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 채무조정안 수용여부를 결정할 사채권자 투표가 열흘 앞으로 다가왔지만 향배를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최대 사채권자인 국민연금이 아직 결정을 미루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지난달 31일에 이어 지난 5일 투자위원회에서도 채무조정안 수용 여부를 결론짓지 못했다.
다음 주말까지 최종 결론을 내리겠다는 국민연금에 대해 일부에선 의사결정 지연이라며 비난도 하지만 이는 심사숙고로 볼 일이다. 오히려 기금을 정당하고 올바르게 운영해야할 당연한 의무로 봐야한다. 구조조정을 위한 채무조정안는 모든 채권자에게 불만일 수 밖에 없다. 누가 얼마나 손해를 보고 책임질 것이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대우조선 회사채 전체 발행잔액 1조3500억원의 30% 가량인 3887억원을 보유한 최대 사채권자다. 채무조정안의 통과 여부가 거의 국민연금의 결정에 달려있는 셈이다. 하지만 어느 쪽을 선택해도 부담이 따른다. 거부하면 대우조선을 법정관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P플랜으로 떠 민 당사자가 되어버리고 동의해도 국민 노후자금을 부실기업에 투자해 손실을 봤다는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게다가 국민연금으로선 이미 결정된 조건을 네고할 수도 없다. 보유한 회사채 가운데 50%를 출자전환하고 나머지 절반은 만기를 연장하는데 동의할지 여부만을 강요당하고 있다. 나이스신용평가는 국민연금이 채무조정안을 받아들이면 2682억원, 거부하면 3887억원의 평가손실을 예상했다. 물론 대우조선이 정상화되고 주가가 회복되면 달라질 수 있지만 판단의 근거가 될만한 각종 자료는 턱없이 부족하다. 경제적 정치적 부담이 이처럼 대단한 사안에 대해 빠른 판단을 종용할 수는 없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과 최종구 수출입은행 회장, 정성립 대우조선 사장은 10일 국민연금 등 32곳 기관 투자자를 상대로 설명회를 열기로 했다. 온 힘을 다해 관련 기관들과 이슈에 대해 설득하고 협의하 자리가 돼야 마땅하다.
이번 채무조정안에는 보이지않는 손이 개입되지 않았다. 객관적이고 가치중립적으로 사안을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다는 얘기다. 임종룡 금융위원장도 “국민연금의 의사표시는 선량한 관리자로서의 의무일 뿐 동의를 할지 안 할지 문제는 자율적으로 판단할 사안”이라고 말하고 있다. 국민연금은 현재 처한 어려운 상황을 오히려 기금운영의 독립성을 확보하는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