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 재정건전성 확보에 앞장서야 할 정부가 도리어 이를 해치는 행태를 보여 빈축을 사고 있다. 지난 2007년부터 정부는 국민건강보험법과 국민건강증진법에 따라 매년 건강보험료 예상수입액의 20% 상당을 건강보험에 지원하게 돼 있다. 그런데 작년 말까지 10년간 건강보험에 덜 준 지원금이 무려 15조원 가까이 된다는 것이다.
그 방법도 매우 치졸하다. 보험료 예상 수입을 고의로 적게 산정하는 방식을 썼다. 보험료 인상률, 가입자 수와 소득의 증가율 등을 모두 반영해 보험료 수입을 잡아야 하는데 보험료 인상률만 가지고 산정했다고 한다. 정상적으로 계산했다면 그간 정부는 건강보험에 총 68조6372억원을 줬어야 맞다. 그런데 실제로는 준 건 53조9003억원에 그쳤다. 그 차이익 무려 14조7369억원이나 된다. 근로자 임금을 한 푼이라도 덜 주려고 작업 시간을 줄여 계산하는 악덕 고용주와 다를 게 없다.
정부의 이같은 행태가 더 비난 받는 이유는 따로 있다. 직장 가입자들은 가혹할 정도로 건보료 징수를 강요받는데 정작 정부는 건보 지원 의무를 회피했기 때문이다. 모든 직장인 가입자는 매년 4월 ‘건보료 정산’을 하게 된다. 이를 통해 미처 거둬들이지 못한 보험료를 징수하는 것이다. 올해만 해도 직장인 844만명이 한 사람당 평균 13만3227원의 ‘건보료 폭탄’을 맞았다. 반면 정부는 여태 단 한 차례도 정산을 한 적이 없다. 국민들이 뿔이 날 만하다.
건강보험이 도입된지 올해로 꼭 40년이 된다. 그 동안 건강보험이 국민 건강 증진에 기여한 것은 굳이 설명이 필요 없다. 의료접근성이 높아지고 양질의 의료서비스 제공으로 우리 국민의 건강 수준은 OECD 국가평균을 넘어선지 이미 오래다. 한국의 건강보험 제도는 세계 여러 나라가 롤 모델로 삼을 정도가 됐다.
이런 좋은 제도를 지속적으로 유지 발전 시켜려면 무엇보다 중요한 게 재정의 안정이다. 현재 건강보험은 20조원 가량의 누적흑자를 기록하고 있지만 결코 안심할 수준이 못된다. 재정경제부 추계에 의하면 오는 2023년이면 바닥날 것으로 보고 있다. 저출산과 고령화로 내는 보험료는 줄고, 지출 의료비는 늘어나니 국민이면 누구나 건보재정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사정을 잘 아는 정부가 어떻게 건강보험 지원금을 덜 줄 생각을 했는지 한심하고 부끄럽다. 두 말 할 것 없이 덜 준 지원금은 다른 예산을 줄이더라도 빠른 시일내 정산해야 한다. 아울러 한시적으로 적용되고 있는 건강보험 국고지원은 항구적 지원이 되도록 아예 법제화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