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박준규 기자] 돈이 필요한 서민들의 마지막 ‘비빌 언덕’인 대부업체에서도 대출을 거절당해 불법 사금융으로 밀려난 이들이 최대 19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분석됐다.
서민금융연구원 지난해 10~12월 저신용자 2만2179여명과 대부업체 570곳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 결과를 담은 보고서를 최근 내놨다. 여기서 저신용자는 3년 이내에 대부업을 이용했거나나 현재 이용하고 있는 이들이다. 제도권 금융에서 밀리고 밀린 대출 수요자들의 실태가 간접적으로 드러난다.
▶대부업체마저 ’대출거절’ = 보고서에 따르면 저신용자들의 대부업체 문턱은 높아지는 형국이다. 대부업체에 대출 신청을 했으나 거절당한 경험(최근 3년간)이 있다는 응답율이 70%에 달했다. 대출을 못 받았다는 응답자의 66%는 결국 자금을 마련하지 못했다. ‘부정한 방법으로라도 돈을 마련하려 생각했다’고 응답한 비율은 26%에 달했다.
이번 설문조사에서 사금융을 이용했다고 응답한 사람의 62%는 법정최고이자율을 초과하는 고금리를 적용받았다. 또 법적으로 금지된 채권추심에도 시달렸다.
최고금리 인하 이후 대부업체 신규대출승인 고객 수 변화 |
대부업체에서 거절당했지만, 결과적으로 자금을 마련한 응답자들은 타 금융기관대출(31%), 가족·지인의 도움(29%)에 상당수 의존한 것으로 조사됐다.
문제는 가족이나 지인으로부터 돈을 빌리고 변제했다는 응답자는 28%에 그쳤다. 자칫 개인의 부채가 주변으로 전이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정책금융상품을 통해 돈을 마련했다는 응답자는 전체의 17%였다. 2018년 조사(8.8%) 때보다 2배 정도 늘었다. 서민금융연구원은 지난해 당국이 출시한 ‘햇살론17’ 효과로 판단했다. 햇살론17은 저신용자들에게 최대 700만원까지 대출을 내주는 상품이다.
▶깐깐해지는 대부업…왜? = 대부업계에선 정부의 법정최고금리 인하 조치를 시장 위축의 원인으로 꼽는다. 정부는 대부업법과 이자제한법 시행령을 고쳐 2018년 2월 대부업 법정최고금리를 연 27.9%에서 연 24%로 낮췄다.
보고서에 따르면 이 조치가 시행된 뒤 대부업체 30% 이상이 대출을 축소했다. 낮아진 금리로는 돈을 빌려줘도 적자가 예상된다는 이유에서다. 지난해 대부업체의 평균 대출승인율(신용정보 조회 건수 대비 대출계좌 생성 건수)은 11.8%로 전년보다 0.6% 가량 줄었다. 신용등급 7등급 이하의 저신용자의 대출승인율은 11.1%로 더 떨어진다.
시장 규모도 줄었다. 지난 2008년 3월에 1만7000여곳에 달했던 개인대부업체는 지난해 6월 8294개로 줄었다. 이번 설문조사에 참여한 대부업체의 37%는 “적자를 보고 있다”고 답했다.
서민금융연구원은 대부업체에 앞으로 기대하는 정책방향도 물었다. 응답 업체의 52.6%는 ‘시장 상황에 맞는 유연한 금리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울며겨자먹기로 사금융行 = 서민금융연구원은 이번 설문 결과와 금융감독원의 대부업실태조사, 나이스평가정보의 자료를 토대로 지난해 불법 사금융 시장으로 밀려난 대출 수요자(6등급 이하 저신용자 기준)를 8만9000~13만명 가량으로 추산했다.
지난해 설문조사부터 설문조사 대상으로 포함된 토스, 뱅크샐러드, 렛딧 등 핀테크 업체를 제외하면 이 추정치는 최대 19만명으로 늘어난다.
전체적으로 2018년 추정치(26만~44만명)보다 줄었다. 앞서 언급한 햇살론17 같은 정책금융상품이 저신용자의 대출수요를 어느정도 흡수한 결과로 풀이된다. 하지만 실제로 제도 밖 사금융 이용자 규모는 더 클 것으로 본다.
서민금융연구원은 꾸준히 제도권 대부시장을 육성할 것을 주장해 왔다. 이른바 ‘한국형 소액 대부업’이다. 이번 보고서에서도 업계에 탄력적인 금리 산정을 허용해 대부시장을 활성화 해야 금융소외, 사금융 난립을 해소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조성목 서민금융연구원장은 “정책금융상품이 궁극적으로 시장기능을 대체할 수는 없다”며 “궁극적으로 민간 서민금융시장을 활성화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nyang@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