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사석에서 만난 여당의 한 중진 의원은 대뜸 이렇게 말했다. “이제 1년밖에 안 남았다”고. 2020년 총선을 앞두고 열리는 내년 가을 마지막 20대 정기국회를 가리키는 것이다. 총선의 전초전 성격을 띠는 정기국회에서 사실상 선거의 승부가 판가름날 거란 얘기다. 여야 모두 대대적인 지지층 결집에 나서며 살벌한 전쟁을 펼칠텐데, 그 안에 경제를 회복시켜놔야 표심을 틀어쥐고 다음해 총선에서 승리를 노릴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래서 ‘경제 골든타임 1년’ 얘기를 꺼낸 것이다. 그의 말은 이렇다.
“총선은 예외없이 대통령 심판이었고, 표심의 기준은 예외없이 경제였다. 남북관계 발전? 한반도 평화? 그건 그냥 그것일 뿐이다. 선거에 큰 영향을 못미친다. 문제는 민생경제다. 우리 당 의원들은 지방선거 압승했다고 총선도 자신하는데, 절대로 그렇지 않다. 이제 겨우 1년 남았다. 대통령이 나서서 경제 살려야 한다.”
같은 당의 또다른 의원도 걱정스러운 목소리다. “내년에 경제상황이 더 나빠질 거다. 단기간에 좋아질 경제 문제가 아니다”고 했다. 일자리 정책에 역대 최대규모의 예산을 책정했지만 내용이 부실해 걱정이라는 실토도 있었다. 한 의원은 “민주당 내에 경제 전문가가 없다. 이걸 인정하고 겸손해야 한다”며 경제 정책을 하루빨리 수정하고 다시 세워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야당 의원들의 성토인가 싶을 정도로 여당 내에서 강도높은 비판과 자성이 쏟아지고 있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변할 기미가 없다. 문 대통령은 이달 1일 국회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한동안 언급하지 않던 소득주도성장을 다시 꺼냈다. 투자·생산·고용 지표의 악화로 경제정책의 전환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경제정책 기조 불변’으로 답한 것이다. 최근 경질된 장하성 전 정책실장은 가장 잘한 것을 꼽아달라는 질문에 “저소득층과 중산층을 위한 소득주도성장을 시행한 것”이라고 답해 서민들의 분통을 터뜨리게 했다. 그가 말한 ‘저소득층을 위한 소득주도성장’은 최악의 분배 성적표로 돌아왔다. 통계청이 22일 발표한 3분기 가계동향조사에서 1분위(하위 20%)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131만 8000원으로 7.0% 감소한 반면, 5분위(상위 20%) 소득은 8.8%나 불어났다. 일자리의 빈익빈 부익부가 초래한 결과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등이 근본 원인임이 분명해지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내년 성장률이 올해(2.7%)보다 낮은 2.6%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강신욱 통계청장도 “한국 경제는 하강국면에 있다”고 했다. 그럼에도 청와대는 “경제정책 변화 없다”고 한다.
문 대통령은 이번 주말 G20 정상회의서 각국 정상들에게 ‘모두가 함께 잘 사는’ 포용국가 비전을 설명할 계획이다. 너무나 멋진 말이다. 하지만 서민들의 고통을 읽지 못하고 실패로 귀결된 정책을 밀어붙인다면, 그래서 국민을 바닥 모를 경제위기 속으로 끌고 들어간다면 ‘다함께 잘 살 수 있다’는 이 가슴 설레는 말은 공허한 메아리가 될 것이다. 정권 말까지 흔들림없이 국정운영 동력을 쥐고 가려면 비핵화 로드맵 못지 않게 중요한 경제 살리기 로드맵을 확실하게 보여줘야 한다. 시간이 그리 많이 남지 않았다. anju1015@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