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조각거장 앤서니 카로 세번째 한국전…이달말까지 국제갤러리서
기존 조각의 지루한 틀 탈피순수한 시각적 조형미 천착
내러티브 살아있는 추상주의
다양한 형태 입체물 패널
릴리프 작업 또다른 묘미 선사
앤서니 카로(Anthony Caro, 87). 영국을 대표하는 이 조각가는 20세기 후기 조각사에 큰 획을 그은 세계적인 거장이다.
카로는 20세기 전반을 풍미했던 모더니즘 조각가 헨리 무어(영국)와 데이비드 스미스(미국)를 계승한 적자로, 영국과 미국을 넘나들며 포스트모더니즘 조각의 다층적 세계를 널리 알린 첨병이다. 오늘날 활동하는 조각가 중 카로로부터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지 않은 작가가 드물 정도로 그는 조각계에 큰 파란을 일으켰다.
기존 조각의 지루한 틀을 과감히 깨고 건축적이면서도 시각적 순수성을 견지한 조각을 선보인 이 거장의 작품전이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대표 이현숙)에서 개막됐다.
국제갤러리가 지난 1994, 98년에 이어 세 번째로 개최하는 카로 전에는 1999년부터 작업한 조각을 필두로, 대형 철재설치 및 돌을 재료로 한 조각품과 서울 전시를 위해 특별히 만든 테이블피스 시리즈가 나왔다. 또 2010년에 제작한 부조작업인 타블로(tableau) 6점도 포함됐다. 부조작업은 국내에 소개됐던 카로의 전작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밝은 색이 더해지고, 선이 뒤섞여 보다 율동적인 감각을 선사한다.
검은 돌덩어리에 녹슨 금속을 연결해 묵직한 조형미를 보여주는 앤서니 카로의 작품 ‘Orator’. ‘웅변가’ 를 뜻하는 제목답게 인물을 추상화한 듯하다. [사진제공=국제갤러리] |
앤서니 카로를 논함에 있어 가장 큰 특징은 하나의 틀이나 형식으로 그의 작품세계를 단정짓기 어렵다는 점이다. 작가는 “작품에 있어 가치있는 것은 나의 실천을 통해 얻어지는 확신이지,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규범들이 아니다”고 말한다.
카로는 조각으로 공간을 드로잉한다. 그저 예쁘게 똑 떨어지는 조각을 만들기보다, 건축과 조각의 경계를 넘어서며 작업한다. 작품 설치가 곧 건축의 일부가 되도록 높은 좌대도 없앴다. 작품을 전시장 바닥에 그대로 놓게 해 관객과 직접적으로 만나게 한 것. 당시로선 엄청난 파격이었던 이 실험은 요즘에는 거의 보편화되고 있다.
영국에서 증권중개인의 아들로 태어난 카로는 어린 시절 미술에 관심이 많았으나 부친의 권유로 케임브리지에서 공학을 전공했다. 이후 공군에서 엔지니어로 복무했으나 곧 애초에 원했던 조각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런던의 로열아카데미(왕립미술학교)에 입학했다. 그곳에서 불세출의 거장 헨리 무어(1898~1986)에게 사사하며 그의 조각세계는 깊고 넓어졌다. 이후 1958년 미국의 저명한 평론가 클레멘트 그린버그를 만나 뉴욕으로 건너가 데이비드 스미스와 조우하며 이전에 문외한이었던 철조에도 눈을 떴다. 돌, 석고만 고집하던 작업에 강철이 더해진 것.
이후 카로는 더욱 스케일 크고, 완성도 높은 구축적 조형세계를 선보이며 뉴욕 현대미술관(MoMA), 도쿄 현대미술관 등 세계 유수의 미술관에서 초대전을 열었다. 1987년에는 모국에서 기사 작위를 받기도 했다.
카로는 추상조각가다. 그러나 구상적인 내러티브가 작품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을 때가 많다. 추상적 요소와 구상적 표현 사이를 자유롭게 넘나든 그의 조각은 지극히 이지적이고, 탁월한 공간해석력을 보여준다.
서울 전시에 나온 2003~04년작 ‘Orator’ ‘Palace’ 등은 구체적인 인물 또는 건축적 구조를 보여주는 카로의 대표작이다. 또 2005년 작 ‘South Passage’와 2006~07년작 ‘Star Passage’는 조각인지 건축인지 알수 없는 대형 설치작업이다.
최근 들어 카로는 릴리프 작업에 관심이 지대하다. 그림처럼 벽에 걸 수 있도록 제작된 근작 ‘Relief Piece’ 시리즈는 다양한 형태의 입체물을 팬널에 배치해 또 다른 묘미를 선사한다.
구순을 앞둔 나이에도 활발하게 활동 중인 작가는 내년 뉴욕의 파크 애비뉴에서 공공미술 작품을 선보일 계획이다. 전시는 10월 30일까지. (02)735-8449
이영란 선임기자/yr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