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들은 바 (bar)의 남은 자리에 가 앉았고 이내 훈남 점장이 ‘규칙’을 설명한다. “종업원에게 2차를 요구하거나 팁을 주면 바로 퇴장입니다.”
규칙 설명이 끝나고 바텐더들이 본격적으로 자리를 함께 한다. 유행어를 따라하면서 흥을 돋우며 손님들이 마음을 열도록 유도한다. 술과 함께 여흥이 무르익으면 이들은 본격적인 ‘대화’에 들어간다. 여성들은 잘 만나주지 않는 애인에 대해 종업원들에게 푸념하고 이해 가지 않는 직장 남자 상사에 대한 뒷담화를 가감없이 토해낸다. 10년 넘게 살아도 당췌 속을 모르겠는 남편 얘기도 대화의 단골메뉴다. 종업원들은 그들의 이야기를 주의깊게 듣으며 위로하고 또 조언한다. 한시간쯤 지났을까. 새로운 바텐더가 등장한다. 역시 처음 본 사이지만 전혀 어색하지 않다. 종업원은 “더 친해지면 서로 욕도 할 걸”이라며 “손님과 우리는 한 가족이지”라며 어깨를 으쓱했다. 바를 채운 여성들은 자정이 지나도록 이야기 꽃을 피웠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한 무한소통시대, ‘토킹바’(Talking Bar)를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토킹바는 말 그대로 대화를 나누는 곳이다. 술 한잔과 함께 종업원이 이야기 상대를 해준다. 성을 상품으로 하지 않는다는 점이 ‘호스트바’와의 차이점이다.
2005년부터 고시촌을 중심으로 생긴 토킹바는 경기불황에도 급증해 현재 강남, 인천, 영등포 등 유흥가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전국에 체인점을 갖고 있는 R 여성전용토킹바 홈페이지에는 하루 접속자가 5000명이 넘을 정도다.
‘대화를 사러 온 사람들’은 남녀노소를 막론한다. 직업도 다양하다. 강남 R 토킹바의 베테랑 직원 김모(25) 씨는 “12살 아이를 가진 주부부터 20대 대학생까지 손님의 연령대도 다양하고 의사, 변호사 같은 엘리트들도 많이 온다”며 “회사나 가정에서 있었던 다양한 사연들을 편하게 털어놓는다”고 말했다.
자릿세와 음료값을 포함해 토킹바를 즐기기 위해선1인당 최소 10만 원 이상을 지불해야 한다. 경기불황시대, 많은 이들이 토킹바를 찾는 이유는 뭘까.
남성전용토킹바를 자주 간다는 김모(28) 씨는 “연애 얘기, 학교생활 등 친구들에게도 하기 힘든 속 얘기를 할 수 있어 찾는다”면서 “바텐더 중에는 명문대에 다니는 사람도 있어서 학교생활에 대한 고민도 잘 이해해준다”고 말했다.
가정주부인 박모(42ㆍ여)씨는 “남편은 남편대로 애들은 애들대로 바쁘다. 얘길 나눌 사람이 없다”면서 “여기서 얘길 하고 나면 속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다. 스트레스가 풀리는 느낌”이라고 털어놨다.
전문가들은 토킹 바의 인기 요인으로 우리 사회의 ‘소통의 부재’를 꼬집었다. 심상용 상지대 사회복지학과 “토킹바가 호황인 것은 아직 우리 사회가 가족과 친구 집단 내에서 대화하는 방법을 잘 가르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며 “익명성을 보장받으면서 동시에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기 위해 나타나는 왜곡된 형태”라고 분석했다.
이어 심 교수는 “SNS로 우리사회의 소통 창구는 분명 넓어졌지만 사생활이 공개된다는점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놓지 못한다”면서 “지역 공동체와 가족, 친구 등이 모여 상호 대화하고 이해하는 방법을 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현재 서울시립대 도시인문학 연구소 교수는 “일정한 소득을 가진 사람들 중 외롭고, 말할 사람도 많지 않은 사람들이 친밀한 관계를 찾아 토킹바를 찾는 것”이라면서 “이성과 어울리면서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고 싶지만 사회에서는 타인의 눈 때문에 그런 관계를 찾지 못한다. 토킹바는 결국 진실한 관계를 맺고 싶어하는 현대인의 열망의 표현”이라고 평가했다.
서지혜 기자 gyelov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