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년 넘게 출연하면서 “ ‘그알’의 여신”이라는 수식어까지 얻은 그녀. 그러나 그녀는 정작 그 수식어를 반기지 않는다.
“나는 여신이 아니다. 그냥 아줌마다. 시장에서 볼 법한 민낯의 아줌마. 부르려면 차라리 ‘그알’의 아줌마라고 불러달라”며 소탈한 웃음을 보였다.
범죄심리학 도서가 빼곡히 꽂혀 있는 책장. 인터뷰가 진행된 그녀의 교수실은 그 어느 곳보다 익숙했다. 그녀가 출연할 때마다 나오던 배경이었다. 책장 위엔 갈색 서류 봉투가 겹겹이 쌓여 있었고 반대편 책장에는 90년대에 볼 법한 비디오와 CD가 빼곡히 진열돼 있었다. 모두 ‘그알’ 자료였다.
“갈색 서류 봉투 모두 ‘그알’에서 다룬 사건 자료다. 지금이야 이메일로 사건 자료나 녹취록을 쉽게 주고받지만 예전엔 모두 우편으로 받았다. 사건 자료를 종이로 받고 녹취 파일도 내가 일일히 들으며 다 풀어야 했다. 그야말로 ‘노가다’였다. 이 자료는 여전히 내게 소중한 연구 자료다.”
‘그알’의 출연은 우연에 불과했다. 그 어느 때보다 용기가 필요한 시점이기도 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연구자로서의 삶이다. 사회가 안전해질 수 있도록 조금이나마 기여하는 것이 연구의 이유이자 삶의 목표다. 이상섭 기자/babtong@heraldcorp.com |
“2000년대 초반 당시 ‘그알’은 결과가 뒤집히는 재심사건이나 사회 문제를 제기하는 사건을 많이 다루곤 했다. 그러나 사회적 분위기상 전문가들이 사회 문제를 제기하는 것을 꺼려했다. 어쩌다 보니 출연 기회가 나에게까지 넘어왔다.”
‘그알’의 출연으로 유명세를 탔지만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따로 있었다. ‘그알’을 통해 누군가의 인생사를 추적할 수 있었고 누군가의 진술이 변화하는 과정을 살펴볼 수 있었다. 그녀에겐 소중한 공부였다.
“수많은 사건을 다뤘지만 가출청소년 5명이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수원 노숙소녀 사망 사건’은 잊을 수 없다. 억울한 피의자는 풀려났지만 안타깝게도 진범은 잡지 못했다. 그래도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진실을 찾아낸 것 자체가 감동적이었다. 수사기관이 밝히지 못한 내용을 시민들이 알아낸 사건이었다.”
▶여자라서, 非경찰이어서 불가능하다?=애초 범죄심리학자가 되리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고등학교 때 읽은 소설의 주인공을 따라 심리학과를 선택했을 뿐이었다. 남편 학업 때문에 가게 된 미국에서도 그녀는 심리측정을 공부했다.
“원래 관심사는 정신분열 연구였다. 정신분열의 경우 뇌 기능이 전반적으로 나빠지는데, 지능은 멀쩡하되 정서만 망가지는 경우가 없는지 연구하고 싶었다.”
미국에서 박사 과정을 마치고 경기대 교양학부 교수로 일하기 시작하면서 전환점을 맞았다. 학교 측이 재소자 분류심사 기준을 마련하는 정부 용역과제를 맡게 됐는데 그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3000여명의 재소자의 데이터를 받아 범죄 종류와 경중에 따라 분류해야 했다. 재소자를 직접 만나 특성 별로 분류하고 싶었지만 쉽지 않았다.
“재소자가 어떤 생각이나 특성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야 연구가 된다. 그러나 아무도 만날 수 없었다. 내가 공무원이나 법조인도 아닌 민간인이라는 이유였다. 여자라는 점도 불리하게 작용한 듯 했다. 아무리 부탁해도 거절당했다. 그때부터 이를 갈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조건을 내가 만들겠다고. 방송 활동도 그 일환이었다.”
다른 연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성범죄 연구는 척박하기 짝이 없었다. 당시 사회는 성범죄에 관대했다. 강간을 여러 차례 저질러도 최대 징역 3년에 불과했다.
“성범죄자 중에 전과 13범이 있었는데 7범은 성범죄였다. 강간을 다시 저질렀는데 징역 2년 6월을 받았더라. 누범인데 동종전과에 대한 가중 처벌이 없는 것이다. 여성으로서 공감이 전혀 가지 않았다. 성범죄 정책 연구 차원에서 이 피의자를 계속 만나게 해달라고 정부 측에 요청했지만 계속 거절당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 측으로부터 곧 신설될 범죄심리학과를 맡아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피의자를 한번도 만난 적 없는 ‘여자 민간인’ 신분을 극복해야 했다. 학과를 맡기에 앞서 미국 연수를 보내줄 것을 부탁했다. 형사정책 전문가가 되어야 했다. 범죄심리학에 본격적으로 접어든 계기였다.
