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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숨진 채 발견된 용산참사 철거민…“출소 후 힘들어해”
가석방 출소 후 홀로 모친 봉양
진상규명위 “국가ㆍ건설자본이 죽여”

용산참사 10주기 범국민추모위가 지난 15일 청와대 광장서 기자회견을 열고있는 모습 [윤현종 기자 factism@heraldcorp.com]

[헤럴드경제] 2009년 용산참사 당시 망루 농성에 참여했던 철거민이 숨진 채 발견됐다.

24일 서울 도봉경찰서에 따르면 전날 오전 9시30분께 도봉구 도봉산 천축사 부근 숲에서 김모(49) 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김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정확한 사망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현장에서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과거 용산4구역에서 식당을 운영했던 김씨는 2009년 1월 재개발을 위한 강제철거를 앞두고 남일당 건물 망루 농성에 참여했다가 특수공무집행방해치사 혐의로 4년형을 선고받았다. 3년 9개월간 복역하다 가석방으로 출소한 김씨는 배달 일을 하며 홀로 나이 든 어머니를 모시고 살던 것으로 전해졌다.

용산참사 진상규명위원회에 따르면 김씨는 22일 저녁 가족에게 전화를 걸어 “내가 잘못되어도 자책하지 말라”는 말을 남겼다.

진상규명위는 “김씨는 2012년 가석방 이후 잠을 잘 자지 못했고, 간혹 우울증 등 트라우마 증세를 보였다. 높은 건물로 배달 일을 갈 때는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을 느끼며 괴로워했다”며 “최근 몇 개월 전부터 증세가 나빠져 병원 치료를 받으며 우울증약을 복용했다고 한다”고 전했다.

고인의 가족들은 “용산참사 출소 후 사람이 달라졌고, 속내를 이야기하지 않고 혼자 많이 힘들어 했다”고 말했다고 진상규명위는 전했다.

2009년 1월 19일 철거민 32명은 재개발 사업 관련 이주대책을 요구하며 서울 용산구 한강로2가 남일당 빌딩 옥상에 망루를 세우고 농성을 벌였다. 겅찰 진압 과정에서 화재가 발생해 경찰관 1명과 철거민 5명이 숨졌다.

당시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 결과 경찰의 과잉진압 결론이 나왔다. 지난해 9월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는 당시 경찰 지휘부가 화재 등 위험 발생 가능성을 예상하고도 무리한 작전을 강행해 인명피해가 발생했다는 조사 결과를 내놓았다.

지난 달 31일 법무부 산하 검찰 과거사위원회는 용산참사 당시 경찰의 과잉 진압에 대한 검찰 수사가 소극적·편파적이었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진상규명위는 “김씨의 죽음은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다”며 “10년이 지나도록 누구 하나 책임지지 않고 철거민들만 죽음의 책임을 온전히 뒤집어쓴 채 살아가도록 떠민 경찰, 검찰, 건설자본과 국가가 그를 죽였다”고 성토했다.

이어 “경찰과 검찰의 과거사 조사에서도 과잉 진압과 편파수사 일부가 드러났지만,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다’,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편파적 법이 그를 죽였다”고 재차 강조했다.

김씨의 빈소는 도봉구 쌍문동의 한 병원에 마련됐다.

onlinenew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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