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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마을1축제>태백 해바라기축제...비 오면 더 운치있는 선 플라워
어린 시절 장독대 옆이나 뒤뜰의 담장 너머 하늘을 바라보고 서 있던 키 큰 해바라기. 빈 공터 한 쪽에 쟁반같은 얼굴로 아이들과 어울렸던 해바라기가 우리 시야에서 없어진 건 언제부터 였던가. 그 많던 해바라기들이 어디 갔는지 의문 한번 갖지 않은 세월이었다. 머리를 어디로 둬야 할 지 알 수 없는 거대한 아파트들이 하늘을 가리면서 해바라기는 동네에서 사라져버렸다.

기억속에서도 아득해진 해바라기를 들판 가득, 눈이 닿는 끝까지 바라보다 보면 한순간 어린 시절 개구쟁이들이 떠오른다.

’해바라기 길에서 만나다’는 주제로 열리는 제7회 해바라기 축제(7월 30일~8월 28일)가 열리는 태백시 구와우마을은 오락가락하는 비에도 아랑곳 없이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비가 오면 더 운치있다며 내심 반기기까지 하는 게 해바라기 축제다.

노랑은 빗속에서 유난하게 도드라지고 싱싱해진다. 민소매 하늘색 원피스를 입은 여자가 나풀거리며 해바라기 사이에서 한껏 포즈를 잡는다. 중년의 부부도 연신 “거기 서 보라”며 셔터를 눌러댄다. 다른 젊은 커플은 나무들이 슬며시 가려놓은 해바라기 숲으로 사라진다. 무거운 사진장비를 잔뜩 설치해 놓고 좋은 위치, 각도를 잡기에 여념이 없는 아마추어 사진작가들, 이곳 해바라기 축제는 아이들보다 어른들이 더 좋아한다.


태백 구와우마을 해바라기 축제는 건축디자이너인 김남표(태백 고원자생식물원 대표) 씨가 7년 전 12만평 부지에 100만송이 해바라기를 심으면서 시작됐다. 이전엔 고랭지 배추밭이었던 곳이다. 그는 일본 니이가타현 에츠고츠마리 트리엔날레에서 본 해바라기들이 기억에 오래 남았다. 해바라기로 논밭을 디자인해 보자 마음먹었다. 그렇게 시작한 축제는 부도를 두 번이나 맞고 시행착오도 많았다. 2회 때는 태풍으로 해바라기들이 모두 쓰러지면서 하루만에 축제를 접어야 했다. 3년 전부터 축제는 제자리를 잡았다. 평일엔 600~700명, 비가 와도 400명이 찾는다. 주말에는 2000여명이 다녀간다. 작년 축제에는 4만5000명이 다녀갔다. 사람들에 치이지 않고 길 따라 해바라기를 여유롭게 즐기며 보기에 맞춤한 정도다.

매표소를 지나 살짝 경사진 길을 올라서면 수많은 해바라기들이 시원스레 펼쳐진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활짝 핀 얼굴을 기대했는데, 교실에 앉아있는 아이들 뒤통수 마냥 일제히 딴 데를 보고 있다. 일제히 고개를 들어 오로지 한 곳을 바라보는,태양바라기인 해바라기 모습은 참 착하다. 얼굴이 보고 싶어 부지런히 걸어가 들판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에 서면 해바라기들이 함빡 웃으며 합창을 하고 있는 듯 환하다. 


귀여운 노란 해바라기가 아슴아슴 떠올라 해마다 이맘때면 다시 찾는 이들이 많다. 며칠전 왔다가 혼자 보고 간 게 아쉬워 친구들을 데리고 다시 오는 이들도 여럿이다. 해바라기꽃도 여느 꽃처럼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지만 이곳 해바라기는 근 한 달을 간다. 거기엔 김 대표의 노하우가 녹아있다. 5월초 씨 뿌릴 때 한꺼번에 뿌리지 않고 며칠씩 나눠 뿌린다. 그래서 처음 뿌린 꽃이 지면 다음 꽃이 피고, 그 다음 꽃이 피어 오래 꽃이 간다.

이곳의 해바라기는 일본의 잘 손질된 깔끔한 해바라기 밭이나, 영화 ‘선 플라워’에 끝없이 펼치지는 러시아의 넓적한 해바라기와 다르다. 얼굴도, 키도 작다. 이도 김 위원장의 작품이다. “작으니까 바람이 불어도 끄떡없어요. 거름을 덜주고 강하게 키운 덕이죠. 7년 노하우랄까요. 또 하나 비밀은 잡초인데, 그게 비바람에 버틸 수 있도록 해주죠”


아닌게 아니라 해바라기 밭에는 잡초가 키만큼이나 무성하게 자라있다. 어찌보면 잡초 반, 해바라기 반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둘은 원래 그런 것처럼 자연스레 어울린다. 훼손되지 않은 자연 위에 예술을 슬쩍 얹는 것, 자연이 스스로 아름다움을 회복하는 것, 그가 바라는 축제는 그런거다. 언덕을 넘어서면 서용선 화가의 작품도 만날 수 있고 앤드류 버튼의 설치작품, 얼마전 타계한 젊은 작가 라현의 여린 현의 울림같은 작품들도 만날 수 있다. 현재 해바라기 갤러리에는 정은화, 최인호, 이이정은 등 트라이앵글 프로젝트가 전시중이다. 김 대표의 해바라기 밭의 사계 사진전도 볼 수 있다.

해바라기가 가장 아름다울 때는 산 가득 아침햇살이 펼쳐드는 아침 8시께. 해 질 녘도 그만이다. 그래서 축제시간도 아침 6시30분부터 해 질 녘까지다. 이곳 축제의 새로움은 흥청거림이 없다는 점이다. 축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먹거리나 만들기 체험 같은 게 없다.

“축제는 다른 체험이 필요없어요. 찹쌀떡, 페이스페인팅 그런게 왜 필요해요? 와서 보고 느끼는 게 체험이죠.”

시행착오끝에 내린 결론이다. 그도 안해본 게 없었다. 누가 ‘이런 거 한번 해보자’ 하면 들여놓고 ‘꽃비빔밥을 팔자’ 하면 그렇게도 해봤다. 그러나 역시 꽃을 열심히 예쁘게 키우는게 축제의 본질이란 생각에 닿았다. 그래서 모든 걸 비웠다. 그래서 헛한 돈이 들어가지 않는다. 네 사람 인건비등 모두 포함해 1500만원이면 족하다.

밭에 농약을 안치고 그대로 두니까 10년 동안 안 보이던 반딧불이도 돌아왔다. 장수 하늘소 , 사슴벌레도 여기저기 돌아다닌다. 길가는 온통 야생화와 토종 허브들 지천이다. 그러다보니 야생화에 관심있는 이들까지 이곳을 찾는다.

그는 올해 해바라기 재단을 만들어 해바라기 씨 나눔 행사를 펴고 있다. 회원들에게는 해바라기 씨와 내년 무료 입장권을 보내준다. 일종의 해바라기 보급운동이다. 씨는 5월 초 땅을 5센티미터 정도 깊이로 판 뒤 심으면, 1주일 후 싹이 난다. 꽃이 피기까지 90일에서 100일이 걸린다. 아파트 베란다에서도 키울 수 있다. “해바라기는 방사능을 낮춘다는 연구결과도 있어요.” 아파트 창마다 노란 해바라기들이 생글생글 인사를 건네는 풍경도 내년 봄엔 꿈꿔 볼만하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사진=김명섭 기자/msiro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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