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하는 작품>
흰색 교향곡 1번 : 흰색 옷을 입은 소녀
흰색 교향곡 2번 : 흰색 옷을 입은 작은 소녀
흰색 교향곡 3번
제임스 휘슬러, '흰색 교향곡 3번'(일부 확대) |
[헤럴드경제=이원율 기자]그녀의 눈은 크고 맑았다.
눈가는 곧 눈물이 흘러도 이상할 게 없을 만큼 촉촉했다. 목과 팔다리는 길었고, 앉고 설 때마다 허리는 꼿꼿이 세웠다. 누군가 이름을 부르면 그녀는 사뿐사뿐 다가갔다. …눈 위를 걷는 사슴 같군. 제임스 휘슬러(James Whistler·1834~1903)는 그런 조안나 히퍼넌을 보며 생각했다. 1860년, 휘슬러와 히퍼넌은 영국 런던에서 처음 마주했다. 휘슬러는 스물여섯 살, 히퍼넌은 열일곱 살이었다. 그 시절 휘슬러는 이름난 독설가였다. 성격도 까칠하고, 행동도 거침없었다. 하지만 그런 그 또한 히퍼넌의 눈웃음 앞에서는 사르르 녹았다. 히퍼넌은 검붉은 머리카락에 새하얀 피부를 가진 소녀였다. 누구와도 웃으며 얘기할 수 있을 만큼 사교성이 좋았다. 전문 모델로서 예술에도 조예가 깊었다. 아일랜드 대기근을 온몸으로 겪은 이주민 출신이기 때문일까. 그녀는 굳은 심지와 강한 생명력도 갖췄다.
휘슬러는 히퍼넌에게 점점 눈길이 갔다.
히퍼넌 또한 미국 출신의 이 다부진 남성이 자꾸 마음에 들어왔다. 둘은 곧 연인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손을 맞잡게 된 두 사람에게 1861년 겨울은 잊을 수 없는 시절이었다.
휘슬러와 히퍼넌은 낭만적인 프랑스 파리에서 차가운 계절을 즐겼다. 활활 타는 벽난로 앞에서 서로 찰싹 붙은 채 사랑을 속삭였다. 휘슬러는 종종 히퍼넌의 이름을 줄여 '조'라고 불렀다. 휘슬러가 노래하듯 히퍼넌의 애칭을 부르면, 그녀는 그 음에 맞춰 춤을 추곤 했다.
"조. 그대로 있어봐."
진눈깨비가 창문을 때리던 어느 날, 휘슬러가 히퍼넌을 불러세웠다. 그녀가 옷장에서 흰 원피스를 꺼내입고 나온 때였다. "당장 그리지 않고선 참을 수 없어서." 휘슬러는 꿈을 꾸는 듯한 표정이었다. "오늘 바깥 일정은 다 취소해야겠네요?" 히퍼넌은 그런 휘슬러를 또 이해해줬다.
제임스 휘슬러, '흰색 교향곡 1번 : 흰색 옷을 입은 소녀(하얀 소녀)' |
휘슬러는 히퍼넌을 붙잡아둔 채 화구를 죄다 가져왔다. 은처럼 빛나는 흰색 안료를 특히나 잔뜩 챙겨왔다.
휘슬러는 붓을 안료에 푹 찍었다. 화폭을 은은한 흰색으로 채웠다. 둘의 시간은 그렇게 무르익었다. 그해 겨울, 휘슬러는 히퍼넌을 앞에 두고서 '흰색 교향곡 1번 : 흰색 옷을 입은 소녀(하얀 소녀)'를 그리기 시작했다. 순결의 표상인 백합을 든 히퍼넌이 눈부시게 하얀 원피스를 입고 서 있다. 목걸이와 반지만 없을 뿐, 영락없는 결혼식 직전 신부의 모습이다. 휘슬러는 히퍼넌의 발밑에 곰 가죽 깔개도 그렸다. 이를 통해 그녀가 품은 치명적인 매력을 부각하는 한편, '내 여자니까 함부로 건들지 말라'는 경고까지 표현한 듯하다. 휘슬러는 캔버스에 연백색을 아낌없이 펴 발랐다. 히퍼넌에게 티 없이 맑은 연백색만큼 잘 어울리는 색은 없다고 생각해서였다. 휘슬러는 종종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는 이 그림이 자기 인생 최고의 걸작이 될 것을 예감하고 있었다. 휘슬러는 꿈을 꿨다. 때 이른 아버지의 죽음, 어머니와의 갈등 등 순탄치 못한 삶을 산 그는 이 그림을 기점으로 자기 인생도 달라질 수 있기를 바랐다. 어쩌면, 눈처럼 새하얀 이 사람과 앞으로는 예쁜 순간만 가득 채워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허망한 바람이었다.
