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이 ‘약속의 1번지’로 떠오른건 아무래도 교보문고가 생기고부터라야 할 것 같다. 이전까지 젊음들은 대체로 종로에서 만났다. 그 중 종로서적은 청춘들이 애용하는 장소였다. 서점 앞과 1층은 늘 비집고 들어가기 힘들 정도로 북적였다. 그래서 약속 장소는 점점 층수가 올라갔다. 몇 층, 무슨 무슨 코너식이었다. 너무 번잡하다 보니 나중에는 옆 건물 모나미에서 약속을 잡는 일도 생겼다.
학생들에게 또 다른 인기 장소 중 하나는 종로서적 맞은 편에 위치했던 화신백화점이었다. 전형적인 근대 건축물의 모습을 지닌 화신백화점은 연인들에겐 데이트코스로도 유명했다던데, 학생들은 관심사가 좀 달랐다. 지하에 자리잡은 푸드코트, 엄밀하게 말하면 계단 참에 자리잡은 빵집이 인기 최고였다. 그 중 팥곰보빵은 하교길 한번씩 먹어줘야 하는 먹거리였다. 막 튀겨낸 달달하고 고소하며 바삭한 빵은 특히 여학생들의 인기를 독차지했다. 국내 첫 엘리베이터가 들어섰다는 백화점의 각 층은 대체로 썰렁했지만 그 빵집 만은 발뒤꿈치를 들고 손을 뻗어야 빵을 받을 수 있을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
화신백화점이 재개발되면서 헐리고 그 자리에 우주선 모양의 종로타워가 들어선건 1999년이다. 건물의 지하는 푸드코트와 밀레니얼 플라자 등 여러 상점들이 자리했지만 사정은 좋지 않았던 듯 싶다. 그곳에 대형서점 반디앤루니스가 2005년 들어서자 또 한번 주목을 받았다. 영풍문고와 대각선으로 마주 보며 책의 종로시대를 여는가 싶었다. 11년동안 영업을 해온 반디앤루니스가 지난 9월 갑작스레 문을 닫았다. 건물주가 바뀌면서다. 거리에 서점이 하나 사라지는 건 그냥 상점 하나가 문을 닫는 것과 달라 걱정스러워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런데 희소식이 전해졌다. 그 자리에 종로서적이 들어선다는 얘기다. 종로서적에 근무했던 이들이 투자해 종로서적을 오는 23일 문을 열기로 한 것이다. 종로서적은 교보문고와 영풍문고에 밀려 명맥을 유지해오다 전 국민이 월드컵에 빠져 있던 2002년 6월 조용히 문을 닫았다.
종로서적 부활의 목소리는 지난 4월 출판인에게서 나왔다. 김언호 한길사 대표가 한 세기동안 국민과 함께 해온 서점을 되살리겠다고 말했을 때, 다소 허황스런 소리로 들었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일은 자연스럽게 굴러갔다. 영풍문고에서 전무로 퇴직한 서분도 대표가 서점을 차리려고 검토하던 중 종로타워 건물주로부터 제안을 받았다. 단순한 서점이 아니라 상징적인 서점이었으면 좋겠다며, 종로서적을 제안한 것.
종로서적의 상표권도 사주가 해결하면서 급물살을 탔다. 종로구청도 적극 나섰다. 서점 평수도 당초보다 2배 넓어지고 서점 앞 공터를 지혜의 숲으로 꾸미는 작업도 진행된다. 1907년 ‘예수교서회’라는 기독교서점으로 시작한 종로서점의 부활은 추억 이상이다. 책의 거리, 종로의 부활을 알리는 신호다. 새 종로서적은 과거 종로서적의 뒷자리 전화번호를 그대로 쓰기로 했다. 국번이 없어져 새 국번을 받았지만 뒷자리 2331은 그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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