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공부문 일자리·복지 확대로 성장정책 뒷받침
문재인 정부의 인수위원회 역할을 하는 국정기획자문위원회의 경제부처 업무보고가 26일로 사실상 마무리되면서 크게 바뀐 경제정책 패러다임의 실체가 드러나고 있다.
그동안 보수ㆍ진보 진영이 치열한 논란을 벌였던 성장과 분배의 이분법적 구도를 넘어 성장의 질로 무게중심이 이동한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기존의 진보성향 정부가 분배를 강조했던 것과 달리 문재인 정부는 성장에 방점을 두면서 성장의 질을 담보하는 핵심지표이자 정책과제로 고용과 복지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분석된다.
김진표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위원장이 26일 오전 통의동 국정기획위에서 열린 공정거래위원회 업무보고에 참석하고 있다. 국정기획위는 이날 공정위 등 7개 부처 업무보고를 끝으로 사흘 동안 진행된 업무보고를 마무리했다. [연합뉴스] |
국정기획위원회에 첫번째 기획재정부 업무보고에서는 일자리 확충을 위한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이 최대 이슈로 부상했다. 김진표 위원장은 기재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정부가 ‘모범 고용주’로서 공공부문에서부터 일자리 선순환의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당장 추경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중앙정부 뿐만 아니라 사회서비스 부문 등에서 지방정부를 통한 일자리 창출의 여지가 많다”며 충분한 규모의 추경안을 신속히 편성해 6월 임시국회에 제출할 수 있도록 준비할 것을 요청했다.
이에 기재부는 10조원 규모의 일자리 추경안 편성에 본격 착수했다. 지난해 세계잉여금과 올 초과세수분을 활용해 재정에 추가적인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연내 1만2000개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과 중소기업의 청년고용 확대 등을 위한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야당 시절에만 해도 추경에 비판적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 정권을 잡은 후 기재부의 첫 실질적 업무가 추경 편성이 된 셈이다.
새정부는 이처럼 성장에 방점을 두면서도 이명박 정부의 ‘7ㆍ4ㆍ7(7% 경제성장률ㆍ국민소득 4만달러ㆍ세계 7대 강국)’이나 박근혜 정부의 ‘4ㆍ7ㆍ4(잠재성장률 4%ㆍ고용률 70%ㆍ국민소득 4만달러)’와 같은 양적인 목표를 제시하지 않았다. 지난 정부에서 부동산시장 부양 등을 통한 양적 성장에 치중해 오히려 양극화 심화와 가계부채 증가 등 부작용만 키웠다는 판단 때문이다.
특히 성장률을 높이면 그 효과가 사회전반으로 확산돼 고용이나 복지가 개선될 것이라는 이른바 ‘낙수효과’가 사라짐에 따라, 새정부는 고용과 복지의 구체적인 목표를 제시하고 이를 달성하는 데 정책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일자리 창출과 비정규직 축소 등 ‘노동의 안정화’는 거의 모든 부처 업무보고의 핵심 이슈로 자리를 잡았고, 각 부처도 이를 위한 방안을 발굴하는 데 집중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청와대 비서동의 집무실에 ‘일자리 상황판’을 설치하고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24일 상황판을 직접 조작하면서 “일자리 정책이 최고의 성장전략이자 양극화 해소 정책이며, 복지정책이라는 점을 명심하고 각 부처, 지자체, 민간 부문과 협력해 좋은 일자리 창출에 최선을 다해달라”고 당부했다. 일자리가 모든 문제를 해결할 열쇠라는 얘기다.
이러한 패러다임의 변화는 기존의 보수와 진보, 성장과 분배의 이분법적 대립구도에서 벗어나 새정부가 실용주의 노선을 걸을 것임을 시사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경제 컨트롤타워 인사에서 청와대와 공정거래위원장 등에 학계ㆍ시민단체 출신의 개혁 전문가들을 배치하면서도 경제부총리엔 정통 경제관료를, 국민경제자문회의엔 보수성향 학자를 배치한 것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국정기획위의 새정부 청사진은 부처별 업무보고에 이어 다음주부터 분과별 토론과 주제별 토론 등을 거쳐 다음달말 확정ㆍ발표될 예정이다. 경제활력에서 각종 개혁까지 난마처럼 얽혀 있는 과제들에 어떤 해법을 내놓고 국민들에게 희망을 줄지 주목된다.
이해준 기자/hj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