휘슬러는 그림을 그리는 이 순간에도 스스로 몸과 정신 건강을 해치고 있었다. 작업을 이어갈수록 그는 더욱 불안정한 사람이 돼가고 있었다. 휘슬러는 행복한 삶을 꿈꾸며 그저 붓질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 그에게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제임스 휘슬러, 'Wapping' |
휘슬러는 히퍼넌을 그릴 때면 특히나 더 많은 시간을 쏟았다. 더욱 애정을 담아 선을 긋고 색을 칠하는 것 또한 이유 중 하나였지만, 특별한 사정이 더 있었다. 그건 연백색 안료와 관련이 있었다.
히퍼넌에게 꼭 맞는 연백색을 들이붓듯이 쓴 휘슬러는 이 색소를 확보하기 위해 많은 공을 들였다. 연백색 안료는 얻기도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만들기가 복잡했다. 일단 납(Pb)을 구해야 했다. 이를 얇게 잘라 식초에 절인 뒤, 동물 분뇨를 채운 항아리에 넣어 썩혀야 했다. 그다음 3개월가량은 기다림의 시간이었다. 이 과정에서 납은 증기로 바뀌고, 분뇨에서 탄산이 만들어졌다. 둘이 반응하면 탄산납 가루가 돼 밑으로 가라앉았다. 가루를 긁어모아 빻아 말리면, 그제야 연백색 가루가 생기는 식이었다. 불쾌한 열기와 악취, 흐물흐물해진 배설물 틈에서 오래도록 정성을 쏟아야 맑은 하얀색을 얻을 수 있는 것이었다.
그 시절 안료 시장은 크지 않았다.
그렇기에 화가가 이 지난한 작업에 손을 보탤 때도 많았다. 휘슬러도 그랬다. 그는 퀴퀴한 증기를 뿜어내는 항아리 주변을 밥 먹듯 오가야 했다.
제임스 휘슬러, 'Caprice in Purple and Gold The Golden Screen' |
휘슬러는 이 과정에서부터 이미 건강에 위협을 받고 있었다.
중금속인 납이 문제였다. 연백색 안료의 원료(原料)가 되는 납은 인간에게 치명적인 물질이었다. 납은 이를 들이마신 인간을 서서히 무너뜨렸다. 불면증은 기본이었다. 중독이 심해지면 두통과 관절염, 빈혈과 경련도 따라왔다. 나아가 암, 전신마비와 정신 장애까지 일으킬 수 있었다.
휘슬러는 연백색 안료를 얻는 과정에서 납 증기를 훅 들이마셨다.
그뿐인가. 캔버스에 색을 찍어바르는 순간에도 납 가루는 그의 주변에서 먼지처럼 흩날렸다. 그렇게 휘슬러는 자기도 모르는 새 몸에 납을 차곡차곡 쌓고 있었다. 연백색 안료에는 은처럼 빛난다고 해 '실버 화이트(silver white)', 작은 유리 조각처럼 반짝이는 모습에 '플레이크 화이트(flake white)' 등 문학적인 별명이 따라왔다. 접착성이 좋고 갈라짐은 없는 등 실용성도 있었다. 이렇게 완벽해보이는 안료가 알고보면 죽음의 물질이었던 셈이었다.
제임스 휘슬러, '흰색 교향곡 2번 : 흰색 옷을 입은 작은 소녀' |
휘슬러의 연백색 사랑은 그칠 줄 몰랐다.
1년 뒤 휘슬러가 다시 히퍼넌을 그렸다. 그는 재차 연백색 안료를 잔뜩 챙겨왔다. 그때 그 둘만의 겨울날처럼 순백의 드레스를 입은 그녀를 두고 작업에 열중했다. 은은한 흰색으로 가득 채워진 그림이 또 탄생했다. 제목은 '흰색 교향곡 2번 : 흰색 옷을 입은 작은 소녀'였다. 벽난로에 기댄 히퍼넌은 깊은 눈과 오뚝한 콧날, 선명한 턱선을 가진 전형적인 미인의 상이다. 일본풍 부채는 그런 그녀에게 동양적 신비감을 안긴다. 벽난로 위 윤기나는 화병, 오른쪽 밑에서 피어나는 분홍색 꽃은 그녀의 정갈한 성향을 대변하는 듯하다. 이번에도 연백색 안료가 그림을 한층 더 그윽하게 만든다. 순백의 히퍼넌은 고개를 살짝 숙인 채 명상에 빠져있다. 그녀는 신화 속 여신처럼 숭고해보이고, 역사 속 성녀처럼 고상해보이기도 한다. 천사의 탈을 쓴 악마의 색은 그렇게 이번에도 제 역할을 다했다.
