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 국책사업 시험대 ‘밀양송전탑’…네가지 쟁점
② 12년간 2조7000억 들어 지중화 곤란 vs 한전이 실제보다 공사비 부풀렸다③ 과부하·추가전력 고려 우회 어렵다 vs 다른 선로로 충분한 전기공급 가능
④ 외부세력이 주민들 시위 부추겨 vs 유독 밀양에 집중된 건설계획이 문제
또 다른 ‘님비 현상’인가, 일방통행식 국책사업에 대한 ‘생존권 투쟁’인가.
밀양 송전탑 건설 사업은 울산 울주군 신고리 원자력발전소 3호기에서 만들어진 전기를 경남 창녕군 북경남 변전소로 보내는 90.5㎞ 구간에 철탑 161기를 세우는 사업이다. 사업구간은 울주군, 기장군, 양산시, 밀양시, 창녕군 등 5개 시·군을 관통하는데 밀양에 세워지는 송전탑 수는 모두 52기, 전체 송전탑의 3분의 1이 밀집해 있다.
‘공사 강행’과 ‘육탄 저지’로 맞서 일촉즉발 상황으로 치닫던 충돌사태는 정치권과 정부가 개입해 ‘전문가협의체’를 구성하고 여기서 나온 결론에 따르기로 합의하면서 냉각기에 들어갔다. 그러나 한국전력과 주민들 간 ‘전쟁’의 불씨는 여전히 살아 있다. 갈등의 핵심쟁점에 대해 한전 측 입장은 확고하고, 주민들도 ‘송전탑 건설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더라도 “절대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새누리당 이진복 의원은 헤럴드경제와의 통화에서 “9명 협의체 가운데 5명이 송전탑 건설 찬성이고 4명이 반대면 어떻게 할지에 대한 약속도 빠졌다”면서 “현장 충돌 가능성은 여전하다”고 지적했다.
▶전자파 유해? 무해?=전자파 유해성 논란과 관련, 한전 측과 주민 측은 모두 똑같이 세계보건기구(WHO)의 자료를 원용한다.
양측 입장이 다른 것은 WHO가 두 차례(2002년과 2007년) 발표한 내용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즉 WHO 산하 국제 암 연구기관(IARC)은 2002년 발표에선 3~4mG(밀리가우스) 이상 전자파에 만성적으로 노출되면 소아백혈병 발병률이 두 배 이상 증가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2007년 WHO는 12년간(1996~2007년) 연구 결과를 종합해 분석한 결과 낮은 수준의 자계 노출에 의해 암이 진전된다는 것을 입증키 어렵다고 발표했다. 시차를 두고 ‘유해하다’는 판단이 ‘유해 입증 불가’로 바뀐 것.
학계의 입장도 갈린다. 김윤신 한양대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아직 정확한 역학조사 결과가 나오지 않아 전자파와 암 발생 간 연관성을 단정 짓는 것은 무리”라고 밝혔다.
반면 구진회 국립환경과학원 생활환경연구과 연구원은 “고압 송전탑은 전선이 높은 곳에 있다. 주민들이 전자파의 직접 영향을 받을 가능성은 낮다”며 “그러나 주요 보건기구들이 꾸준히 전자파의 유해성을 경고해온 것을 감안하면 피하는 것이 좋다”고 설명했다.
▶지중화 논란… 비용 때문? 기술 때문?=한전 측은 76만5000V의 고압 송전선을 땅 밑으로 묻어 밀양을 지나가게 해 달라는 주민들의 ‘지중화 요구’에 대해 공사기간과 비용 문제, 그리고 기술적인 문제를 들어 ‘수용 불가’ 입장이다. 한전 측 주장에 따르면 약 30km 거리를 고압 전선이 땅 밑으로 지나가게 하려면 공사기간 12년에 공사비가 2조7000억원가량 든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주민들은 과거 한전 측이 남부산~북부산(22km)을 잇는 도심 구간 부분을 지중화할 당시 투입된 공사비(2788억원)를 근거로 한전 측이 실제보다 공사비를 부풀려 주장하고 있다고 반박하고 있다.
현실적으론 국내에서 76만V 이상 초고압 송전선을 지중화한 전례가 없다. 50만V 송전선에 대한 지중화 작업 기술만이 개발돼 있는 상태다. 이 때문에 주민 측은 감압한 다음 지중화를 요구하고 있지만, 한전 측은 이 역시 비용과 시간 문제가 있다며 ‘어렵다’는 입장이다.
▶‘우회’가능성=밀양 주민들의 또 다른 요구는 다른 송전선로를 사용하면 밀양에 송전탑을 짓지 않을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른바 ‘우회 선로’ 요구다. 현재 한전은 신 양산~동부산을 잇는 송전선로와 신울산~신온산을 잇는 송전선로 공사를 진행 중이다. 이 때문에 굳이 밀양을 지나는 송전탑을 짓지 않더라도 ‘경남 지역에 대한 원활한 전기 공급’이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한전 측은 다른 선로를 이용하는 것은 과부하가 우려되고, 추후 지속적으로 늘어날 전력 소비량까지 고려하면 밀양 송전탑을 건설하지 않고서는 해결하기 어렵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와 관련, 김재철 숭실대 전기공학부 교수는 “정부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전력 수급계획을 세워야 한다. 밀양 송전탑 건설은 불가피한 선택”이라면서도 “계획 단계부터 주민들 동의를 구하지 않은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왜 밀양에서만 반대하나?=한전 측은 유독 밀양에서만 주민들의 반발이 거센 이유에 대해 ‘외부 세력’ 때문이라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밀양 송전탑 시위에는 반핵 시민단체와 지역 시민단체, 종교단체까지 가세해 주민들을 돕고 있다. 반핵 시민단체는 신고리 3호기 자체에 대해 문제를 삼고 있고, 일부 종교단체들도 주민들과 결합해 이들에 대한 우회 지원 사격을 하고 있다.
그러나 주민 측은 유독 밀양에만 집중적으로 송전탑이 많이 건설되도록 한 건설계획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반박하고 있다. 밀양은 이번 사업을 통해 건설될 송전탑의 3분의 1이 지어진다. 여기에 한전 측이 중장비 접근 비용 등 공사비를 아끼기 위해 유독 인가나 마을을 끼고 공사 설계를 한 것 역시 밀양 시민들의 강한 저항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주장한다.
아울러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던 이치우 씨의 분신사망 사건을 계기로 형성된 ‘미안함’의 공감대가 주민들을 뭉치게 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홍석희 기자/hong@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