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으로 읽는 종용록(혜원 역해, 김영사)=‘염화시중(拈華示衆)의 미소’는 선의 세계, 화두의 대표적인 예로 회자된다. 영산에서 범왕이 석가에게 설법을 구하며 연꽃을 바치자 석가가 연꽃을 들어 대중에게 보였더니 제자 가섭만이 참뜻을 깨닫고 미소를 지었다는 얘기다. 이를 두고 가섭이 왜 미소를 지었는지에 대한 해석이 구구하지만 답은 없다. 가섭은 그 순간, 문득 마음과 생각을 초월해 자신 역시 부처라는 사실을 깨달았고 석가는 그걸 알아챈 것이다. 말 없음 속에서 진리가 전달되는 선 세계의 시작이다.선불교의 선사들은 스승에게서 한 줄 화두를 받아들고 그 말을 끊임없이 곱씹다 문득 깨달음을 얻었다. 그런 화두의 깊은 뜻이 잘 드러나도록 형식을 갖추어 일화나 문답으로 정리한 걸 공안(公案)이라 부른다. ‘종용록’은 선종 5가 가운데 조동종(曺洞宗)의 바이블격으로 공안 100가지가 들어있다. 공안선으로 자성청정을 투득함은 바로 석존의 ‘본래성불’의 교의를 깨닫는 것과 직결된다. 동국대 명예교수 혜원 스님이 이를 비교적 쉽고 명쾌하게 해설했다.
▶그리스 비극 깊이읽기(최혜영 지음, 푸른역사)=그리스 비극은 예술적 영감의 보고로 인간의 고뇌, 욕망, 운명, 복수 등 인간 본성을 극화한 드라마의 원형으로 꼽힌다. 그런데 의문은 많다. 왜 오이디푸스나 안티고네 같은 테바이의 왕실 이야기가 그렇게 인기가 있었을까, 세계적인 영웅 헤라클레스는 왜 그렇게 지질히고 못난 인간으로 그려졌을까? 최고의 미녀 헬렌은 어떻게 못된 여자에서 가장 정숙한 여성으로 신격화됐을까? 그리스사 전공 역사가인 저자는 이같은 의문은 문학작품으로만 이해해선 풀리지 않는다며, 다양한 사료를 근거로 한 정치적, 역사적 해석으로 눈을 돌린다. 저자에 때르면, 그리스인들에게 드라마 공연은 지금의 연극과 달랐다. 즉 비극 공연은 공동체 디오니소스 제전에 바쳐진 전체의 종교 행사였을 뿐 아니라 테바이 등 ‘적국’의 기세를 꺽기 위한 심리전의 도구였다. 또한 애국심을 고취하는 정치적인 행사이기도 했다. 기원전 5세기 아테네를 둘러싼 국제 정세는 복잡했다. 페르시아 전쟁, 델로스 동맹, 펠로폰네소스 전쟁 등 국가의 운명이 달린 소용돌이가 치고 있던 시기다. 저자는 이런 격동기를 배경으로 비극작품이 왜, 어떤 내용으로 탄생했는지 풀어낸다. 종래 문학적, 철학적 시각으로 바라봤던 그리스 비극을 다른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영의 기원(천희란 지음, 현대문학)=2015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하고, ‘2017 젊은작가상’을 수상한 신예작가 천희란의 첫 소설집.등단작 ‘창백한 무영의 정원’을 비롯, 총 여덟 편의 소설 모두 죽음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 놀랍다. 급작스레 찾아온 친구의 죽음에 대한 성찰을 그린 표제작 ’영의 기원‘부터 돌연사한 아버지와 스스로 죽음을 택한 여동생, 이어 발생한 어머니의 실종 등 묵시록적 죽음의 그림자를 드리운 ’창백한 무영의 정원‘ 등 작가는 죽음과 성찰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집요하게 끌고간다. 다양한 형태의 죽음은 개인의 소멸에 그치지 않는다. 작가는 이들을 통해 죽음에 대한 사회학적 맥락을 드러내 보여주고자 한다. 또한 죽음을 기억하고 애도하는 행위를 통해 살아있는 우리들이 공동체 일원으로서 해야 할 노력의 가치를 전달하려 한다. 이들 소설 속 화자들은 대체로 여성이거나 화자 주위의 여성들이라는 점도 시선을 끈다. 작가는 이들 작품 속에서 위계폭력과 여성 혐오의 시대에 외부를 향한 투쟁 못지않게 내적 투쟁의 중요성을 제기한다. 이를 위해 “끝없이 분열하는 자신과 싸워온 사람들 모두”의 연대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넣었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