제임스 휘슬러, '흰색 교향곡 3번' |
휘슬러는 곧이어 '흰색 교향곡 3번'도 작업했다.
휘슬러는 히퍼넌과 함께 다른 여성 모델을 추가로 섭외하는 파격적인 면을 보였다. 하지만 주인공은 역시나 히퍼넌이었다. 휘슬러는 히퍼넌에게 또 새하얀 원피스를 입혔다. 그녀 몸을 또다시 연백색으로 가득 채웠다. 옆 모델은 연노란색 원피스를 입은 채 화폭 가장자리에 앉아있다. 흰색 꽃에 가려진 그녀는 히퍼넌의 화사함을 띄워주는 조연으로 전락한 듯하다. "자세가 불편하겠어. 조금만 더 참아줘." 긋고 칠하기에 집중하는 휘슬러가 히퍼넌을 달랬다. 이번에도 그의 주변에는 납 가루가 폴폴 날리고 있었다.
휘슬러에게 비극이 또 있었다.
휘슬러가 납의 독성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결과적으로 그는 생명을 깎아가며 히퍼넌과 함께 있던 것이었다. 그런데, 휘슬러는 결국 그 사랑을 쟁취하지 못했다. 끝내 헤어지고 말았다. 납 중독도 납 중독이지만, 이번 일 또한 휘슬러에게 크디큰 고통을 가했다.
제임스 휘슬러, 'At the Piano' |
가장 먼저 만난 암초는 휘슬러의 어머니였다.
휘슬러의 어머니는 아들을 자기 손아귀에 두고 싶어하는 경향이 강했다. 좋게 보면 아들을 창창한 길로 끌고가고 싶은 마음이었다. 나쁘게 보면 그저 숨 막히는 간섭과 집착일 뿐이었다. 어머니는 화가가 되겠다는 아들의 뜻을 꺾기 위해 충돌을 불사했고, 그 갈등은 지금도 진행 중이었다. 그런 그녀는 며느릿감으로 히퍼넌을 인정하지 않았다. 자기 아들이 고작 여성 모델 따위와 연애하고 있다는 걸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 시절 화가의 모델은 거리의 여인 취급을 받았다. 굳이 따지자면 매춘부보다 조금 더 나은 대우를 받는 정도였다. 그래도 휘슬러와 히퍼넌은 모른 척 사랑을 이어갈 수 있었다. 어차피 어머니는 미국에 있었다. 휘슬러는 그곳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었다. 그렇기에 이 문제를 놓고 직접 충돌할 일은 생기지 않을 것이었다.
그런데, 상황이 곧 달라졌다.
1861년, 미국에서 남북전쟁이 발발했다. 밤새 이어지는 총성을 견디다 못한 어머니는 결국 1863년, 휘슬러가 사는 런던으로 몸을 옮겼다. "네가 사는 집으로 가마." 휘슬러는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통보를 받았다. 휘슬러는 막무가내인 어머니가 미웠지만, 그렇다고 갈 곳 없는 노인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그는 다급해졌다. 서둘러 따로 방을 구해 히퍼넌을 내보냈다. 집에서 그녀의 흔적을 다 치웠다. 쫓겨나듯 내몰린 히퍼넌은 당황스러웠다. 소극적인 그의 모습이 실망스럽기도 했다.
제임스 휘슬러, 'Purple and Rose The Lange Leizen of the Six Marks' |
1865년 여름은 휘슬러가 손꼽아 기다린 계절이었다.