▶여자여서, 아줌마여서 가능했다=미국 텍사스주립대학교 형사사법대학의 교환교수로 근무했던 텍사스 주는 사형 집행률이 가장 높은 지역이었다. 매주 사형집행대상자의 범죄 사실이 사진과 함께 온라인에 공개됐다.
“수업시간에 이 같은 공개는 인권 침해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교수가 한참을 쳐다보더니, ‘시민이 내는 세금으로 형사 정책 시스템이 운영되니 어떤 형사 정책을 어떻게 운영하는지 설명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뭔가 머리를 한대 ‘꽝’ 맞은 기분이었다. 예전부터 납세는 우리의 의무라고 배웠지 권리라고 배운 적은 없었다. 무력감이 들었다. 안전을 도모한답시고 열심히 정부 정책을 도왔는데 피의자를 만나기는커녕 형사정책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지도 못했다.”
범죄자를 제대로 알아야만 형사정책을 잘 운영할 수 있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귀국한지 얼마 되지 않아 경찰청에서 요청이 왔다. 남편을 살해ㆍ암매장한 여성을 만나달란 부탁이었다. 생애 첫 피의자 면담이었다. 조서엔 ‘부부불화 도중 앙심을 품고 살해”라는 정보뿐이었다.
“피의자가 울면서 털어놨다. 수십 년간 남편의 폭행을 견디다 못해 저지른 범행이었다. 남편이 딸까지 때리니 아내가 본능적으로 위협을 느낀 것이다. 인간적으로 공감이 갔다. 그 어떤 범행동기도 간단할 수 없다. 앙심은 법률적 동기다. 앙심의 내용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피의자의 입을 열게 한 것은 다름 아닌 ‘아줌마’라는 신분이었다.
“아줌마라는 신분은 매우 유리하게 작용했다. 화장을 전혀 하지 않는, 시장에서 볼 법한 흔한 사람이니까. 그런 요소 덕분에 피의자들이 나에게 경계심을 느끼지 않는 것 같다.”
연쇄살인범 유영철 사건 등 연쇄살인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범죄자를 보는 사회적 시각이 달라졌다. 심리학적 특성 등 다양한 범죄유발요인이 고려되면서 범죄심리학자의 역할도 커졌다. 법원의 전문심리위원과 수사기관의 전문수사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면서 피의자를 만날 기회도 많아졌다. 피의자 면담은 소중한 실무 경험의 기회였다. 그 순간을 혼자 누리고 싶지 않았다. 교도소를 방문할 때마다 제자들을 데리고 다니기 시작했다.
“전국 교도소 인근의 낙지볶음 식당과 육개장 집은 모두 꿰고 있다. 교도소에서 피의자 면담이 끝나면 제자들과 매운 음식을 먹으며 스트레스를 푼다. 면담 내내 지속된 긴장을 푸는 것이다. 학생들과 식사하며 피의자에 대한 토론도 잊지 않는다. 나처럼 실무 경험의 기회가 없었던 전철을 밟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다.”
▶안전 사회를 도모하는 연구자=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그녀는 조용한 연구자에 불과했다. 사건에 대한 인터뷰에만 응했을 뿐 개인 목소리를 특별히 드러내진 않았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달라졌다. 이젠 사건 관련 인터뷰는 물론, 개인적인 이야기를 드러내야 하는 예능 프로그램도 가리지 않는다.
“안전을 책임져야 할 정부가 우리가 낸 세금으로 딴짓하는 걸 보고선 배신감을 들었다. 내가 잘 살고 있는지 회의감이 들었다. 대중 앞에서 내 목소리를 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납세가 의무가 아닌 권리임을, 길바닥이 얼마나 위험한지, 범죄자가 사회에 돌아오면 어떤 위험이 있는지 누군가는 이야기 해야 한다. 사람들은 범죄 사건을 별개로 알 뿐, 다 맞물려 돌아가는 정글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은 일종의 직무 유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방송 활동이 잦아지면서 어느새 공인 아닌 공인이 된 그녀. 아무리 바빠도 언론 인터뷰는 거절하지 않는다. 출연료 또한 받은 적이 없다.
“내가 인터뷰를 거절할만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전문지식을 보태 달라는 것인데, 조금이라도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데 도움이 된다면 기꺼이 할 뿐이다.”
그러나 그녀는 “ ‘그알’의 여신 혹은 아줌마”로 불리기 전에 그저 평범한 연구자로 남길 원한다. “열심히 연구하는 연구자로 기억되고 싶다. 내 연구 성과가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데 활용된다면 그것만큼 행복한 일은 없을 것이다. 누군가는 해야 한다. 아무도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면 여전히 성범죄 처벌은 징역 3년에 그쳤을 것이다. 누군가를 도와주는 것이 내 삶을 가치있게 만든다고 믿는다.”
이현정 기자/ren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