려올까 해요.”

“아, 골프선수요. 우리 회사에서 골프선수를 후원하게 되는 것이로군요. 매우 좋은 생각이십니다. 신지애나 최나연 선수 정도면 좋겠습니다만, 이미 다른 회사에 전속 계약이 되어있을 텐데요?”

“그래서 우린 병아리부터 데려다 키우기로 했소.”

“아, 병아리요… 그렇다면 초등학교 유소년 선수들을…”

“그건 아니고, 예쁜 여자 병아리를 데려 오기로 했답니다. 더 이상 자세한 이야기는 새로 부임할 스포츠마케팅 팀장과 전략기획실장에게 듣도록 하세요.”

“네? 두 분이나 새로 부임하십니까?”

“그래요. 그 건에 대해서는 내 마누라에게 자세히 설명을 들으세요.”

유민 회장은 이제 막 불이 붙은 시가를 피우면서 그 연기를 한숨처럼 길게 토해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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