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감 확산속 ‘긴박한 움직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2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박영수 특별검사팀 사무실에 소환되면서 삼성그룹 내부는 긴장감속에 오전 내내 긴박하게 움직였다. 이 부회장에 대한 특검의 형사처벌 여부와 수위가 삼성그룹 전체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그룹은 지난 11일 특검이 이 부회장에게 ‘피의자’로 출석하라고 통보하자 당혹해하면서도 소환조사에 차분하게 대비했다.
이 부회장이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해 수사기관에 소환된 것은 이번이 두번째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11월 13일 검찰 특별수사본부에 출석해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받은 바 있다.
하지만 검찰 특수본과 이번 특검 수사는 큰 차이점을 가진다는 측면에서 삼성그룹은 바짝 긴장하고 있다. 검찰 특수본은 이 부회장 소환 당시 미르와 K스포츠 재단에 출연한 배경과 박근혜 대통령과의 면담과 재단 출연 연관성 등을 집중적으로 수사했다. 하지만 특검은 비선실세 최순실씨 모녀에 대한 삼성의 승마 지원에 초점을 맞춰 고강도 수사를 벌여왔다.
삼성은 지난 9일 그룹 2인자인 최지성 미래전략실장(부회장) 조사 이후, 이 부회장의 특검 소환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준비해왔다.
하지만 특검이 지난 11일 소환을 통보하면서 이 부회장을 ‘뇌물공여 피의자’로 지목하자 위기감에 휩싸였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전례에 비춰보면 특검의 조사 시간이 상당히 길어질 것 같다”며 “이 부회장이 구속되는 상황까지 치닫지 않을까 크게 우려된다”고 말했다.
삼성그룹 측 입장은 일관적이다.
삼성 측은 지난 2015년 7월 25일 박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독대에서 강한 압박을 받아 이 부회장이 어쩔수 없이 승마지원을 서둘렀다는 점을 근거로 자금 지원의 대가성이 없었다고 주장해왔다.
국민연금의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찬성 결정이 이뤄진 2015년 7월 10일 당시까지만하더라도 최 씨 모녀에게 지원된 자금이 전혀 없었고, 계열사 합병건 역시 최씨 모녀의 승마 지원과 무관하다는 게 삼성의 일관된 입장이다.
이날 특검에 출석한 이 부회장은 조사 과정에서 뇌물공여 혐의를 부인할 것으로 전해졌다. 있지도 않은 일을 시인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삼성은 이 부회장이 끝내 혐의를 인정하지 않을 경우 특검이 구속영장 청구 카드를 꺼내 들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이럴 경우 삼성그룹은 2014년 5월 이건희 회장이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이후 2년 8개월 만에 가장 큰 위기를 맞게 된다.
삼성 관계자는 ”이미 검찰과 특검 수사로 기업 활동에 큰 차질이 빚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사령탑의 유고 사태까지 벌어진다면 그 피해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클 것“이라고 말했다.
이건희 회장이 와병 중이고, 이 부회장까지 수감되는 사태가 벌어지면 삼성그룹은 일단은 전문 경영인 체제로 운영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글로벌 비즈니스 전쟁터에서 리스크를 감수하며 빠르게 결단을 내려야 하는 사안들을 놓치는 일이 나올 수 있고, 그런 일이 반복된다면 금세 외국 경쟁사들에 뒤처지게 될 것이라고 삼성은 걱정하고 있다.
특히 삼성의 신성장동력사업을 위한 사업재편이나 인수합병(M&A), 지주회사 전환작업은 크게 타격받을 수 밖에 없다. 사실상 삼성그룹의 의사결정이 올스톱하게 되는 셈이다.
권도경 기자/kong@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