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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속적 민간투자 유도…런던올림픽 유산 가꾸기는 여전히 진행중
올림픽 6년…‘스포츠+웰빙투어’ 새 지평
엘리자베스 파크엔 어린이들 뛰놀고
인근엔 ‘라이프 체인저’ 대학 등 입주

웨스트햄, 주경기장 인수 홈구장으로
맨체스터 ‘축구+예술’ 관광도시 도약

수천개 주택 더 짓기 위한 건설 활기
교육·문화 인프라 확충 ‘일자리 창출’

[런던(영국)=함영훈 기자] ‘What we have begun will not stop now’(우리가 시작했던 것은 지금도 멈추지 않는다. 앞으로도 주욱~)

지금은 프리미어리그(EPL) 웨스트햄의 홈구장으로 매각된 런던 올림픽 주경기장에 가면, 올림픽 파크를 건설할 때의 참뜻을 계속 잇겠다는 영국의 의지가 동판으로 새겨져 있다.

지난 1월말 찾은 런던 스트랏포드 지역 퀸 엘리자베스 올림픽 파크(Queen Elizabeth Olympic Park)의 ‘런던 아쿠아 센터’에선 부모나 선생님과 함께 온 어린이들이 수영배우기에 한창이었다.

옛 것과 현대의 조화와 균형이 돋보이는 런던시내. 영국은 2012년 런던올림픽을 계기로 서쪽에 비해 낙후된 동쪽지역을 발전시켜 보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바벨탑 150m 미끄럼 즐기기=한국의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DDP)를 설계했던 고(故) 아니쉬 카포르가 디자인한 높이 115m의 올림픽 상징탑, 아르셀로 미탈 오비트(Orbit)에서는 어른이든 어린이든 나선형으로 150m 가량 내려오는 미끄럼틀을 즐기고 있었다. 바벨탑 신화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었다는 이 탑은 유럽의 명물이 되어 평일임에도 다양한 나라 출신의 관광객들이 찾아들었다.

영국민 대부분은 곧 평창동계올림픽이 열린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영국은 이번 평창 대회에 선수만 59명, 역대 최대규모로 참가한다. 지난해 5월 관광공사가 주관한 런던 코리언 페스티벌에선 예상외로 많은 한류팬이 몰려 한-영 우정이 깊어지고 있음을 느끼게 했다. 영국 대표팀은 평창올림픽에 나서기전에 한국 문화를 가르쳤다고 한다.

설계단계 부터 올림픽 유산(Legacy)을 어떻게 활용할지 구상했으며, 첫 삽을 뜨기도 전에 유산을 관리하고 이 일대의 도시화를 꾀하는 공익법인 유산컴퍼니(OPLC) 부터 만들었다. 런던올림픽이 끝난지 5년6개월이나 지났지만 수천개 주택을 더 짓기 위한 건설현장이 펼쳐져 있고, 4만개 일자리 창출을 위한 교육, 문화 분야 인프라 확충 작업은 현재진행중이다.

민간 주도, 특전 제시로 사후 투자 지속=벤 플래쳐 OPLC 이사는 “개최지 선정 때부터 런던 동부 부흥이라는 목표에 따라, 더 많은 사람이 찾는 ’올림픽 도시‘로의 면모를 갖추기 위한 노력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면서 “올림픽 전은 물론 대회 후 투자도 상당부분 이뤄졌는데, 대부분 민간 참여형”이라고 전했다.

오비트를 짓는데 철강기업 아르셀로 미탈이 수백억원을 댔고, 주경기장 외곽길 건설비를 화학기업 다우가 후원하는 등 올림픽 전 민간을 끌여들인데 이어, 올림픽 후 유산의 활용과 부지 개발에도 민간투자를 이끌어냈다.

‘귀사에 유리하게 부지를 내어줄테니 OPLC에 얼마를 내라’는 조건을 제시한 뒤 받아낸 공적 수익을 다시 새로운 방면에 투입함으로써 선순환구조를 만들었다고 한다.

올림픽이 끝난뒤 이 지역에는 론즈강 주변 청소년 놀이터, 습지산책로, 레크리에이션 광장, 찬도스 도로변 정원, 포레스트 레인공원, 이스트런던 대학, 뉴험 대학 등이 들어섰다. 조만간 런던대 패션칼리지와 고층 아파트가 완공된다. 대학은 인재를 키워 지역을 발전시키는 ‘라이프 체인저(Life Changer)’ 역할을 한다고 벤 이사는 설명했다.

수영경기장은 시민들의 아쿠아센터로, 주경기장은 웨스트햄 구단의 홈구장으로 변신했다. 웨스트햄은 올림픽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애니버서리 축제와 공연, 공익성 행사를 이어간다. 주경기장에만 지금도 1000여명의 정규직이 일하고 한 주에 수십만명이 스포츠투어리즘-경기관람으로 다녀간다.

웨스트필드 상가, 관광의 유입구=올림픽 파크 입구 부지는 금융감독원과 교통부에 임대했고, 론즈강 둔치는 포드사 자동차 기술시험소로 빌려줬다. 선수촌 아파트는 대회 전에 이미 분양 및 임대관리업체로 ‘겟리빙런던’를 선정했다. 3600채 중 절반은 대여, 레지던스 등 수익용으로, 나머지는 사회적배려 가정에 특별분양했다. 수익은 투자자들이 유리하다고 느낄 조건을 만드는 ‘마중물’로 썼다.

