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의 매는, 단순한 동물의 의미가 아니다(사진=게티이지미) |
여객기 내부 사진 하나가 화제가 된 이유는 이 사진에 등장하는 승객(?)들 때문입니다. 사진 속 비행기 좌석을 차지한 이들은 바로 수십 마리의 매(HAWK)였죠.
매들은 목에 끈을 하고, 눈가리개를 쓴 채, 각자의 좌석에서 자리를 지켰습니다. 일견 황당한 이 사건에 중심에는 사우디아라비아의 한 왕자가 있었습니다. 수십 마리의 매들은 바로 이 왕자가 기르는 사냥용 매였죠.
해외매체 비지니스인사이더에 따르면 이름이 공개되지 않은 이 왕자는 지난달 31일 다른 국가의 사막 지대에서 진행될 사냥 훈련을 위해 자신의 매들과 함께 비행기를 탔다고 합니다. 왕자는 매들을 위해 이코노미석 80석의 요금을 지불했다고 하는데요.
이 소식을 접한 네티즌들은 “과연 이처럼 매를 비행기에 태우는 것이 가능한가?대체 수백, 수천만 원의 돈을 쏟아 부어서 매를 비행기에 모시고 가는 이유가 뭔가”라는 궁금증을 쏟아냈습니다.
사진=카타르항공 홈페이지 |
이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우선 중동 지역의 항공사들의 규정을 찾아봤습니다. 대표적인 중동 항공사인 카타르 항공의 홈페이지에서 동물의 기내 반입에 관한 규정을 확인했는데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매는 당당하게 비행기를 탈 수 있다고 합니다. 그것도 화물칸이 아닌, 객실 내에 말이죠.
카타르 항공은 “매와 안내견의 경우 기내 반입이 가능하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다만 조건은 다소 까다롭습니다. 이코노미석에만 탑승이 가능하며 눈을 가려야 하고, 날아가지 못하도록 좌석에 고정시켜야만 탑승이 허용된다고 합니다.
이 매들은 사실, 불법 탑승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사진=비지니스 인사이더) |
다른 중동 항공사들의 경우도 매의 기내 탑승을 모두 허용하고 있었는데요. 매의 비행기 탑승이 워낙 보편적이다 보니 사우디, 카타르 등 일부 중동 국가에서는 ‘매 여권’이 따로 존재할 정도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내용을 확인하던 중 한 가지 의문점이 생겼습니다. 각 항공사마다 기내에 반입할 수 있는 매의 마릿수를 제한하고 있기 때문인데요. 카타르 항공의 경우는 승객 한 명당 한 마리, 기내 전체로는 최대 여섯 마리로 제한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중동 항공사들 역시 비슷한 상황입니다.
그렇다면 이 사진 속의 매들은 규정을 어긴 채 탑승했다는 결론이 나오는데요. 사진 속 해당 항공사가 어느 곳인지 특정이 되지 않아 규정 위반에 대한 정확한 판단은 잠시 미뤄둬야 할 것 같습니다.
자신이 키우는 매를 바라보는 중동의 부유층 (사진=게티이미지) |
자, 그렇다면 대체 중동 사람들은 왜 이렇게 매를 애지중지하는 것일까요? 사실 매라고 하면 우리나라의 전통 매사냥을 먼저 떠올리시는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매사냥은 중동 지역에도 매우 유서 깊은 전통입니다. 약 4000년 전부터 중동 지역의 왕들은 팔에 매를 올려놓아 권위를 드러냈고, 이때부터 매는 왕족, 귀족 등을 상징하는 존재가 됐다고 합니다. 일각에서는 과거 아라비아 유목민들이 사막에서 육류 확보를 하는데 매를 이용하면서 매가 중동의 상징이 됐다고도 주장합니다.
이러한 매에 대한 사랑은 수천 년의 세월을 지나 현재에도 이르고 있습니다. 매년 카타르와 두바이 등에서는 수백만 달러의 상금이 걸린 매 사냥 대회가 열리는데요. 품종이 좋은 매는 가격도 상상을 초월합니다. 지난해 사우디에서 진행된 경매에서는 매 한 마리가 150만 리얄(약 4억 6000만원)에 팔렸습니다. 평균적인 매들 역시 전문 거래 시장에서 수백~수천만 원에 거래되죠.
중동의 매 전문 병원 (사진=게티이미지) |
한편 이처럼 귀한 매를 위한 전문 병원까지 존재합니다. 정기 검진은 물론 내시경을 통한 정밀 수술도 이뤄지며, 24시간 응급 서비스 제도도 운영한다고 합니다.
정치적으로도 매는 중동의 다양한 국가에서 귀한 대접을 받고 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조(國鳥)이자, 아랍에미리트에서는 정부 문장과 지폐에 새겨져있기도 합니다. 그 외에도 대부분 중동 국가의 국기와 문장에서 매의 모습을 찾을 수 있죠.
특히 매는 중동의 부유층에게 특별한 대접을 받고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고대 왕족의 권위를 상징하기에, 전통과 권위를 유지하려는 부유층에게 상징적인 의미를 띄고 있죠. 이런 배경이 있다 보니 앞서 사진 속 사우디 왕자가 수십 마리의 매를 비행기에 태우는 것이 어쩌면 이상한 일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들에게 매는 단순한 애완동물이나 사냥도구 그 이상의 의미가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러한 중동 부호들의 매 사랑에 대한 비판도 있습니다. 명품과 슈퍼카 등과 함께 자신들의 부와 명예를 과시하는 수단으로 매를 악용한다는 지적이죠. 매들이 과시의 도구가 되다보니, 중동 각지에서는 매의 밀수 역시 극성을 부리고, 그 과정에서 매들이 죽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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