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뉴스
  • 골프 봉사를 꿈꾸는 김대식 USGTF 프로
이미지중앙

골프 봉사를 꿈꾸는 김대식 프로.


[헤럴드경제 스포츠팀=정근양 기자] 지난해 연말에 미국골프지도자연맹(USGTF) KOREA의 10대 지도자에 선정된 김대식(63) 프로는 강원도 춘천에서는 알아주는 골프계 유명인사다. 춘천에서 30여 년을 산 데다가 300야드를 넘나드는 엄청난 장타를 치고 특유의 친화력과 사교성으로 범 춘천 골프계에서는 라운드 안 해본 이를 찾기 힘들 정도이기 때문이다.

김 프로의 골프 시작은 1995년 춘천에 정착하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월에서 나고 자란 김 프로는 서울에서 기아자동차 영업사원으로 사회 생활을 10여년간 했다. 뛰어난 영업력과 친절함으로 ‘올해의 판매왕’에도 여러 차례에 올랐다. 그러다 우수사원 연수차 미국 포드사에 가서 차량 제조와 판매 정비 공정이 한 번에 이뤄지는 시스템을 보고 사업 아이디어를 얻어 독립했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적지않게 받은 퇴직금을 밑천 삼아 춘천에서 시작했다. 활동적인 성격으로 신장 186cm의 건장한 체격에 젊은 시절부터 수영과 피트니스 등 운동을 한 몸이라 사업을 하는 동시에 생활체육회에 가입해 활동을 왕성히 했다. 어느 날 거래처 사람들이 7번 아이언을 쥐어준 것이 골프와의 첫 만남이었다. ‘날아오는 공도 쳐내는데 멈춘 공을 못치랴’ 싶었던 그는 30분인가 공 치는 연습을 하다 라데나 골프장에 따라가서 엉겹결에 머리를 올렸다.

우습게 생각하고 따라간 첫 라운드에서 무턱대고 내기 골프를 하게 되면서 적지않은 돈을 잃은 뒤로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바로 골프에 빠져들었다. 다음날부터 연습장을 끊었고 클럽을 장만하고 연습에 들어갔다. 당시 춘천에는 한연희 전 국가대표팀 감독이 PGA 아카데미를 열고 있었는데 그곳을 다녔다.

사업을 하던 때라 연습 시간을 내는 건 어렵지 않았다. 오전에는 연습장에 나가 1천 개의 공을 치고 오후에는 라운드를 돌기도 했다. 퇴근 후에도 집에서 빈 스윙 연습을 하면서 골프를 깨우쳤다. 골프가 없는 날은 하루에 2천개의 공을 쳤다. 그렇게 골프 연습에 몰두해 한 달여가 지나서 깨달음이 왔다. 백스윙 톱에서 잠시 멈췄다가 내려치니까 공이 원하는 대로 날아갔다.

골프 연습에 빠져 있다보니 하루가 다르게 실력이 늘었고 반 년이 지나 싱글 핸디캡 실력을 갖췄다. “골프를 한 뒤로는 골프에서 좌절한 적이 거의 없습니다. 군 생활도 도움이 되었지요. 해병 의장대 3년을 보내고 나니 손아귀 힘이 좋았지요. 통뼈라서 공을 치면 엄청 멀리 날아가고 주변에서 다들 구경할 정도였습니다.”

한연희 프로에게서 레슨을 두어 달 받은 게 전부고 나머지는 혼자 골프를 익혔다. 골프를 잘 치니까 한국프로골프(KPGA)투어 자격을 따볼까 생각했는데 나이 제한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포기했다. 하지만 골프 실력은 사업과도 잘 연결됐다. 그와 함께 골프 라운드를 하는 이들에게 간단히 원포인트 레슨을 해주면 너무나 반기면서 좋아했다.

한창 공이 잘 맞을 때 포천 아도니스 골프장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다. 중코스 파4 6번 홀이 백티에서 364야드 길이, 내리막에 아일랜드 그린을 가진 홀인데 260야드 지점에 물이 있어서 보통은 페어웨이로 잘라 친다. 하지만 그날은 왠지 그린으로 바로 쐈는데 티샷으로 원온을 하니까 캐디가 털썩 주저앉으며 ‘티샷 원온은 처음 봤다’고 했다. 동반자들이 다시 한번 더 치라고 해서 쳤는데 이번엔 그린 옆 벙커에 들어갔다. 그날 라운드를 마치고 클럽하우스로 들어가자 총지배인이 나와서 인사하며 한 번 더 오라면서 무료 라운드권을 주기도 했다.

