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 단절 재충전 공간 활용
직장 스트레스 날리는 ‘호캉스’
서울 송파구의 한 스타트업 기업에서 일하고 있는 진명권(28) 씨는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날이면 퇴근 후 집 대신 인근 호텔로 향한다. 퇴근 후 저녁을 호텔에서 혼자 보내며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다. 요즘 젊은이들이 많이 한다는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다.
진 씨는 사실 서울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다. 그러나 최근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가족에게 표현하는 경우가 잦아지면서 아예 아무도 없는 호텔방에서 혼자 스트레스를 풀기로 했다. 이 때문에 진 씨의 직장 동료도 처음에는 “집도 가까운데 왜 호텔에서 자느냐”고 궁금해했지만, 진 씨의 말에 대부분 공감했다. 진 씨는 “업무가 잘 안 풀리거나, 지적을 받는 날에는 일부러 호텔방을 잡는다”며 “지난해 하루도 휴가를 가지 못했는데, 호텔에 오면 여행을 온 기분도 느끼고 좋다”고 했다.
진 씨의 경우처럼 젊은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직장 스트레스를 호텔에서 혼자 지내며 푸는 이른바 ‘호캉스’를 즐기는 경우가 많다. 호캉스는 호텔(hotel)과 바캉스(vacance)의 합성어로 호텔에서 편안히 휴식을 즐긴다는 뜻이다.
휴가철에 외국이나 먼 휴양지 대신 도심 호텔을 선택하는 것은 이미 보편화 됐지만, 최근에는 평일에도 호텔을 찾는 직장인도 많이 늘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개인 공간’을 찾고 싶었다”고 말한다.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주변에 드러내지 않으려고 아예 접촉을 차단하는 셈이다. 호텔에서 휴대전화까지 끄고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경우도 많다.
직장인 송경호(33) 씨는 “나도 가족과 함께 살고 내 방도 따로 있지만, 가끔은 아무도 없는 곳에서 지내고 싶은 욕구를 느낀다”며 “최근 회사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감당할 수 없어 가족에게 짜증을 내는 경우가 있는데, 가족에게 폐를 끼치는 것 같아 차라리 혼자 스트레스를 푸는 것이 낫다”고 했다.
이들에게 호텔은 세상과 단절된 채 휴식과 재충전을 하기 위한 공간으로 여겨진다. 직장인 김호태(31) 씨도 가끔 퇴근 후 혼자 호텔에서 지내는 것을 즐긴다고 답했다. 김 씨는 “퇴근 후 회사 단체 채팅방 알림을 모두 끄고 혼자 누워 책을 읽으며 스트레스를 푼다”며 “최근에는 인터넷 뉴스나 메일 알람도 꺼놓고 세상과 단절된 느낌을 몇 시간만이라도 즐기고 있다”고 설명했다.
호텔에 혼자 지내며 ‘혼자만의 휴가’를 즐기는 경우도 있다. 서울 송파구의 한 의류업체에 다니는 김소원(30ㆍ여) 씨는 “1년에 연차가 15일 나오지만, 붙여서 갈 수 없어 사실상 외국에는 나갈 수가 없는 상황”이라며 “때때로 혼자 호텔에서 1박을 하면 대학생 때 외국에 나갔던 기억이 나면서 스트레스가 풀린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혼자 호텔을 찾으며 스트레스를 푸는 직장인들에 대해 “회사에서 겪는 인간관계 속 스트레스 때문에 혼자 지내는 시간을 선호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김전규 정신의학과 전문의는 “회사에서 겪는 대인관계 스트레스에 대해 혼자 지내는 시간을 통해 해결하려는 경우가 늘어난 것 같다”며 “과도한 스트레스에 주변 인간관계를 축소하려는 경향과 비슷한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유오상 기자/osyoo@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