휘슬러는 히퍼넌과 함께 프랑스의 휴양도시 투르빌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어머니의 눈을 피해 떠난 은밀한 휴가였다. 휘슬러는 이번 여행에 특별 손님을 초대했다. 사실주의의 대부, 귀스타브 쿠르베(Gustave Courbet·1819~1877)였다. 둘은 죽이 잘 맞는 친구이자 예술적 동지였다. 그렇게 셋이 종일 수영을 하고, 일광욕을 즐기고, 그림을 그렸다. 그동안 쿠르베는 절친 휘슬러보다 히퍼넌과 더 붙어있었다. 그는 그녀의 싱그러움을 틈만 나면 찬양했다. 그녀를 붙잡고 같은 그림을 반복해 그릴 만큼 놓아주질 않았다. 히퍼넌 또한 쿠르베의 이런 행동이 싫지만은 않은 눈치였다. 그래도 휘슬러는 둘의 관계를 의심치 않았다. 당시 쿠르베는 마흔여섯 살, 히퍼넌은 스물두 살이었다. 무슨 일이 생길 수가 없는 사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쿠르베는 휴가 이후에도 휘슬러를 보면 히퍼넌의 안부만 물었다. 게다가 쿠르베는 언젠가부터 히퍼넌을 자연스럽게 '조'라는 애칭으로 부르고 있었다. 휘슬러는 슬슬 기분이 상했다. 그는 눈치 없는 쿠르베가 미웠다. 이런 인간에게 여지를 주는 듯한 히퍼넌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제임스 휘슬러, '해안(해수욕장)' |
쿠르베와 히퍼넌의 행동에 잘못이 없다고는 볼 수 없다.
하지만 사실은 휘슬러에게도 문제는 있었다. 휘슬러가 원래도 살가운 성격은 아니었지만, 그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신경질적으로 돼가고 있었다. 이 또한 납과 관련 있었다. 납 중독은 신경계에도 영향을 줬다. 이 악마의 성분은 사람을 더 빨리 흥분하게, 더 자주 발작하게 했다. 이미 상당량의 납 가루를 마신 휘슬러 또한 이 증상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렇게 휘슬러와 히퍼넌의 사이는 여행을 다녀온 뒤 더 나빠졌다. 휘슬러는 히퍼넌을 거듭 몰아세웠다. 외도에 대한 아무런 증거가 없지만, 그저 찝찝한 자기감정만 앞세워 그녀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그래도 둘은 서로를 놓지 않았다. 휘슬러는 여전히 히퍼넌을 아름답게 그렸다. 히퍼넌도 그런 휘슬러를 위해 최선을 다해 포즈를 취했다.
귀스타브 쿠르베, '여인과 앵무새'(조안나 히퍼넌을 모델로 그린 또 다른 작품) |
귀스타브 쿠르베, '잠' |
1866년, 휘슬러는 스페인과 전쟁에 나선 칠레를 돕겠다는 명분으로 발파라이소에 갔다.
늘 분신처럼 함께 한 히퍼넌이 없는, 혼자만의 외출이었다. 그 사이 문제는 또 발생했다. 쿠르베, 남 시선 따위 신경 쓰지 않는 이 화가가 재차 기름을 부었다. 쿠르베는 혼자 있는 히퍼넌에게 자기 그림의 모델이 돼주기를 제안했다. 휘슬러에게 섭섭함이 쌓인 히퍼넌은 자신에게 상냥했던 쿠르베의 말에 곧장 파리로 갔다. 휘슬러가 싫어할 게 뻔한데도 쿠르베와 마주했다. 히퍼넌은 생각보다 훨씬 즐겁게 일했다. 그녀는 그간 휘슬러의 취향에 맞춰 조신한 포즈로 화가 앞에 서왔었다. 하지만, 전문 모델로 자부심이 컸던 히퍼넌은 이보다 더 도발적인 포즈에도 자신 있었다. 단지 휘슬러가 싫어하니 억누르고 있을 뿐이었다. 붓을 든 쿠르베가 그런 히퍼넌의 갈망을 일깨웠다. 그 해, 쿠르베는 히퍼넌을 눕힌 채 '잠'을 작업했다. 여성 모델 한 명을 더 붙여 그린 이 그림은 두 여인의 동성애를 묘사하고 있다. 화폭 속 나체의 히퍼넌은 휘슬러의 흰색 교향곡 속 여인과 동일인으로 볼 수 없을 만큼 요염하다. 이쯤부터 쿠르베와 히퍼넌이 진지하게 사귄다는 소문이 퍼졌다.
그리고, 끝내 바다 건너 휘슬러에게도 이 소식이 닿았다.
1876년, 휘슬러는 런던으로 돌아왔다. 휘슬러는 더 이상 히퍼넌을 연인으로 대하지 않았다. 그는 연백색의 연인을 놓아줬다. 서로를 운명의 상대처럼 여긴 두 사람의 로맨스는 허무하게 끝을 맺었다. 휘슬러는 둘 사이 훼방꾼이 된 쿠르베 또한 다시 보지 않았다.