골프를 잘 치고 좋아하다 보니 어느 골프 행사에 가서도 환영받고 원포인트 레슨을 부탁받았다. 프로들의 아우팅 행사처럼 전반 9홀은 한 그룹과 치고 후반 9홀은 다른 그룹과 치기도 했다. 파5 홀 투온 이글은 250번을 넘기면서 더 이상 의미가 없을 듯해서 세지 않았다.

강원도 출신의 프로들도 후원하면서 동반 라운드도 많이 가졌다. 춘천 출신의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김영, 한설희, 속초의 노승열과도 주니어 시절 라운드했다. 2000년대 강원도지사배, 강원일보사배 등등 대회에 나가서 상위 성적으로 입상했고 엘리시안 제주 자이 아파트 전국대회에서 68타를 쳐 아마추어 1등을 했다.

그러다가 2013년에 덜컥 퍼트 입스가 왔다. 그린에 공을 올린 다음에는 3퍼트, 4퍼트가 속출했다. 동반자들은 입스에 걸린 걸 안 뒤로는 더 이상 컨시드를 주지 않았다. 좌절의 시간이 끝없이 이어질 것 같았고 그린에만 오르면 불안감이 도졌다. 3~4년간 고생하다가 어느 순간 한 손으로 퍼트를 했더니 의외로 잘 됐다. 밸리 퍼터로 교체하고 그립 방식도 집게그립으로 바꿨더니 어느새 입스가 사라졌다. 골프에서 멘탈이 너무나도 중요하더라는 것을 그때 깨알았고 나중에 멘탈 코치가 되자고 생각했다.

TV로 골프 대회 중계를 보다가 김해림이 2016년 교촌허니레이디스오픈에서 샷 이글을 하는 순간 매료된 이후로 김해림 팬클럽 해바라기클럽을 만들어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다. 이후 김 선수가 일본에 가서 우승하고 국내 KLPGA 투어 무대에서 8승을 하는 과정을 현장에서 지켜봤다.

2017년 서일대학교 김해중 교수와 라운드를 하다가 USGTF 프로 자격증 얘기를 듣고는 충주시 킹스데일 골프장에서 열린 테스트에 응시해 1언더파 71타를 쳐서 바로 합격했다. 이론 연수 교육을 받고는 교육생 대표가 되어 시상도 받았다.

프로 자격증을 따면서 각종 동호회와 모임에 많이 나갔고 아카데미를 차리지 않았는데도 그에게서 배우려는 이들이 몰렸다. “저는 일단 상대방의 스윙을 관찰하고, 만약 고칠 부분이 보이면 칭찬을 먼저 합니다. 그런데 이것 하나만을 고치면 참 좋겠다고 말합니다. 잘못된 스윙은 잘못된 습관이 굳어진 경우가 많거든요. 그걸 버리라는 메시지를 줍니다. 그래서인지 밤늦게 레슨 관련 전화를 주는 분도 많습니다.”

사업을 하면서 레슨도 짬짬이 병행하는 그는 춘천 동면에 큰 인도어 아카데미를 준비중이다. 비거리 200미터에 3층 규모 75타석의 연습장을 운영하면서 골프 인생의 정점을 찍으려 한다. “좋다고 이름난 연습장들은 거의 가봤습니다. 저는 최고의 시설을 갖춘 연습장을 만들고 거기서 주니어들에게는 무료로 재능 기부를 하면서 가르치고 싶습니다. 제가 골프를 통해서 사업도 성공하고 많은 이들을 만났죠. 골프를 통해 많은 것을 얻었으니 골프를 통해 자라나는 세대를 위해 좋은 일 해보고 싶어요.”

인생을 돌아보면 골프만큼 아이러니하고 기적같은 것은 없다. USGTF코리아 회원이 되고서도 연맹 행사에 참석하거나 경기위원으로 참여해 관계를 돈독히 맺고 있다. 지난해말 10대 지도자로 선정된 것도 그 덕이라고 여긴다. “골프는 제 인생이자 희로애락입니다. 인생의 완성을 골프 아카데미로 하고 싶습니다. 하나 더 바란다면 손녀가 초등학교 3학년인데 골프 선수로 잘 키워서 골프 백을 메보고 싶습니다.”
sports@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
          연재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