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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일본의 신용추락, 강 건너 불구경 아니다
국제신용평가사 피치가 일본의 국가신용등급을 ‘AA’에서 ‘A+’로 두 단계 하향 조정했다. 이제 부자나라 일본의 신용이 한국을 비롯 중국 대만과 같은 수준이 된 것이다. 더욱이 피치는 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유지, 추가 강등 가능성까지 내비쳤다. 같은 등급이지만 ‘안정적’인 한국보다도 못하다는 얘기다. 지난해에는 스탠더드앤푸어스(S&P)와 무디스가 일본의 신용등급을 내렸다. 경제 강국을 자처했던 일본으로서는 자존심이 크게 상하게 됐다.

일본의 신용 추락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239%에 달하는 국가채무 때문이다. 국가 부도 위기에 처한 그리스가 153%이니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간다. 물론 일본 정부 발행 국채의 95%는 자국민이 보유하고 있고 금융권의 해외 자산과 외환보유액도 풍부해 당장 무슨 일이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부채 증가 속도로 볼 때 수년 내 심각한 재정위기 상황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고 하니 마냥 안심할 처지는 아닌 듯하다. 지금도 일본은 국가 예산(90조엔)의 4분의 1을 나랏빚 이자 갚는 데 쓰고 있다. 자칫 신용 하락으로 국채 값이 더 떨어져 금리가 1%만 올라도 예산의 절반을 이자로 물어야 할 처지가 될지 모른다.

우리의 국가 부채는 지난해 기준 420조원으로 GDP 대비 35% 안팎을 유지, 상당히 안정적이다. 외환보유액도 비교적 넉넉한 편이다. 그러나 곳곳에 산재한 불안한 징후가 적지 않다. 우선 464조원 규모의 공공기관 부채가 문제다. 공기업의 부채는 결국 정부가 갚아야 할 빚이다. 정부와 공공기관 빚을 모두 합하면 부채비율은 70% 선을 훌쩍 넘는다. 결코 안심할 수 없는 수치다. 또 900조원이 넘는 가계부채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잠재적 시한폭탄이 되고 있다. 총선과 대선이 겹치는 정치 일정으로 복지 수요의 급팽창도 우려되는 대목이다. 게다가 우리는 일본보다 경제체력이 약해 충격에 견디는 내성이 약하다.

지금이라도 각오를 단단히 다지고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야 한다. 무엇보다 정치권은 무한 복지 경쟁을 자제하고,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재원 활용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결국 일본이 저 지경이 된 것은 정치권이 권력을 다투며 국민들 눈치 보느라 일관성 있는 재정건전화 정책을 펴지 못한 탓이 크다. 공기업들의 자구노력은 절대적이다. 불용 자산을 매각하고, 수익성이 떨어지는 사업은 당장 접어야 한다. 특히 빚더미 속에서도 고액의 연봉과 성과급 잔치를 벌이는 도덕적 해이는 없어야 한다. 일본의 위기에서 얻은 교훈을 간과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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