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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도적으로 외면해 왔던 일제강점기 한국미술…뼈아프게 마주하다

‘일제강점기’라는 단어는 가끔은 ‘망각’과 동의로 읽힌다. 아픈 역사이고 슬픈 역사이기에 기억하는 것 만큼 지우는 작업도 이루어졌다. 이렇게 ‘공백’을 자처했던 한국사회가 일제강점기와 구한말을 돌아보기 시작한 건 최근이다. 비록 외세에 의한 것이긴 했지만 ‘근대’가 시작됐고, 그때 잘못 끼운 단추가 지금까지 영향을 미치기도 해서다. 미술계도 이같은 흐름에 서있다. ‘빈 칸’이었던 이 당시의 한국미술을 돌아보는 책 ‘일본 화가들 조선을 그리다’가 나왔다.

지은이 황정수는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했으나, 미술에 빠져 이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다. TvN의 프로그램 ‘어쩌다 어른’에서 오원 장승업의 ‘군마도’로 소개한 그림이 현재 활동하고 있는 한 한국화가의 작품임을 지적한 눈 밝은 평론가로 더 익숙하다.

지은이는 한국미술사는 ‘반토막’이라며 일제 강점기 한국 미술계를 주도한 일본인 화가의 활동을 끈질기게 조사했다. 일본인 화가에 대한 관심은 매우 논리적인 질문에서 출발한다. 당시 한국 근대미술의 최고봉인 고희동, 허백련, 이상범, 김은호 등 대부분 화가가 일본의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었는데도 왜 이들에게 영향을 준 일본인 작가에 대한 정보는 없는가, 솔거처럼 천부적으로 타고나 화가가 됐다는 설명만 있나 하는 것이다. 지은이는 이들의 스승이 어떤 작품을 했는지 연계해 살펴보며 한국미술사의 잃어버린 퍼즐조각을 조금씩 찾아냈다.

그간 한국 근대미술사 연구에서 일제강점기 활동한 일본화가 연구는 주로 문헌자료 중심이었으나, 이 책에선 문헌자료에 더해 미술 작품을 통해 화가의시선으로 바라본 당시 현실을 재구성 했다. 그래서 책장을 넘길 때 마다 아픈 역사가 생생히 살아난다. 책에서 공개된 최제우와 최시형 참형도는 동학농민전쟁의 실패를 그렸다는 것 만으로도 뼈아프지만 일본인이 그렸다는 점에서 더욱 참혹하다.

전체 750페이지에 달하는 책은 저자의 꼼꼼함과 끈기로 완성한 대작이다. 2018년 출판문화산업진흥원 우수출판콘텐츠 제작 지원 사업에 선정됐다.

이한빛 기자/vick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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