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식 미술 교육도 못 받았고, 스물일곱이라는 젊은 나이에 요절한 ‘광기의 작가’ 장미셸 바스키아(Jean-Michel Basquiat, 1960~88) 이야기다.
‘21세기의 검은 피카소’로 불리는 미국이 낳은 세계적인 작가 장미셸 바스키아의 작품이 서울에 왔다.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회장 이현숙)는 오는 14일 바스키아 작품전을 개막한다.
바스키아는 낙서화를 현대미술의 한 주류로 당당히 올려놓는 데에 크게 기여한 작가다. 불과 스물일곱 살의 나이에 드라마 같은 삶을 마감했지만 그는 마지막 8년간의 짧은 작가활동을 통해 미국의 신표현주의 및 신구상회화를 대표하는 작가로 자리 잡았다.
이번 출품작들은 1980년대 미국 전역을 휩쓸었던 팝아트의 문화적 부흥에 따른 당시 사회상을 독특하게 반추한 것들이다. 흑인으로 미국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으나 인종 차별을 받았던 야구 선수 행크 애런, 재즈뮤지션 찰리 파커 같은 영웅적 아이콘을 강렬한 터치로 그린 그림이 포함됐다. 또 만화ㆍ해부학 등을 시대적 하위문화의 정치적 이슈와 결합시킨 작품도 포함됐는데, 대부분 자전적인 내용이 깔려 있는 게 공통점이다. 이를테면 다양한 해부학 도상이 그려진 작품에는 일곱 살 때 불의의 교통사고로 비장을 제거한 뒤 어머니로부터 선물 받은 책 ‘그레이의 해부학’을 탐독하며 받았던 영감이 반영됐다.
그는 또 금전적 가치, 삶과 죽음 등의 주제를 그만의 시적 문구로 형상화했다. 경계가 불분명하며, 복합적인 기호와 문자, 인물의 암시로 이뤄져 알쏭달쏭한 바스키아의 작품은 기존의 그 어떤 미술언어에도 종속되지 않은 채 자신만의 자유롭고 역동적인 조형 세계를 펼쳐보인 것이 매력이다.
브루클린 출신인 바스키아는 아이티 이민자로 회계사였던 아버지와 푸에르토리코계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바스키아가 일곱 살 되던 해에 이혼했다. 어린 시절 만화가와 시인을 꿈꿨던 바스키아는 열다섯 살에 집에서 나와 진보적인 대안학교에 다녔다. 그곳에서 만난 친구들과 뉴욕 소호 거리의 벽면에 저항의 이미지와 메시지를 그린 낙서화로 출발한 작가는 ‘SAMO(Same Old Shit)’라는 사인을 남겼다. 기지 넘치는 시로 이뤄진 글과 그림은 곧바로 주목을 받았다.
당시 ‘비주류의 정서와 문화’의 주요 표현 수단이었던 그라피티(Graffitiㆍ낙서)는 시인을 꿈꿨던 바스키아의 바람을 피력해준 더할 나위 없이 잘 들어맞는 방식이었다. 그는 대도시 공공장소를 캔버스 삼아 부조리한 사회 현실에 대한 자신의 인식과 감성을 시를 쓰듯 그려나갔던 것.
후반기 그의 작업은 낙서 그림을 뛰어넘으며 그 폭이 보다 깊고 넓어졌다. 때론 광적이고 추상적인 이미지들이 열정적으로 전개되기도 했으며, 아프리카의 암벽미술 등 시각 어휘를 풍부하게 해줄 갖가지 기호와 상징들이 풍부하게 등장했다. 또 ‘왕관’ 심벌도 즐겨 그려넣었다. 왕관은 그림 속 인물에 바치는 존경과 찬미이자, 바스키아 자신을 은유하기도 한다.
바스키아의 말기 작품은 우울하고 상처받은 어두운 인물이 자주 등장한다. 이는 마약 남용과 유명세에 따른 강박증에서 기인됐다. 또 앤디 워홀의 죽음도 그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미술 외에도 패션ㆍ음악ㆍ연기 등 다방면에 걸쳐 재능을 보였던 이 천재는 인간 존재의 불가해성과 잠재적인 위협에 대해 강박적으로 번뇌한 끝에 결국 약물 중독으로 이른 삶을 마감했다. 전시는 3월 31일까지.
이미지 제공= ⓒThe Estate of Jean-Michel Basquiat_ADAGP, Paris_ARS, New York. 국제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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