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산업에 불어닥친 4차 산업혁명은 고비용·저효율의 대표적 산업으로 지목돼 온 ‘낮은 생산성’을 해결하는 수준을 넘어 산업 체질 자체를 전환하려고 하고 있다. 사업의 기획에서부터 설계 및 건설 그리고 유지 보수 단계에 이르기까지 참여자 간 정보 공유와 이를 기반으로 한 프로세스의 통합화와 효율화가 전환의 핵심이다. 이를 위해서는 최근 다양한 기술의 융복합을 통해 등장하고 있는 ‘스마트 건설기술’의 적극적인 활용이 필수다.
그런데 정부의 연구개발(R&D) 투자와 건설기업의 기술 적용은 아직 걸음마 단계로 산업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 스마트 건설기술의 확산을 위해서는 산업의 참여 주체별로 가지는 역할과 책임의 이행 여부가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해서는 안 될 것도 있다.
첫째는 새로운 기술 활용은 시장이 요구할 때만 가능하다는 기업의 시각이다. 과연 그럴까. 건설산업의 낮은 생산성은 시장에게 기술이 필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활용의 주체인 기업이 기술을 외면했기 때문이다. 소비자에게 경험해 보지 못한 서비스나 상품을 제공할 수 있는 기술의 등장이 새로운 시장을 낳는 것을 우리는 지난 역사 속에서 확인할 수 있다. 결국 기술 활용을 주체는 기업이며 새로운 기술을 사업에 적용하여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내는 것도 기업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둘째는 기술 활용에 필요한 초기비용을 부담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국내 건설기업의 다수를 차지하는 중견 및 중소기업에 비용을 수반하는 새로운 기술의 활용은 쉽지 않은 일이다. 더욱이 사례를 통해 검증되지 않아 기술의 성숙도가 낮은 경우 기술 활용을 위한 투자는 기업에 경영상 부담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기술 활용의 여부가 기업 경쟁력의 총량을 결정하는 요인 중의 하나임을 고려할 때 기술경쟁력 제고를 위한 새로운 기술의 활용에 주저해서는 안 된다. 새로운 시도는 비용을 수반한다.
셋째는 오로지 한 개의 비즈니스 모델에만 집착하는 것이다. 전통적 산업 영역 내에서 시공 중심으로 성장해 온 건설기업은 이제 전통적인 건설의 개념을 확장해야 하는 상황이다. 동시에 설계 및 엔지니어링, 자재 제작 및 조립기업 등 사업의 수행 과정에 주인공이 아니었던 참여자들의 역할도 지금보다 확대될 것이다. 역량 강화를 통한 가치사슬의 확장은 과거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하고 이는 곧 건설과 제조의 ‘경계 붕괴’로 이어질 것이다.
넷째는 ‘업계의 건의’ 없이는 산업의 제도를 개선하지 않는 것이다. 스마트 건설기술 확산을 위해서는 기업의 적극적인 활용 의지와 더불어 이를 유인할 수 있는 산업 차원의 제도적 환경 구축이 필수적이다. 그러려면, 과거 생산 방식에만 적용되던 제도를 찾아 개선함과 동시에 기술 활용을 촉진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시행해야 한다. 기술의 수요자인 기업 의견도 수렴해야 하지만 그보다는 산업의 환경을 조성하는 책임 주체로서 정부의 세밀하고 적극적인 제도 개선 노력이 절실하다.
다섯째는 스마트 건설기술의 활용을 기업만의 책임으로 보는 시각이다. 유수의 글로벌 건설기업이 자체적인 연구개발을 통해 새로운 기술을 적용해보고 동시에 다양한 산업 영역의 기업과 협업하는 것을 보며, 일각에서는 “기술의 활용은 기업이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말한다. 하지만 국내에는 기술도 있고 자본도 있는 건설기업보다는 어제의 실적으로 내일의 수주를 걱정하는 작은 기업이 훨씬 많다. 그러다 보니 기술에 대한 인지도나 활성화 전망 및 도입계획 등에 있어서 기업 간 현격한 ‘기술 간극’이 존재한다. 이 간극을 해결하는 것이 스마트 건설기술의 활용을 확산하는 가장 빠른 지름길인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여섯째는 기술 혁신에 저항하는 것이다. 거스를 수 없다. 4차 산업혁명이 만들어내는 거대한 변화 물결에서 건설산업만 예외일 수 없고, 최근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는 코로나19로 인해 ‘언텍트(비대면)’라는 새로운 흐름이 만들어지고 있다. 인력 중심의 ‘텍트(대면)’ 산업인 건설산업은 다양한 스마트 건설기술을 통한 ‘탈 현장화’와 동시에 현장에서의 작업을 자동화 중심으로 전환해 가야 한다. 시대의 요구다.
손태홍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미래기술전략연구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