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권’ 넘어 ‘인간의 윤리’ 통한 접근
‘육식옹호’ 다원적으로 꼼꼼히 반박
“채식, 윤리적으로 좋은 삶의 한 방식”
“잘 먹는 개념이 자동으로 육식주의자나 채식주의자가 될 것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러한 개념은 먹는 것이 충분히 자신을 표현하는 관행일 경우 그리고 이것이 표현하는 가치들이 옹호할 만할 경우,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우리가 영위할 수 있는 최선의 삶에 부합될 경우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는 생각을 분명 포함하고 있다.”(‘채식의 철학’에서) |
#2009년 9월 마커스라는 이름의 양 때문에 영국사회가 발칵 뒤집어진 적이 있다. 켄트 지역의 한 초등학교 교사가 학생들에게 새끼양 마커스를 키우게 했는데, 충분히 자란 뒤엔 도살해 학교 기금 마련을 위해 경매처분될 예정이었다. 먹이사슬의 과정을 배우고 더 많은 동물을 키울 목적으로 양을 처분키로 했지만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항의가 잇따랐다. SNS를 통해 마커스를 구하기 위한 모금운동이 펼쳐지고 일부 학부모는 교장 파면까지 거론했지만 결국 마커스는 도살됐다. 사람들은 반려동물로 키워진 양을 도살하는게 맞는지 옥신각신했다.
반려동물 천만시대에 동물을 바라보는 시각은 크게 바뀌었다. 동물에게 가해지는 고통과 살해를 윤리적 측면에서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동물도 사람처럼 즐거움과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생명체이기 때문에 도덕적 권리를 가진다는, 1970년대 피터 싱어를 주축으로 일련의 철학자들이 주장한 동물권은 이제 우리들에게도 낯설지 않다.
인류가 농업과 가축을 시작한 이래 혁명적인 인식의 변화라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인류가 보편적 식습관으로 자리잡은 육식을 거부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스코틀랜드 철학자인 토니 밀리건 킹스칼리지 교수는 인류를 고민에 빠트리는 새로운 윤리적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 지 ‘채식의 철학’(휴머니스트)에서 7가지 핵심질문을 통해 탐색해나간다. 채식이 실제로 동물에게 이익이 되는지, 반려동물과 가축을 나누는 기준은 무엇인지, 동물실험을 어디까지 허용해야 하는지, 채식은 육식보다 더 친환경적인지 등을 일상에서 흔히 사용하는 개념을 통해 접근해나간다.
육식과 채식 중 어느 한쪽에 치우치기 보다 각각의 논리를 주고받기식으로 펼쳐가면서 옳고 그름이나 획일적인 판단에 빠지지 않도록 신중하게 논리를 전개시켜나가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윤리 다원주의를 보여주는 저자의 입장은 기존의 동물의 권리를 옹호하는 이들과는 다르다. 나아가 몇몇 동물의 희생이 많은 인간이나 다른 더 많은 동물들의 희생을 막을 수 있다면 용인할 만하다는 공리주의 입장과도 길을 달리한다. 책의 원제, ‘동물권을 넘어서(Beyond Animal Right)’가 말해주듯 저자는 채식을 동물의 권리 문제로 보기 보다 인간의 윤리와 관련된 사안으로 본다.
육식옹호론자들이 입장을 고수하기 위해 흔히 내세우는 논리 가운데 하나가 ‘살아갈 기회 논증’이다. 즉 가축으로 키우지 않았다면 살아갈 기회마저 없었을 것이란 논리다. 과연 그런가. 저자는 이 논증은 우리의 도덕적 감각 보다 동물 자체의 이익쪽으로 관심을 돌리게 하는데, 고기를 생산하기 위해 사육되는, 고통이 일상화된 현 집약적인 사육시스템에서는 아예 태어나지 않는 편이 나을 수 있다고 말한다. 더욱이 이 논증은 인간에게 역습이 될 수 도 있다. 같은 동물인 인간을 죽이는 행위를 정당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육식을 뿌리깊은 관행으로 보는 시각에 대해서도 보편성을 꼼꼼이 따져나간다. 육식옹호론자들은 송곳니를 인간이 자연적인 육식주의자임을 보여주는 증거로 제시하지만 저자는 이 ‘뿌리 깊음’이 과연 웰빙이나 인간성과 관련이 있는 것인지 따져 묻는다. 치아는 우리 조상이 시종일관 육식을 했다는 사실이 아니라 얼마만큼 잘 적응해왔는지를 보여준다는 지적이다. 우리가 야생에서 취하기 힘든 비타민으로는 B12가 유일한데 이는 물고기에서 취할 수 있음을 감안하면 우리 조상은 잡식을 하면서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었다는 얘기다. 한마디로 채식이건 육식이건 진화와 대립되는 건 아니라는 설명이다.
채식주의자에 대한 잘못된 편견과 오해에 대해서도 풀어준다. 가령 채식주의를 극기나 희생, 엄정주의, 책망과 연결시키려 하지만 일반적으로 채식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식습관을 힘들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들은 인간이 처한 곤경을 해결하는 개인적인 삶의 방식으로서 채식을 택하는데, 이는 윤리적 측면에서 ‘좋은 삶을 영위하기’ 즉 진정한 웰빙이라는 얘기다. 저자 자신이 육식주의자의 삶을 살다가 채식주의자에서 다시 완전채식주의자로 전환해 경험치가 녹아있다.
그렇다고 채식을 강요하는 건 아니다. 채식 혹은 육식을 해야 하는 이유들의 스펙트럼을 넓게 잡고 다양한 가치들을 꼼꼼하게 짚어가며 윤리적 삶, 윤리적 먹기가 무엇인지 판단의 근거를 제시할 뿐이다. 그 스펙트럼의 한쪽 끝에는 육식이 생존에 필수적이었을 수렵채집인과 영양적으로 육식을 해야 하는 이들이 자리한다. 그리고 스펙트럼의 반대쪽 끝에는 육식을 해야할 뚜렷하고도 충분한 이유를 갖지 않은 충분히 건강한 도시인들이 있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들 대부분이 건강한 도시인 쪽에 속해있다. 말하자면 우리는 “충분히 타당한 이유 없이 육식”을 하는 사람들이다.
채식을 ‘동물권’이라는 협소한 틀에 한정하지 않고 생물학적, 사회·문화적으로 확장해 윤리적 삶이란 무엇인지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