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과 팀닥터 등의 상습폭력에 시달리던 젊은 운동 선수가 목숨을 끊은 사건은 안타까움을 넘어 분노를 자아낸다.
故 최숙현 선수가 당한 폭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폭언과 구타는 말할 것도 없고 모욕과 심지어 금전적 강요까지 있었다. 하지만 이보다 공분을 불러오는 것은 극단적 선택의 원인이 견디기 힘든 고통보다는 좌절과 무력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더 이상의 폭력을 참을 수 없던 최 선수는 지난 3월 ‘훈련 중 가혹행위’를 이유로 감독과 팀닥터 등을 고소했다. 하지만 그가 도움을 바랐던 주위의 어느 누구, 어떤 곳에서도 희망을 주지 못했다.
최 선수는 스포츠 인권센터에 신고하고 대한체육회와 철인3종경기협회에도 이 사실을 알렸지만 피해자의 입장에서 도움은커녕 “가해자들이 부인아니 증거를 더 내놓으라”는 무책임한 답변만 들었다는 것이다. 경북체육회와 경주시도 최 선수의 가족에게 가해자와 합의를 종용하며 사건무마에 급급했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도와줘야 할 곳에서 무마하려는 자세로만 나오니 오히려 압박과 부담만 가중됐을 것이다. 도움이 아니라 또 다른 종류의 폭력만 추가로 얻은 셈이다.
지난 2018년 말 쇼트트랙 심석희 선수가 훈련 중 폭력 성폭력을 공개한 이유도 “이대로 계속 하다간 죽을 것 같아서”였다. 그의 말엔 세상이 귀를 기울였다. 유명 선수여서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비인기종목 트라이애슬론 선수의 호소는 세상을 떠나고 나서야 반향을 불러왔다.
지금까지 셀 수도 없을 만큼의 유사 사건들이 발생하고 조사와 처벌이 이뤄졌는데도 여전히 폭력과 가혹행위는 체육계의 일상이다. 심지어 대통령까지 관심을 보이고, 운동선수에게 폭력이나 성폭력을 가한 지도자를 영구 제명하는 이른바 ‘운동선수 보호법’도 다음달부터 시행된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근절은 고사하고 줄어들기나 한 것인지조차 의심스럽다.
이번에도 대한체육회는 중징계 처벌을 강조하며 대책을 내놨다. 스포츠 폭력·성폭력에 대해선 조사와 수사 과정 중이라도 즉시 자격정지 및 제명 등 선제적 처벌을 하고 모든 훈련 현장에 CCTV, 카메라 등을 설치해 사각지대와 우범지대를 최소화하겠다는 내용이다. 지도자와 선수들에대한 의식개선 교육 계획도 담겼다.
하지만 체육회가 지도자, 선배들의 성폭행·폭행으로부터 새롭게 태어나겠다고 국민에게 약속한게 어디 한두번인가. 민간 체육계 스스로의 자정능력은 없다는 게 이미 드러났다. 대통령의 지시가 아니더라도 문체부가 나서야 할 일이다. 젊은 청춘들의 목숨을 구하는 것보다 중요한 일이 어디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