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부적으로 ‘진보성 강화’ vs ‘여당의 숙명’
[헤럴드경제=이태형 기자]문재인 정부의 핵심 과제인 일자리 만들기에서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지 않자 정부와 여당이 각종 규제완화를 통한 혁신성장으로 기업의 투자를 활성화시키기 위한 방안들을 내놓고 있다.
이에 따라 더불어민주당이 정체성 딜레마에 빠졌다. 노동 분야에 대한 정책은 후순위로 밀려나고 을과 을, 을과 병의 갈등을 조장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내부에서는 기업에 적대적인 경제 정책의 노선 변경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불거진다.
민주당은 최저임금 인상으로 소상공인과 영세자영업자들이 직격탄을 맞을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자, 상가임대차보호법과 가맹거래법 등의 조속한 통과를 약속하며 ‘갑’으로부터 ‘을’을 지키겠다고 나서고 있다.
민주당 을(乙)지로위원회도 지난 19일 “중소상공인 고통의 책임을 최저임금에 떠넘기는 일은 정치권의 직무유기”라며 중소상공인을 살리는 6대 민생법안 처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그러나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에서부터 민주당이 ‘우클릭’을 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됐다. 실제로 지난 6ㆍ13 지방선거 당시 홍영표 원내대표는 선거 지원유세 때마다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자들의 항의에 시달려야 했다.
양향자 민주당 최고위원은 지난 20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기업의 불공정 관행이나 도덕적 일탈을 엄벌해야 하지만 기업에 지나치게 적대적인 시각을 갖고 있지 않은지도 되돌아봐야 한다”고 주문했다.
삼성전자 상무 출신인 양 최고위원은 “대기업 투자 없이 혁신적인 산업 성장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이어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이 호흡을 맞추면 기업 투자가 더 늘 것”이라며 “혁신과 성장을 위해서는 과감히 규제를 풀고, 기업과 물리적ㆍ심리적 거리를 좁혀야 한다. 더 따듯한 마음으로 기업을 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 최고위원은 지난 16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통해서도 “원내대표께서 최근 20년간 국민소득에서 기업 비중은 크게 늘었는데 가계 비중은 크게 줄어든 상황을 지적했다”며 “이를 대기업이 하청 기업이나 노동 임금을 착취한 결과로 보는 문제의식에는 동의하기 어렵다”며 부의 집중을 지적하며 삼성을 언급한 홍영표 원내대표 강연을 정면 비판했다.
그는 “성장기 기업들의 과오에 대해서는 성찰해야 마땅하나 기업 성장의 원인을 착취로 보는 것은 다소 지나치시다”며 “혁신성장은 대기업의 적극적인 참여 없이 가능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민주당의 이 같은 행보가 지지층의 분열을 야기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하고 있다. 민주당의 중도ㆍ진보적 색채가 옅어지면서 지방선거 압승의 바탕이 됐던 진보 지지층들이 다수 정의당으로 이탈했다는 지적이다.
이러한 지적은 당 내부에서도 나오고 있다. 강훈식 의원은 지난 1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민주당 8ㆍ25 전당대회 의미와 과제’ 토론회에서 “민주당의 노선과 가치의 방향에서 진보성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당과 정부가 단기적 경제지표에 흔들리지 말고 소득주도성장의 원칙을 꾸준히 밀고 나가야 한다는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국정을 책임져야 하는 집권여당이 된 상황에서 어느 정도의 ‘우클릭’은 어쩔 수 없다는 반응도 나온다.
민주당 관계자는 “(민주당은) 이제 국정에 무한책임을 져야 하는 집권여당이기 때문에 모든 사안에 대해 현실적인 대책과 국민 전체를 바라보는 정책들을 제시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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