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한강 지음 문학과지성사 |
“어느/늦은 저녁 나는/흰 공기에 담긴 밥에서/김이 피어 올라오는 것을 보고 있었다/그때 알았다/무엇인가 영원히 지나가버렸다고/지금도 영원히 지나가버리고 있다고//밥을 먹어야지//나는 밥을 먹었다.”( ‘어느 늦은 저녁 나는’)
한강의 시는 고요하다. 그러나 거기에는 피 흘리는 혀와 입술의 투쟁이 있다. 말과 글의 비좁은 그 의미 속으로 어떻게 들어가야 할지 처절한 몸부림이 있다. ‘연둣빛 눈들에서 피가 흐르고 어둠에 혀가 감기’는 그런 투쟁이 시작되는 저녁은 깊어지고 치열해져 새벽에는 ‘너덜너덜 넝마’가 돼 실핏줄이 검게 다 마를 지경이 되지만 그때야 푸른 입술은 열린다. 말과 동거하는 숙명을 안은 시인의 존재와 언어의 시세계가 뜨겁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