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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도체, 배터리 선점해야 산다”...세계 각국 ‘대놓고’ 자원 전쟁 [자원무기화]
인도네시아 남부 술라웨시주 포말라의 니켈 제련소에서 한 근로자가 작업을 하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원자재 수출에서 탈피해 부가가치가 높은 제품을 수출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지난 2019년부터 니켈 수출을 금지했다. [로이터]

[헤럴드경제=손미정 기자]핵심 광물자원의 무기화가 전 세계적으로 노골화 되고 있다. 희토류 등 일부 금속에 국한돼오던 자원 민족주의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글로벌 공급망 대란을 겪으면서 수급 불균형을 보이는 니켈, 리튬, 코발트 등 다른 핵심 자원으로도 확산하는 모습이다.

특히 탄소중립시대에 발맞춰 산업질서가 재편되면서 수요가 급증한 전기차, 이와 연계된 반도체, 배터리 등에 사용되는 주요 원자재의 확보는 국가 안보로 직결되고 있다.

중국과 무역전쟁을 벌여왔던 미국은 이제 첨단산업에서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막기 위해 전방위적인 공급망 관리에 나서고 있다. 미국은 EU·G7 등 동맹국들과 ‘핵심 광물 구매자 클럽’ 창설까지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이에 질세라 중국 배터리와 광산기업들은 해외 광산 자원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미국, 유럽, 중국 등 주요국들이 전세계를 자원전쟁터로 만드는 가운데 자원 부국들의 핵심 자원 걸어잠그기는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리튬 매장량 세계 10위인 멕시코는 최근 리튬 국유화를 정식 공포했다. 인도네시아는 니켈의 수출을 금지하는 한편 자국에 공장을 세우는 기업에만 제공하겠다고 하면서 니켈을 해외 자본 유치 전략 카드로 사용하고 있다. 오래전부터 희토류를 무기화한 중국은 희로튜 생산 초대형 국유기업 설립에 이어 희토류 정제기술 수출 금지를 최근 선포했다.

개별 국가 차원을 넘어 자원 부국간 ‘니켈판’, ‘리튬판’ 석유수출국기구(OPEC) 같은 새로운 연합체를 형성하려는 움직임마저 일며 자원 공급망은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게 됐다.

국유화·수출 제한…발 묶이는 자원들
칠레 북부 아타카마 소금평원의 소키미치 리튬광산의 모습. 리튬 주요 매장지인 남미 국가들의 자원 국유화 노력이 잇따르면서, 신재생에너지와 전기차 주도권을 놓치지 않기 위한 선진국들의 자원 확보전도 치열해지고 있다. [로이터]

친환경 산업의 대표 주자인 전기차의 수요 증가로 최근 몇 년간 배터리 생산에 필요한 원자재를 둘러싼 국가 간 견제가 치열하다.

멕시코가 국유화를 선언한 리튬은 스마트폰과 전기차의 필수 원자재다. 흰색을 띠어 ‘하얀 석유’로도 불리는 리튬은 최근 1년 사이 가격이 4~5배 뛰었다. 국제에너지기구에 따르면 리튬 수요는 2040년까지 40배 증가할 전망이다. 세계 각국과 주요 기업이 사활을 걸고 확보전에 뛰어드는 이유다.

리튬 매장이 집중된 남미는 일찍이 국유화 및 수출 금지를 통해 리튬 개발 독점을 꾀해왔다. 이미 지난 2008년 볼리비아가 리튬을 국유화했고, 칠레는 리튬을 헌법상 ‘전략 자원’으로 명시한 데 이어 오는 3월 국영 리튬 기업을 설립할 예정이다. 지난해 12월에는 리튬의 세계적 매장지인 짐바브웨가 가공 하지 않은 리튬의 수출 금지를 발표했다.

지난해 2월에는 세르비아가 환경훼손을 이유로 호주 기업 리오틴토에 내줬던 리튬 개발 허가를 취소하는 일도 있었다. 당시 블룸버그통신은 잇따른 리튬 수출 금지 조치를 함께 언급하며 “커지는 민족주의가 리튬 공급 성장을 위협하고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각종 자원이 풍부한 동남아시아에서도 원물 수출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자국 경제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움직임이 뚜렷해지고 있다. 대표적인 국가가 인도네시아다.

[2022 미국지질조사]

인도네시아는 자국산업 활성화의 일환으로 2019년부터 니켈 수출을 금지했다. 자국을 기존 원자재 수출국에서 탈피해 반제품·완제품 수출국으로 탈바꿈시킴으로써 자원 개발 이익 극대화하려는 목적이다. 여기에는 해외 기업들의 인도네시아 시장 진출을 유도하고, 해외 자본 투자를 이끌어내려는 의도도 깔려있다. 니켈 역시 전기차용 배터리의 핵심 원료다.

이웃한 필리핀 역시 자국산 니켈에 대해 인도네시아와 비슷한 전략을 취하고 있다. 외신 등에 따르면 필리핀은 자국에서 수출되는 니켈에 대한 세금 부과를 검토하고 있다. 미 외교전문지 디플로매트는 최근 동남아의 자원 민족주의 확산을 지적하며 “이들 국가는 자유 무역의 후퇴와 무관하게 자국의 경제 상황을 최우선 순위에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제 2의 에너지 쇼크 안돼” 선진국 자원 확보전 가속
리튬 탐사가 진행되고 있는 미국 네바다주의 킹스밸리. 미국은 최근 자국 내 리튬 공급망 구축 노력의 일환으로 네바다에서 리튬 채굴 프로젝트를 추진 중인 호주기업 아이어니어에 8700억원 규모의 자금 대출을 승인했다. [AP]

팬데믹 장기화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공급망 붕괴는 안정적으로 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각국의 노력에 불씨를 당겼다. 여기에 주요 자원 생산국들이 너도나도 수출 통제 및 채굴권 독점에 나서자 신재생·배터리 주도권을 놓치지 않기 위한 선진국들의 자원 확보전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미국은 해외 자원 의존도를 줄이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국내 리튬 공급망 구축에 열을 올리고 있다. 최근 미 에너지부는 네바다주에서 리튬 채굴 프로젝트를 추진 중인 호주기업 아이어니어에 최대 7억달러(약 8700억원) 자금 대출을 승인했다. 미국은 자금 지원을 통해 네바다주 리튬 광산에서 매년 37만대 전기차를 생산할 수 있는 리튬을 확보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지난달 미국은 캐나다, 멕시코와 손잡고 리튬 생산을 위한 매장량 공동 조사에 나서기도 했다.

유럽 역시 핵심 원자재 공급망 확보에 속도를 내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초유의 에너지 위기를 겪은 이후, 러시아발 에너지 쇼크와 같은 사태가 되풀이되어선 안된다는 위기 의식이 확산하면서다.

외신에 따르면 유럽연합(EU)은 올해 3월께 중요 광물 원자재 공급망 확보를 위한 ‘핵심원자재법(CRMA)’ 입법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리튬, 마그네슘, 천연흑연, 희토류 등을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특정 국가에 대한 자원 의존도를 낮추고 공급망을 다변화하는 내용이 포함될 것으로 전망된다.

자원 민족주의 확산은 에너지 전환이라는 전세계적 흐름을 위협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니켈, 코발트, 리튬과 같은 금속에 대한 세계적인 수요는 자원 민족주의에 의해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면서 “자원에 대한 지배력을 높이고, 광물 수출을 제한하려는 움직임에 있어 가장 큰 우려는 정작 그 자원들이 전기차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늦출 수 있다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balm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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