지하철과 종합 라이프스타일 상가 등 생활인프라에도 신경을 썼다. 강릉은 이런 면모가 이미 있고, 평창의 경우 영속성 있는 올림픽 시티가 되기 위해 필수적으로 갖출 요소이다.

특히 스트랏포드 전철역을 중심으로 들어선 유럽 최대 복합 라이프스타일 공간 웨스트필드(17만㎡)는 민간자본들이 너도나도 이 소도시 투자에 관심을 갖게 된 핵심 고리로 작용했다. 쇼핑, 문화, 음식, 레크리에이션, 웰빙 등 모든 것이 가능한 곳으로 하남 스타필드와 비슷한 크기이다. 파크-선수촌-웨스트필드는 걸어다닐 거리에 밀집돼 있어 올림픽 유산활용이 쉽다.

웨스트햄도, 런던 웸블리 공설운동장을 임시 홈구장으로 쓰고 있는 토트넘도 스포츠를 매개로 여행객을 적극 끌어들인다. 레전드 스타의 흔적을 되새기고 스타디움에 서서 램퍼드, 손흥민 경기의 감동을 느껴보는 것이다. 어웨이팀의 드레스룸 의자를 낮게 하고 작전지시용 보드를 작게 만든 ‘치졸함’이 귀엽다.

맨체스터 스포츠투어리즘=런던 동부가 올림픽을 계기로 경제와 관광의 부흥을 도모하고 있다면, 영국 중서부 산업도시 맨체스터는 축구라는 스포츠에다 문화 예술을 더해 관광도시로 거듭나려 한다. 인구 50만명 수준이고, 산업과 축구의 명성에 관광지 면모를 더하려 한다는 점에서 포항, 도르트문트와 닮았다.

18세기 산업혁명의 시발점, 맨체스터는 랑카스터주 면화를 리버풀 항에서부터 운하 또는 철도로 들여와 직물을 만드는 섬유, 기계 공업의 중심지이고 영국 축구의 메카이다. 맨체스터에 가면 지금도 빅토리아 시대 붉은 벽돌집이 즐비해 18~19세기 시간여행을 하는 느낌이다. 중세의 흔적은 드물지만, 뒷골목을 거닐고, 지금은 과학산업 박물관이 된 면화 종착역을 구경하다보면 아련한 노스탈지어에 젖는다.

올드 트래포드에는 평일인에도 맨유를 빛낸 원로스타 3인방 동상, 퍼거슨 박물관, 매트 버스비 전 감독ㆍ베컴ㆍ박지성ㆍ루니ㆍ호날두의 흔적, 맨유구장 등을 돌아보는 관광상품 참가자들이 장사진을 이뤘다. 한국손님이 많아서일까. 박물관에서 박지성은 ‘레전드’ 15명 중 여섯번째로 크게 그려졌다.

맨체스터는 여기에 과학산업 박물관, 화이트워스 미술관 등 문화예술을 더했다. 화이트워스는 인도 작품이 주류를 이루고 일부 영국 작품도 섞여 전시된다 식민지배가 인간을 불완전하게 만든다는 점을 통렬히 비판한 목잘린 조각, 옷만 있는 조각 작품이 앞마당에 놓여있다. 라틴어 ‘만’은 가슴이고 ‘체스터’는 도시를 뜻한다. 뜨거운 가슴을 가진 도시여서 그럴까. 웃음이 부족하고 룰과 권위를 중시하는 런던과는 달리 순수함이 엿보인다. 맨체스터 다운, 포용력과 동정,반성의 마음이다.

영국과 미국, 호주에서 ‘영어 말하기가 능숙치 않다’고 하면 난처한 표정을 짓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화이트워스 미술관의 사만다 래키 수석 큐레이터도, 맨유 구장의 잭슨 리치 이사도 “저도 한국말 못해 유감이예요. 조근조근 설명할께요. 천천히 말해주세요”라고 응대한 것은 동양인에겐 소소한 감동이었다.

런던과 평창은 다르다고? No!=인구 4만명의 산촌 평창을 대도시 런던, 맨체스터와 비교하는 것은 무리라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런던 동부 스트랏포드는 철도 시설물 제조창, 폐차 적재장 등으로 활용되며 200년동안 산업찌꺼기로 오염돼 버려진 곳이었다. 올림픽을 위해 흙과 돌조차 씻어내야 했다.

차라리 평창은 양반이다. 어느 정도 청정 소도시가 구축돼 있고, 기업도시 원주, 관광도시 속초ㆍ양양ㆍ동해ㆍ삼척ㆍ강릉ㆍ영월ㆍ홍천, 카지노의 정선과 1시간 이내 거리에 있기에 도시 생태계 조성이 더 쉽다.

사정을 알기에 유산 활용 및 개발이 더딘 것을 영국민들은 이해한다. 오히려 200년 가까이 버려진 이 땅이 이 나마 변모하고 있음에 놀란다. 스트랏포드가 주는 교훈은 ▷올림픽 유산을 적극 활용하고 참여하는 국민 ▷공공성으로 보람을 느끼면서도 돈 버는 기업 ▷쉼표있는 삶을 제공하려는 정부 등 3자가 상생하는, 선순환 투자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유산 활용과 투자 유인을 위해 지혜를 짜내는 일은 올림픽 중에도 끈질기게 진행돼야 한다고 런던사람들은 조언한다.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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