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17일 국정현안점검 조정회의를 열어 ‘중대 산업재해 예방대책’을 의결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해 원청과 발주자의 책임을 강화하고 수은 제련 등 유해ㆍ위험성이 높은 작업은 도급을 전면 금지하며 음식배달원 등 특수형태근로자나 에어컨을 비롯한 가전제품 수리 기사 등 영세사업자도 산재보호 대상에 포함하고 신체적 건강뿐 아니라 정신적 건강까지 보호범위를 넓혀 콜센터 직원 등 감정노동자를 직무 스트레스에서 보호하기로 했다. 하나같이 옳고 꼭 필요한 내용들이다.
정부는 산업안전정책의 패러다임을 전환해 만들어낸 산업재해의 획기적인 감소대책이라고 자화자찬하지만 오히려 이런 조치를 왜 이제야 실시하는지 자책할 일이다.
우리나라는 그야말로 산재 사망 왕국에 은폐 공화국이다. 산업현장의 원-하청 구조에서 나타나는 부조리는 상상을 초월한다. 산재율은 선진국의 1/4밖에 안되는데 사망자는 훨씬 많은 통계가 이를 말해준다. 오래전부터 알면서도 바로잡지 못한 일이었다.
지난 2016년 기준으로 산재 사망자 수는 969명으로 1000명에 육박한다. 전년보다 14명이나 증가한 수치로 좀처럼 줄지 않는다. 사망사고만인율(근로자 1만명당 사망자 수 비율)은 0.58로 미국(0.36)·독일(0.16)등 주요국보다 한참 높다. 게다가 사망자 중에서 하청 소속 비율이 높고 그마져도 증가추세다. 사망한 근로자 가운데 하청업체 소속 비율은 지난 2014년 39.9%에서 2015년 42.3%, 2016년 42.5%까지 매년 증가했다.
이번 대책의 촉발제가 된 조선ㆍ건설업의 통계를 보면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최근 3년간 사망자 중 하청업체 소속 비율을 보면 건설이 98.1%, 300인 이상 조선업은 88.0%다. 산재 사고로 숨진 10명 중 9명은 하청업체 소속이란 얘기다. 그야말로 위험작업의 외주화이자 하청업체로의 사망자 떠밀기다. 게다가 웬만한 사고는 산재보험료 인상이 무서워 산재처리도 하지 않는다. 못한다고 보는 편이 옳다. 하청업체 산재 처리율이 10%에 불과한 이유다. 하청업체 근로자들은 높은 위험작업을 하면서도 낮은 임금에 허덕이고 있다. 그 반대여도 한탄할 일인데 이같은 이중고가 없다.
정부는 지난 4월 산업재해 은폐를 근절하고 사업주의 산재보고 의무를 강화하는 방향의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을 만들었다. 이번엔 원청ㆍ발주자 책임과 처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관련 법을 손 봐 내년 하반기부터 시행키로 했다. 국회가 괜한 정치싸움으로 입법을 지연시키지않길 바랄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