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이 화제다. 지난달 하순 개봉한 이 영화는 첫날 관객 동원 1위를 기록한 뒤 미국 애니메이션 ‘소울’과 선두경쟁을 펼치고 있다. 일본에서는 19년간 정상을 지켜온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누르고 역대 흥행 수익 1위에 올랐다. 대만, 홍콩 등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해 전 세계 영화 흥행 수익 5위를 차지했다.
코로나19 사태 속에 ‘귀멸의 칼날’이 영화시장에서 대박을 터뜨렸다. 소니(Sony)가 최대 수혜 기업이다. 계열사 애니플렉스가 기획·제작을 맡았다. 소니뮤직에서 발매한 가수 리사(Lisa)가 부른 주제가도 대히트했다. 7년 만에 내놓은 신형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 5’는 품절될 만큼 인기다. 이 제품은 인터넷에 연결, 소프트웨어를 다운로드하는 형태로 구매하는 콘텐츠상품이다. 플레이스테이션으로 소프트웨어를 즐기는 유료 회원만 4600만명에 달한다. 소니가 콘텐츠 비즈니스로 성공했음을 보여주는 사업들이다.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이듬해인 1946년에 창업한 소니는 ‘일본 경제 부활’의 상징 같은 기업이다. 휴대용 오디오 ‘워크맨’, 초소형 비디오카메라 등 시대를 앞서가는 세계 최초 제품을 잇달아 내놨다. 소니는 기술과 품질을 중시하는 일본식 제조업계를 이끌며 1990년대 말까지 화려한 시기를 보냈다. 당시 주가는 1만5000엔을 넘었다.
소니는 2000년 이후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다. 가격경쟁에 밀려 TV·냉장고 등 가전시장을 한국, 중국에 넘겨줬다. 신제품 대응이 늦어지면서 10년 이상 최악의 시대를 경험했다. 소비시장을 뒤흔드는 워크맨 같은 새로운 히트상품이 더는 나오지 않자 실적은 악화 일로였다. 2008회계연도부터 4년 연속 적자를 냈다. 2011년에는 사상 최대인 4566억엔의 적자였다. 주가는 그 이듬해 1000엔 아래로 곤두박질했다.
그러던 소니 주가가 지난달 중순 19년 만에 1만엔 선을 회복했다. 이달 들어서도 오르고 있다. 임직원들은 “드디어 해냈다”며 자신감을 되찾은 분위기다. 소니는 최근 20년 새 전기전자제품에서 콘텐츠 비즈니스 중심으로 사업구조를 완전히 바꿨다. ‘선택’과 ‘집중’을 통해 TV·비디오·노트북 등 적자 제조사업은 과감히 정리했다.
2000년도의 매출 7조3148억엔에서 전자기기제품은 약 70%였다. 게임 9%, 영화와 음악 부문은 각각 8%에 불과했다. 반면 2019년의 경우 매출 8조2598억엔 가운데 게임·영화·음악 세 사업의 비중이 45%를 넘었다. TV나 휴대용 MP3 등 전자기기는 24%로 줄었다. 애널리스트들은 “주가 회복은 지난 20여년간 공들여온 애니메이션·영화·음악·게임 등 콘텐츠 비즈니스가 본격 궤도에 오른 결과”라고 평가했다.
소니는 창업 75주년을 맞는 오는 4월 ‘소니그룹’으로 회사명을 바꾸고 새 출발 한다. 하지만 콘텐츠 비즈니스에서 앞선 서구 글로벌 기업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세계시장에서 50%의 점유율을 갖고 있는 화상센서 등 제조업에선 삼성전자 등 경쟁사들이 추격 중이다. 콘텐츠기업으로 탈바꿈한 소니가 전성기의 명성을 되찾을 수 있을까.
최인한 시사아카데미 일본경제사회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