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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노승 골프칼럼] (8) 페어웨이 디봇에 볼이 들어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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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퍼라면 티샷이 잘 맞았는데, 페어웨이로 가보니 이렇게 볼이 디봇에 빠져 있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페어웨이 가운데로 멋지게 날아간 티샷이었는데 볼에 도착해 보니 깊은 디봇자국에 빠져 있는 경우를 누구나 경험한다. 이것을 무벌타로 구제해 주지 않는 것은 가장 멍청한 룰이라고 화내는 골퍼들도 많은데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까?

골프게임의 과정을 인생에 비교하기도 한다. 일이 잘 풀리는 오르막과 일이 꼬이는 내리막이 되풀이 되므로, 잘 될 때 자만해서는 안 되며, 안 된다고 너무 실망할 필요도 없다. 결국은 자기의 핸디캡과 비슷한 스코어를 치게 되기 때문이다. 또 행운과 불운이 불규칙적으로 찾아오는데 그 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경우도 많다. 골프가 잘 안 풀리는 라운드라도 돌아보면 운이 좋았던 순간이 지나가고 있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골프룰을 지키면서 플레이 하고 싶은 골퍼가 잘 쳤다고 생각한 볼이 페어웨이 디봇에 들어간 것을 발견했을 때의 절망감은 이해하지만, 룰대로 친다면 놓인 그대로 치는 수 밖에 없다. 골프룰에도 헌법과 같은 조항이 있는데 규칙 1조 1항에 나오는 딱 두 줄이다.

첫째, “코스는 있는 그대로” (코스를 개선해서는 안되며)
둘째, “볼은 놓인 그대로 플레이해야 한다.” (플레이 중인 볼을 만지지 말라)

골프의 헌법과 같은 개념이니까, 이 두 줄을 지키지 않았다면 룰을 지켰다고 인정하기 어렵다. 프로들의 대회에서도 어떤 이유로든 마크하고 볼을 집어서 닦고 다시 놓는 절차(프리퍼드 라이)를 적용했다면 그 스코어는 공식적인 기록으로 인정받지 못하게 된다. 몇 년 전 LPGA 에비앙 마스터스에서 우승한 한국선수가 메이저대회 신기록의 스코어를 수립했다고 보도되었는데 그 대회는 골프헌법을 위반한 프리퍼드 라이 절차를 적용했던 대회이므로 신문기사들은 모두 오보였다.

골프는 페어웨이 가운데로 뻗어나간 볼이 언제나 치기 좋은 라이에 멈추는 것은 아니라는 전제를 가지고 있다. 디봇에 들어간 것은 불운이지만 그 것도 골프의 일부이고 놓인 그대로 치는 것이 골프 게임의 정신이다. 억울하다는 골퍼의 주장은 이해가 가지만 한 라운드의 전 과정을 보면 공평하게 돌아가고 있다고 봐야 한다. 페어웨이로 간 볼의 라이가 언제나 좋아야 한다면, 러프로 간 볼의 라이는 언제나 치기 어려워야 하는데 골퍼들은 러프로 간 볼의 라이가 페어웨이보다 더 만족스러운 행운을 종종 경험한다. 잘 생각해 보면 러프에 가서 혼자 좋아했던 경우가 페어웨이에서 불평했던 경우보다 훨씬 많았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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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봇에 빠진 볼은 프로들도 종종 겪는다. 골프룰을 지키려고 한다면 그대로 쳐야 한다.


골프의 성인으로 불리는 보비 존스는 신경이 서서히 마비되어 가는 척수공동증이라는 불치의 병에 걸려서 46세부터 더 이상 골프를 치지 못하게 되었다. 점점 병이 악화되어 휠체어를 타야 하는 존스를 찾아온 어릴 적 골프친구들은 그의 비참한 모습을 보면서 울먹였다. 그러나 존스는 오히려 친구들을 위로하며 이렇게 말했다. “골프에서 볼은 놓인 그대로 쳐야 하듯이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존스는 페어웨이 디봇에 들어간 볼 등 라운드에서 일어나는 모든 불운을 운명처럼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골프 중계방송을 보면 선수가 플레이하는 페어웨이는 융단 같은 잔디이고 디봇은 거의 깨끗하게 메워져 있다. 하지만 한국의 일반 골퍼들이 플레이하는 페어웨이는 디봇이 정말 많다. 이렇게 환경이 전혀 다른 경기장에서 같은 룰을 적용하는 것은 불합리하지만 골프룰은 하나뿐이다. 골프룰을 변경하는 로컬룰을 만드는 것도 금지돼 있다. 그래서 골프룰을 지키면서 디봇에 빠진 볼을 구제해 줄 수 있는 방법이 현재에는 없다.

그러나 나쁜 운명을 극복하는 쉬운 방법이 있다. 페어웨이 디봇에 들어간 볼은 옆에 옮길 수 있도록 동반자룰을 정하고 치면 된다. 인생에서는 불운을 운명으로 받아들여야 하지만 재미로 치는 골프에서 그런 스트레스를 원하지 않는 명랑 골퍼들의 해결책이다. K골프의 명랑골퍼들은 골프의 행운만 챙기고 불운은 피해가는 유연한 해결책들을 적용하고 있는데, 골프의 정신이 무엇인지 만 알고 있다면 어떤 룰을 만들어서 적용하든 비난 받을 이유는 없다. 그것은 골퍼들의 개인적인 자유이고 권리이다.

*박노승: 건국대 산업대학원 골프산업학과 교수, 대한골프협회 규칙위원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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