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회, 북아일랜드 안전장치 반발
융커 “메이 무능력에 놀랐다”
만남, 대화, 그리고 이별’.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의 하루가 바빴다. 전날 브렉시트 합의안의 영국 의회 부결을 우려해 표결을 연기한 메이 총리는 11일(현지시간) 유럽연합(EU)과의 추가 협상 지지를 호소하며 ‘당일 3개국 투어’로 총력외교를 펼쳤다. 네덜란드 헤이그에서는 마르크 뤼테 네덜란드 총리와 만났고(왼쪽 사진) 벨기에 브뤼셀에서 장-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과 회담했으며(가운데) 독일 베를린에선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브렉시트 관련 논의를 가졌다. [AP 로이터 연합뉴스] |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가 의회의 벽에 부딪힌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Brexit·브렉시트) 합의안을 사수하려고 유럽 곳곳에서 설득작업에 나섰지만 “재협상은 없다”는 EU의 입장만 재확인했다. 국내에서는 불신임 투표 움직임이 거세져 ‘사면초가’ 위기에 몰렸다.
11일(현지시간) 영국 가디언 등에 따르면 메이 총리는 이날 마르크 뤼테 네덜란드 총리,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장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 도날트 투스크 EU 정상회의 상임의장 등을 잇달아 만났다.
이는 영국과 EU의 브렉시트 합의안에 담긴 북아일랜드·아일랜드 국경에서의 ‘안전장치’(backstop)와 관련된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합의안 수정을 요구하는 과정이다.
메이 총리는 전날 이 문제로 부결 가능성이 큰 만큼 11일로 예정됐던 의회의 브렉시트 합의안 승인투표를 연기한다고 밝혔다.
메이 총리는 이날 브렉시트 합의를 위해 ‘안전장치’가 반드시 필요하지만, “일시적”이어야 한다는 하원의원들의 주장을 반영해 법적 확약을 추구한다고 설명했다.
앞서 영국과 EU는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 간 ‘하드 보더’(Hard Border·국경 통과 시 엄격한 통행·통관 절차)를 피하고자 미래관계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 영국이 당분간 EU 관세동맹에 남는 데 합의했다.
영국 의회는 일단 ‘안전장치’가 가동되면 영국이 일방적으로 협정을 끝낼 수 없어 EU 관세동맹에 남게 된다는 점에 반발했다.
또 영국 본토와 북아일랜드 간 다른 규제가 적용되면 영국의 통합성도 훼손된다고 봤다. 메이 총리는 이들의 우려를 잠재울 수정안이 나와야만 브렉시트 합의안이 의회를 통과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EU는 ‘안전장치’ 내용을 보다 명확화하는 작업은 가능하지만, 재협상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투스크 의장은 이날 회동 뒤 트위터에 “EU 정상회의에 앞서 메이 총리와 오랜 시간 솔직한 논의를 가졌다”면서 “EU는 돕기를 원하지만 문제는 ‘어떻게’이다”라고 했다.
메르켈 총리도 이날 메이 총리를 만난 자리에서 “재협상은 없을 것”이라면서 “다만 아일랜드 국경문제 해결과 관련해 여전히 낙관적인 입장”이라고 했다.
융커 위원장도 이날 유럽의회 연설에서 “의회의 비준동의를 받지 못한 메이 총리의 무능력에 놀랐다”며 “재협상의 여지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양측이 의견 조율에 실패하면 영국이 아무런 협정 없이 EU를 떠나는 ‘노 딜’(no deal) 브렉시트 가능성도 커진다. EU는 오는 13일 정상회의에서 이런 가능성에 대해서도 논의할 예정이다. 메이 총리도 ‘노딜’에 대한 준비를 강화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영국 내부에서는 보수당 브렉시트 강경파를 중심으로 메이 총리 불신임 투표가 추진되고 있다. BBC 방송 은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이날 총리 신임투표를 위한 보수당 의원의 서한 제출이 기준에 도달했다고 전했다.
보수당 당규에 따르면 의원 48명 이상이 ‘1922 위원회’ 그레이엄 브래디 의장에게 대표 불신임 서한을 제출하면 당 대표 경선을 해야 한다. 이미 48명의 의원이 브래디 의장에게 서한을 제출, 의장이 12일 총리를 만난 뒤 메이에 대한 신임투표를 확정할 가능성이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BBC는 “영국 보수당 브렉시트 지지자들은 메이 총리의 투표 연기로 자신들이 충분한 지지를 얻게 됐다고 확신하고 있다”며 “메이 총리의 지도력의 위기가 심화하고 있다”고 전했다.
양영경 기자/y2k@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