제임스 휘슬러, '회색과 녹색의 심포니(바다)' |
둘은 서로를 너무 특별하게 여겼기에, 아예 인연까지 끊지는 못했다.
휘슬러는 한때 히퍼넌에게 자기 그림 판매권을 줄 만큼 그녀의 수완도 믿었다. 그런 그는 결별한 후에도 여러 사업적 이유로 그녀와 마주했다. 두 사람 사이에는 꽤 파격적인 일화도 전해진다. 1870년, 휘슬러는 그의 집 가정부 라이사 파니 핸슨에게서 아들을 얻었다. 휘슬러가 아기를 맡긴 사람이 다름 아닌 히퍼넌이었다. 히퍼넌은 이 아이가 열 살이 될 때까지 홀로 양육했다. 당시 휘슬러와 히퍼넌 사이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서로에게 여전히 각별한 애정이 있었기에 이뤄질 수 있는 일일 터였다. 휘슬러는 계속 작품 활동을 했다. 자기 그림을 놓고 유명 평론가 존 러스킨과 소송전도 벌이고, 예술 학교를 세우기도 했다. 히퍼넌에 대해선 1880년 이후 알려진 일이 거의 없다. "그 아름다운 여인은 니스에서 골동품을 팔고 있어요." 1882년, 쿠르베의 여동생 줄리엣이 쓴 편지로 대강 짐작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제임스 휘슬러, '회색 배열(화가의 초상화)' |
몸에 납을 쌓고 산 휘슬러는 평생을 불안증과 잔병치레에 시달렸다.
죽기 10여 년 전부터는 그의 몸과 정신 모두 온전치 않았다. 납 범벅이 된 그의 몸은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이었다. 말년을 맞은 그는 사실상 살아도 산 게 아니었다. 휘슬러는 1903년, 예순아홉 살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최종 사인은 심장마비였다. 휘슬러의 후원자였던 미술품 수집가 찰스 랭 프리어는 그의 장례식에서 히퍼넌을 봤다고 회상했다. 히퍼넌의 머리는 여전히 풍성했지만, 은빛 머리카락이 젊은 시절의 검붉은 머리를 덮었다고 한다. 그런 그녀는 휘슬러의 시신 곁을 떠나지 못하고 한 시간 넘도록 묵묵히 있었다고 한다.
제임스 휘슬러, '회색과 흑색의 배치 1번' |
휘슬러가 어머니에게 갖는 감정은 복잡했다.
휘슬러는 자기한테 집착하는 어머니를 사랑하면서도 미워했고, 존중하면서도 질려했다. 그가 추구하는 길을 믿어주지 않는 그녀를 많은 순간 원망키도 했다. 사실 휘슬러는 어머니를 그린 그림 '회색과 흑색의 배치 1번'을 계획하고 그리지 않았다. 작업을 약속한 모델이 그날 하필 약속을 어겼다. 어쩔 수 없이 집에 있는 어머니를 대신 그린 것이었다. 휘슬러가 갖는 어머니를 향한 애증은 그림에서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휘슬러는 어머니를 고집스러운 노인으로 표현했다. 어떠한 보정도 하지 않은 채, 늙고 여윈 모습 그대로를 여실히 묘사했다. 흰 레이스가 달린 모자 쓰고 김 건은 드레스를 입은 그녀는 차갑고 근엄해보이기만 한다. 정성껏 그리되, 인자하고 자애로운 어머니의 상(像)은 의도적으로 배제한 것이다. 1934년, 미국 정부는 휘슬러의 이 그림을 '어머니의 날' 기념우표로 찍는다. 휘슬러의 어머니는 모성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한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무슨." 휘슬러가 살아있었다면 이렇게 말하며 쓴웃음을 지었을 듯하다.
한편, 휘슬러의 그림 제목은 왜 직관적이지 않을까. 음악 용어와 추상적인 표현 등을 섞은 이유는 무엇일까.
휘슬러는 음악과 문학의 추상성을 사랑했다. 이를 감상하며 상상의 세계에 빠지기를 좋아했다. 휘슬러는 그의 그림 또한 추상성을 갖길 바랐다. 직관적인 제목의 틀에 갇히지 않고, 해석 여지가 다분한 제목을 통해 자유로운 상상을 이끌기를 원했다. 그래서 '교향곡', '배치' 등의 말을 붙인 것이었다.
〈참고 자료〉
미술관에 간 화학자, 전창림, 어바웃어북
휘슬러의 예술 강의, 제임스 휘슬러, 아르드
Memories Of James Mcneill Whistler, The Artist, Way, Thomas Robert, Sagwan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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