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9일 KBS와 대담을 갖고 분야별 국정 현안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그동안 야기됐던 정책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문 대통령은 인정할 건 인정하는 비교적 솔직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지켜보는 입장은 답답하기만 하다 . 정책에 오류가 드러나면 방향을 수정하고 새 길을 모색하는 게 기본이다. 한데 그럴 생각은 전혀 없어보이기 때문이다.
가파른 인상으로 경제 전반에 큰 부담을 주고 있는 최저임금 문제가 대표적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이라는 공약에 얽매여 무조건 그 속도로 인상돼야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저임금 인상 속도조절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최저임금 속도조절은 여권에서도 제기되고 있는 만큼 그 당위성은 설명이 필요없을 정도다. 최저임금 인상은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의 근간인 소득주도성장의 핵심이다. 그런 점에서 문 대통령의 이같은 입장 표명은 매우 긍정적 변화라 할만하다.
실제 문 대통령은 최저임금 인상이 당초 의도와는 달리 치명적 부작용을 발생시킨 데 대해 상당부분 인정했다. 특히 최저임금 인상 여파로 고용시장에서 밀려날 수 밖에 없었던 최하층 노동자와 직격탄을 맞은 영세상공인의 어려움에 대해 “참으로 가슴 아프고 송구스러운 입장”이라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면서 “최저임금위원회가 이런 점들을 고려해 사회가 수용할 수 있는 적정선으로 판단할 것이라고 기대한다”는 말도 했다. 사실상 최저임금위원회에 속도조절 가이드라인은 제시한 것이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인식 변화가 정책 방향 전환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란 점도 분명히 한 것이다. 1분위와 5분위 노동자간 임격 격차가 크게 줄었다거나, 저소득 노동자 비중이 역대 최저로 낮아졌다는 등 최저임금 인상 ‘효과’를 강조한 게 그것이다. 부작용은 인정하고 이에 따른 속도 조절은 가능하나 기존 정책을 바꿀 생각은 없다는 속내다. 결국 근본적인 해법을 찾기 보다는 속도조절선에서 비판과 반발을 무마하겠다는 의도다. 일종의 작전상 후퇴인 셈이다.
지난 1분기 성장이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수출은 다섯달연속 감소세는 등 경제가 곤두박질치고 있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은 이날 “거시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며 여전히 현실과 동떨어진 인식차를 내보였다. 최저임금 말고도 주 52시간 근무제 등 무리하게 추진되는 정책들이 부지기수다. 경제는 현실이다. 이념 구현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문 대통령의 임기가 아직 3년이 남았기에 하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