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배두헌 기자] 한국의 자존심이었던 자동차산업이 ‘최악의 위기’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계속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국내 자동차 생산량이 올해 400만대 아래로 떨어져 10년 전 수준으로 후퇴할 것으로 보고 있고, 학계에서도 근원적인 경쟁력 강화 없이는 회복이 어려울 것이란 비관적 전망이 나오고 있다.
지난 19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한국자동차산업학회 세미나는 여느 학술대회와 달리 뜨거운 토론이 이어졌다. 발제자와 토론자, 마이크를 잡은 참석자들까지 국내 자동차산업 경쟁력 위기에 대한 다양한 진단과 나름대로의 해법을 내놨다.
첫 발제자로 나선 김기찬 가톨릭대 경영학부 교수는 연구개발을 통한 경쟁력 강화를 주문했다.
김 교수는 “지난 30년 간 자동차 산업을 지켜봤는데 이렇게까지 큰 위기는 없었다”며 “국내 자동차산업이 한창 좋았을 때는 일본 업체들이 리콜 등 이슈로 힘들어질 때부터 반사혜택을 누렸던 측면이 있는데 그때 경쟁력을 차별화하고 연구개발에 집중했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 완성차회사에는 노사 전문가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초우량 기업으로 나아가기 위해 전략과 기획, 제품개발 등에 집중해야 하는데 우리 완성차업계는 노사관계에 쓰는 에너지 소비가 너무 크다는 지적이다.
자동차업계에서도 높은 인건비와 기업에 불리한 근로환경에 대한 성토가 이어졌다.
문승 한국GM 협신회(한국GM 협력사 모임) 회장은 “토요타의 매출액 대비 노무비(인건비) 수준은 7.8%고, 높다고 하는 폭스바겐도 8.5%다. 현대차는 15%에 달한다. 앞으로 10년 간 경쟁해서 우리가 그들을 이길 수 있겠는가”라고 우려했다.
고문수 한국자동차산업협동조합 전무는 “내년 최저임금이 8350원이 되면 상여금 미 포함시 중견기업 30%가 최저임금에 걸린다. 2차 협력사는 70%까지 걸리게 돼 있다”며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에 대해 우려했다.
탄력적 근로시간제 도입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고 전무는 “부품업체가 완성차업체와 함께 디자인하고 시험평가하다보면 6개월 이상 몰입근무가 필요한데 그 부분에 대한 탄력적 근로시간제가 필요하다”며 “폭스바겐이나 벤츠에 납품하면 고맙게도 그들이 직접 한국에 와 3개월 밤낮으로 기술지도를 해준다. 그런데 52시간 근로시간에 매여 이 사람 저사람이 나눠 들어야 할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임은영 삼성증권 팀장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아메리카 퍼스트’를 계속 외치고 있고 수입차 관세 이슈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한국 공장 생산은 앞으로도 계속 줄어들 것 같은데 이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고민해야 할 것 같다”고 지적했다. 임 팀장은 “국내 부품업체들이 힘들다 힘들다 하지만 전세계 IT 업체들은 앞다퉈 글로벌 자동차 부품사들을 계속 사들여 과점화가 일어나고 있다”며 “한국에 과점 부품사가 있느냐. 품목을 정해줘서라도 무조건 1등 부품사를 만들어야한다”고 강조했다.
한범석 자동차부품연구원 본부장은 “IMF때 보면 제일 먼저 줄이는 게 R&D 비용이었지만 그때 살아남은 기업들은 R&D의 소중함을 안 기업들”이라며 “당장 눈앞에 죽게 생겼는데 무슨 기술이냐고 하지만 기술 확보한 기업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했다.
미래차 개발에 치우쳐 기존 내연기관차의 경쟁력 강화를 소홀히 하면 안된다는 지적도 나왔다.
주영섭 한국ICT융합네트워크 회장(전 중소기업청장)은 “미래차 준비도 당연히 중요하지만 상황을 시장중심으로 현장을 보고 판단해야하지 보고서에만 나온 얘기로 판단하는 건 안된다”며 “세계 자동차산업을 리드하는 독일은 전기차, 자율주행차도 잘 하지만 내연기관차를 무시하지 않는다. 일본 같은 경우는 신(新)내연기관에 대한 R&D를 더 강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날 토론에 참여한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지난 8월말부터 전국을 다니면서 업계 간담회를 통해 목소리를 듣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자동차 생산기지로서 한국의 매력이 떨어졌다고들 하지만 아직까지 서플라이(공급) 체인과 납기일 준수 등 매력적인 점도 많다”며 “업계는 올해 국내 생산이 400만대 이하로 떨어질 것으로 보지만 우리는 그렇게까지 나쁘게 보지만은 않는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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