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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록·재현 그 자체가 예술적 가치
특정한 공간과 사람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고요하고 적막하게 잡아내는 독일의 사진작가 토마스 스트루스의 작품가는 웬만한 그림값을 훌쩍 뛰어넘는다. 얼마든지 복제가능한 사진이 왜 비싼지 고개가 갸웃거려질 법하다. 그러나 작가 특유의 깊이있는 시선과 밀도감 높은 작품은 사진이 단순히 기술적 처리의 결과물이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최초의 사진술로 불리는 엘리오그라피가 만들어진 지 190년이 흐른 지금, 사진술은 스마트폰 속으로 들어와 전자적으로 이미지를 만들어 일상을 기록하는 매체로 기술적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2세기에 걸친 사진술의 역사는 단순한 기술의 발달사에 그치지 않는다.

‘사진은 예술인가’(한양대출판부)는 사진의 급격한 발달을 가능케 한 것은 무엇인지, 왜 사진은 수없이 자신의 모습을 변형시켜 왔는지 탐색해나간 흥미로운 책이다.

저자는 우선 사진을 조형예술의 틀 안에 자리매김시킨다. 조형도구, 즉 캔버스라는 회화의 문법이나 돌, 나무, 끌과 정 등을 도구로 쓰는 조각이라는 조형언어와 마찬가지로 사진은 카메라, 광학렌즈 등의 조형도구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계장치를 사용한다는 측면에서 사진은 오랫동안 예술의 영역에 들어가지 못했다. 그렇다면 사진이라는 기계장치적 언어가 어떻게 예술적 표현으로 바뀌는 것일까.

저자는 이를 도구의 양면성에서 찾는다. 말하자면 모든 도구는 실용적 목적을 위해 생겨났지만 얼마든지 다른 목적을 추구할 수 있다. 사진의 기계적인 기록이 예술이 될 수 있는 것도 이런 존재론적 자기 변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책의 새로움은 사진의 예술적 가치를 흔히 회화성에서 찾고 평가하려는 태도와 달리 기록과 재현이라는 사진의 고유 특성에 예술적 가치가 있음을 드러내는 데 있다. 고유의 도구를 통한 존재증명을 예술적으로 보여줄 때에만 예술영역을 확보할 수 있다는 논리다.

사진은 이미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모사하는 것만으로도 예술적이라는 걸 입증해왔다. 가령 랭거 파치의 난초 꽃이나 나선형으로 감긴 새싹 사진은 동물의 목구멍이나 선사시대의 괴물을 연상시킨다. 이는 현실을 낯설게 바라보기 효과를 줌으로서 예술적 경험을 선사한다.

사진과 디지털 작업 간에 벌어지고 있는 뜨거운 영역다툼을 예술적 표현 견지에서 바라본 것도 눈여겨볼 만하다. 사진이 판화와 회화에서 기록과 모사의 자리를 대신한 것처럼 디지털 기술도 사진의 영역을 넘보고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기술을 사진술의 영역 안에서 볼 것인지, 새로운 조형언어로 볼 것인지는 진행중인 사안이다. 저자는 사진이 고유의 예술적 영역을 구축했듯이 디지털 기술이 예술로서 자리잡으려면 그 고유의 특성을 통한 새로운 상상력과 예술적 표현 영역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말한다.

책은 사진술을 중심으로 도구와 예술의 관계를 속도감 있게 짚어내 현대예술의 이해까지 폭을 넓힐 수 있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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