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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포츠 타타라타] 탁구로 암을 이겨내고 있는 시골회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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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횡성군탁구전용체육관에서 열린 주세혁의 시범경기 모습. [사진=횡성군체육회]


# 병원에서 6개월을 채 살기 힘들 것이라고 했지만 맨발산행으로 3개의 암을 이겨낸 청계산의 이00 씨. 위암초기 진단을 받았지만 죽기 전에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하겠다고 결심하고, 목표달성와 함께 암까지 극복해 버린 대전의 유00 씨. 등산으로 폐암을 치료한 부산의 유00 씨. 유방암 치료를 위해 수영에 몰입했다가 사상 최초로 영불해협 논스톱 4회 횡단에 성공한 미국여성.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운동으로 암을 극복한 사례는 인터넷 검색으로도 쉽게 찾을 수 있을 정도로 사례가 많다.

# 역설적이게도 운동으로 암을 극복하는 것은 생각처럼 쉽지 않다. 수술을 받거나 항암치료를 시작하면 몸이 허약해져 운동은 더 멀어지기 마련이다. 건강한 몸으로도 운동이 하기가 쉽지 않은데 아픈 몸, 그것도 암세포가 번진 상태에서 등산, 마라톤, 수영 등 단조로운 유산소운동은 웬만한 정신력이 아니면 지속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렇다면 ‘재미있는 스포츠’로 생활체육에서 인기가 높은 탁구는 어떨까? 힘든 유산소운동을 꺼리는 사람도 일단 탁구의 재미에 빠지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그 좁은 공간에서 게임을 즐기며 이리저리 움직이는 걸 즐긴다. 땀으로 온 몸이 젖고, 숨이 차도 구기종목 중 가장 작은 탁구공을 가지고 노는 재미에 누가 시키지 않아도 라켓을 쥐게 된다.

# 2013년 담도암으로 6개월 시한부인생 판정을 받았지만, 지금까지 탁구와 함께 성공적으로 암투병을 해내고 있는 동호인이 있다. 62세의 채동아 씨. 2003년 3월 일산에서 탁구에 입문했고, 워낙 탁구를 좋아하다 보니 2009년 직접 탁구장을 차렸다.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으니 즐거웠다. 실력도 전국 2부로 아마추어의 ‘찐’강자였다. 그런데 불운이 찾아왔다. 2012년 12월 몸이 좋지 않아 병원을 찾았다가 담도암 판정을 받은 것이다. 바로 수술을 받았지만 이듬해인 2013년 5월 의사로부터 간으로 전이가 심하게 돼 ‘잘해야 6개월 정도’라는 청천벽력 같은 얘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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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철 횡성군 체육회장(오른쪽)이 주세혁에게 꽃다발을 전달하고 있다. [사진=횡성군체육회]


# 결단을 내렸다. 2013년 7월 요양 차 공기좋은 곳을 찾던 중 당시 횡성에 살던 지인의 소개를 받아 채동아 씨는 아예 횡성군 갑천면으로 이주했다. 매일 아내랑 산에 다니고, 병원진료가 있으면 일산의 암센터를 다녀왔다. 이러던 중 횡성의 탁구인들을 알게 됐고, 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다시 탁구를 치게 됐다. 조금씩 탁구 치는 시간이 늘었고, 항암치료를 병행하면서 몸도 좋아지게 됐다. 암환자임에도 불구하고 2014년부터 지금까지 횡성군대표로 강원도도지사기, 협회장기, 생활체육대축전 등 각종대회에 출전해 아내(박찬선, 지역1부)와 함께 많은 우승을 일궈냈다.

# 채동아 씨는 탁구를 잘 친다는 소문이 나면서 동네에서 탁구레슨도 시작했다. 전문선수 출신이 아니지만 오히려 동호인들의 사정을 더 잘 아는 까닭에 인기가 높다. 암과 싸우면서도 좋아하는 탁구를 치고, 탁구를 가르치니 채동아 씨는 늘 감사하다. 그래서일까 그의 주변에는 사람이 모였고, 지난해 12월 횡성군 탁구협회장에 출발해 당선됐다. 암치료를 위해 요양하러 왔다가, 탁구로 건강을 찾은 것은 물론 군단위 탁구회장까지 된 것이다. “사실 지금도 항암치료를 하고 있습니다. 부작용 때문에 많이 힘들지만 제가 가장 좋아하는 탁구로 암을 이겨내면서 레슨까지 하고, 협회장까지 됐으니 하루하루 감사한 마음으로 즐겁게 지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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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슨을 하고 있는 채동아 횡성군탁구협회장. [사진=횡성군탁구협회]


# 지난 6일은 채동아 씨에게 특별한 날이었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탁구선수인 주세혁(마사회)이 횡성까지 내려와 재능기부 행사를 가졌기 때문이다. “2005년일 겁니다. 일산의 김덕종탁구교실에 수비탁구의 레전드인 주세혁 선수가 초청선수로 왔지요. 주 선수의 예술 같은 플레이에 매료돼 당시 펜홀더 1부였전 저는 과감하게 수비전형으로 바꿨습니다.” 주세혁은 ‘암환자가 회장’이라는 채동아 회장의 사연을 듣고 이날 횡성을 방문하게 된 것이다. 3시간이 넘게 동호인들과 다양한 게임을 하고, 사인회를 갖는 등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주세혁은 “횡성에 탁구동호인이 500명 정도 된다고 하는데, 훌륭한 시설(횡성군탁구전용체육관)과 탁구에 대한 열정에 깜짝 놀랐습니다. 특히 채동아 회장님의 암극복 사연은 감동입니다. 이렇게 탁구를 사랑해주니 선수로 제가 감사할 뿐입니다”라고 말했다. 알고 보니 횡성군의 장신상 군수는 탁구마니아로 유명했고, 정명철 횡성군체육회장은 “체육이 곧 복지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고 한다. 실업팀 훈련장으로도 손색이 없을 정도인 횡성군탁구전용체육관도 2020년 10월 지어졌다.

# “탁구로 암 극복이요? 개인 프라이버시로 실명을 거론하지 못하지만 지금 제가 레슨하고 있는 둔내체육관에도 여러 암환자분들이 탁구로 건강을 유지하면서 즐겁게 운동하고 있습니다. 적절한 병원치료를 받으면서, 횡성처럼 환경이 좋은 곳에서 재미있는 탁구로 즐겁게 운동한다면 그게 최고인 것이죠. 제가 산증인입니다.” 그렇다. 올림픽 등 화려한 조명 하에서 펼쳐지는 전문선수들의 멋진 플레이도 탁구이고, 뒤뚱뒤뚱 엉성해 보이지만 생활체육 현장의 즐거운 놀이도 탁구다. 그리고 채동아 씨의 암투병처럼 삶이 걸려있는 탁구도 있다. 오히려 환자일수록 적절한 운동이 필요하다. 주변에 아픈 사람이 있다면 채동아 씨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탁구를 권하면 어떨까? 아니, 사람이라면 언제가는 아플 수 있기 때문에 건강할 때 미리 탁구라는 좋은 습관을 가져보면 어떨까? 유병철 스포츠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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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동아 회장(오른쪽)과 주세혁 선수. [사진=횡성군탁구협회]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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