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최소 비용만 생각하다가 결재를 못 받은 대리의 사연을 썼더니 어떤 분이 ‘결재를 잘 받으려면 상사의 기분이 좋을 때 들어가는 것이 장땡입니다’라는 글을 보내 주셨다. 이분이 나름대로 직장 생활 한 가락 하는 것 같은데, 말은 맞는 말이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아직 중수(中手)에 머물러 있다. 중수들의 문제는 하수와 만나면 마구 칼을 휘둘러서 이길 수 있지만 고수를 만나면 한 방에 나가떨어진다는 것이다. 고수가 되려면 기존 검법을 자기 걸로 소화해야 된다.
날씨가 쾌청할 때 즉, 상사의 기분이 좋을 때 결재 들어가는 것을 소위 ‘기상결재학’이라고 하는데 이걸 금과옥조로만 여기면 결코 고수가 될 수 없다. 가만히 생각해보라!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직장생활은 날마다 스트레스의 연속인데 상사의 쾌청한 날씨를 만나기가 그리 쉽겠는가? 결국 요리조리 상사의 눈치를 보느라 시간을 보내게 되고 그러다 타이밍을 놓칠 수도 있다. 고수라면 모름지기 역발상을 해야 된다. 필자는 현역일 때, 회장이 화가 엄청 나 있을 때 일부러 결재를 들어갔다. 그러면 처음에는 오너가 ‘뭐야!’라며 날카롭게 소리 지르지만 ‘회장님 아무리 화나셔도 이건 오늘 꼭 결재해야 하는 중요 안건입니다’ 이러면 ‘뭔데? 어디 봐요!’ 하면서 짜증 가득한 인상을 쓰지만 손은 휙 쉽게 사인을 해준다. 왜 그럴까? 그 엄중한 타이밍에 결재를 들어오는 거 보면 꼭 사인해줘야 되는 사항인 것 같고, 남들은 두려워서 다 피하는데 욕먹어 가면서까지 결재 받으려는 그 충정이 기특하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오면 비서들이 ‘우와!’ 하며 ‘결재의 귀신’이라고 놀라워 하지만 사실 용기와 충성심만 있다면 평소보다 더 쉽게 결재를 받아 낼 수 있는 타이밍이다.
매일 기안 결재를 받아야 하는 직장인들이여!! 기상결재학을 버려라! 하수는 무조건 들어가고, 중수는 날씨를 보며 들어가지만 고수는 천둥번개에도 불구하고 들어간다. 그러면 그 궂은 날씨에 벼락을 맞을 것 같지만 의외로 쉽게 결재가 난다. 왜 그럴까? 고수는 고수를 알아보기 때문이다. 다만 주의 사항 한 가지 - 정말 중요한 기안을 가지고 들어가야 된다!
김용전 (작가 겸 커리어 컨설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